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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풍경은 없다(4) 에든버러의 모자 쓴 흄, 도시의 위트
  • 환경과조경 2009년 5월
 

도시의 위트를 찾아서
가끔은 뜻하지 않게 ‘큭큭큭’ 또는 ‘빙그레’ 웃게 만드는 풍경을, 여행지가 아닌 일상에서도 만날 때가 있다. 풍경에 몰입하여 나도 모르게 얼굴에 표정을 넣는 순간, 저 건너편의 낯선 이도 무표정하던 얼굴에 표정을 새긴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기도 한다. 겸연쩍지만, 용기 내어 눈을 피하지 않는다면 서로 눈웃음을 주고받게 되기도 한다. 모르는 이들이 서로 순간적으로 감정을 공유하는 것이다.

이런 풍경은 예측하지 못한 순간에 만날 때 더욱 빛을 발한다. 가장 흔한 것은 낙서일 것이다. 낙서는 아날로그적인 댓글놀이기도 하다. 도시의 대표적인 위트인 낙서는 ‘그래피티’라는 현대 미술의 한 항목으로 발전했다. 그 소재며 도구에 있어서 나날이 발전하고 있어 단순한 장난이나 반달리즘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어떤 시대정신을 표현하기도 하고 지역공동체와 소통을 원하는 예술가들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야말로 거리의 예술이 된 것이고, 덕분에 우리의 도시체험은 보다 흥미로워졌다.

허락받지 않은 낙서뿐만 아니라 허락받은 가로의 공공시설물이 우리를 웃음 짓게 만들기도 한다. 감전을 주의하라는 캐나다 어느 지역의 안전표시는 아주 효과적으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한편, 우리를 킥킥거리게 한다.

이런 조형물 외, 의도적으로 우리를 웃게 만드는 풍경은 거리 공연일 것이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람브라거리(La Rambla)는 ‘거리공연 특화 거리’로 부를만하다. 긴 거리를 따라 다양한 이들이 사람들의 시선과 발걸음을 이끈다. 거리 공연 중의 기본인 음악공연은 물론이고, 석고상처럼 서 있다가 동전을 넣으면 움직이는 공연자, 불 쇼를 하는 공연자, 지나가는 이를 흉내 내는 공연자. 몇 번을 오가도 지루하지 않다.

우리도 ‘큭큭큭 풍경’ 혹은 ‘빙그레 풍경’을 생활화하자
SBS의 어느 프로그램에서는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유머감각 높이기, 유머실력 키우기 같은 유머교육을 한 결과 학생들의 정신건강지수, 대인관계 능력이 증가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젠 성공을 위해선 EQ를 넘어 유머지수인 HQ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성공까지, 사회적 경쟁력까지 논하지 않더라도, 유머가 우리의 일상을 즐겁게 하는 윤활유라는 건 당연한 사실일 테니. 우리 모두를 위해서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 도시 풍경에도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의 도시는 참 인색하다. 서울에서 그래피티를 즐길 수 있는 곳은 홍대 앞 정도, 거리 공연을 볼 수 있는 곳은 인사동거리나 대학로, 신촌 정도가 아닐까? 그런데 이러한 거리에서도 쉽지는 않다. 문화의 거리라 불리는 인사동거리에서조차도 거리 한 가운데는 차량으로 꽉 차고, 거리의 가장자리는 ‘남의 장사 방해하지 말라’는 상인들의 불만으로 쉽게 판을 펼치기는 어렵다. 최근에는 벽을 장식하는 일도 늘어나고, 거리 한쪽에 야외무대 같은 걸 만들기도 하지만, 그러한 ‘허락’과 거리예술이 본연적으로 추구하는 ‘자유나 예술적 역동성’이 행복하게 동거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디자인 서울도 좋고, 멋진 광고도 좋다. 하지만 좀 서툴고 투박하더라도 생활냄새가 나는, 그래서 개입하고 싶어지는 그런 꺼리도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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