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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도는 시선들, 큐레이터 뷰] 사회적 실천으로서 모바일 건축
  • 환경과조경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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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geru Ban Architects, ‘Paper Partition System 4’, 2011; Photo by Shigeru Ban Architects Voluntary Architects’ Network ©Shigeru Ban Architects

 

임시적이고 가변적인 주거 공간은 역사 속에서 ‘건축가 없는 건축’으로 오랫동안 존재해 왔다. 움직이는 집은 역사적으로 유목민의 천막 구조로부터 비롯한다. 몽고 유목민의 텐트형 공간, 미국 인디언의 티피 천막, 집시의 왜건 마차 등이 그 예다. 이동 가능한 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는 20세기 운송 수단의 발전과 여행의 확산에 따라 여행용 카라반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되어 왔다. 오늘날 움직이는 집의 형태는 바퀴 달린 공간, 임시적 구조, 조립식 건축, 텐트 구조 등 이동과 변형이 자유롭고 어느 환경에나 유연하게 적용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이렇게 삶 속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 이동형 공간은 1960년대에 들어서야 본격적인 건축적 실험의 대상으로 등장한다. ‘모바일 건축mobile architecture’의 등장은 획일적인 주거 공간과 권위주의적이고 형식적인 건축 양식에 반발하는 비판적 의식을 배경으로 한다. 이번 지면에서는 ‘모바일 건축’의 사회적 역할과 실천에 주목해 동시대 건축가와 예술가의 프로젝트를 소개하고자 한다.


1960~70년대 건축 분야에서 실험적으로 등장한 모바일 건축은 재료, 기능, 테크놀로지, 공상 등 다양한 측면의 실험을 거쳐 왔다. 오늘날에는 건축뿐만 아니라 미술, 연극, 퍼포먼스 등 시각 문화 전반에서 상호 융합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동시대 예술에서 임시적 공간은 건축, 디자인 등 타 분야와의 교류 속에서 전시와 비엔날레, 게릴라성 프로젝트 등 확장된 형태로 펼쳐진다. 그 대표적인 예로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의 파빌리온 프로젝트, 파리 퐁피두센터의 이동형 천막으로 구성된 모바일 미술관, 잘츠부르크의 템포러리아트 파빌리온 외 세계적인 아트 페어와 미술관의 팝업 공간이 있다. 모바일 건축은 동시대 문화에서 트렌디한 공간으로 주목 받고 있으나 사실 오랜 시간 삶 속에서 구축, 변형, 확장되고 있는 자생적 공간이다. 노숙자들의 박스와 텐트, 파리근교 비동빌Bidonvilles의 대규모 카라반 집시촌, 소비에트 시기에 제작된 폴란드의 키오스크Kiosk, 유대교의 임시적 공간인 수카Sukkah, 암스테르담 운하의 보트하우스, 오사카의 집단 판자촌인 부라쿠민Burakumin과 서울 도곡동의 구룡마을, 한국의 불법 노점상과 가판대 구조물 외에도 다양한 임시적 공간을 찾아볼 수 있다. 일상 속 모바일 건축의 다수는 정착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삶을 지키기 위한 임시적구조로 드러난다.


숲 속의 건축가들

파리에서 기차로 1시간가량 가면 시 외곽에 뱅센 숲Bois de Vincennes이 나온다. 주말이면 시민들이 피크닉이나 나들이로 찾는 장소다. 그런데 평소에는 인적이 거의 드문 이곳에 비밀스럽게 모여든 사람들이 있다. 바로 파리의 노숙자들이다. 도시를 부랑하던 노숙자들이 숲을 찾은 이유는 무엇일까?

노숙자들은 머물 곳을 찾아 도시의 거리로, 도시 외곽으로 밀려나와 급기야 숲으로 오게 되었다. 도시의 혼란과 불안에서 벗어나 숲 속에 은밀히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이들의 거주지는 우선 쉽게 이동 가능한 텐트를 기본 골격으로 한다. 주로 상용화된 텐트를 각자의 필요에 맞게 변형해 사용하고 있는데, 천막형, 이글루형 등 제각각 창의적인 구조가 인상적이다. 숲에서 거주하는 노숙자들의 텐트는 비좁은 도시 공간과는 달리 여유 있는 숲의 조건을 활용해 복합적 기능을 가진 독특한 공간을 창출한다. 음식을 구해 숲으로 귀가하는 노숙자들은 도시 시스템에 기생하지 않아도 되는 나름의 자립적인 공간과 삶을 모색한다. 이들의 변형된 텐트 공간은 거주하고자 하는 절박함에서 비롯된 주거 형식이다. 노숙자들의 텐트와 같이 임시적 형태의 공간에는 정주할 수 없는 삶을 꾸려나가고자 하는 인간의 강한 의지가 담긴다. 난민, 소수자, 거리의 부랑자, 노숙자 등 정치·사회적인 이유로 추방된 사람들에게 임시 공간은 물리적인 정주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는 소외된 삶의 존속 여부와 직결된다.

 

 

심소미는 독립 큐레이터이며 미술과 건축 관련 글을 쓰고 있다. ‘신지도제작자’(송원아트센터, 2015), ‘모바일홈 프로젝트’(송원아트센터, 2014), ‘Hidden Dimension’(갤러리 스케이프, 2013) 등 다수의 전시를 기획했다. 갤러리 스케이프 책임큐레이터, 갤러리킹 공동디렉터, 보충대리공간 스톤앤워터 큐레이터로 활동했다. 2015년 동북아시아 도시 리서치(예술경영지원센터 후원)를 진행했으며, 2016년 난지창작스튜디오 연구자 레지던시에 입주해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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