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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정원을 읽다] 정원을 국가가 만든다고?
  • 박희성
  • 환경과조경 2025년 4월호

정원의 본질을 알고 있는 전공자들에게는 ‘정원을 국가에서 제도화하여 주관한다’는 상황 자체가 정원의 본질과 개념에 얼마나 모순된 일인지 알고도 남는다. 개인 정원(garden)이 공공의 영역(public garden)으로 확장되는 역사의 궤적을 토대로 본다고 해도, 정원을 제도권에 두고 정책과 사업으로 관리하는 하향식(top-down) 정원 관리는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다.

 

2015년, 산림청은 ‘수목원의 조성 및 진흥에 관한 법률’에 정원을 넣어 ‘수목원‧정원의 조성 및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수목원정원법)’로 개정하고 본격적인 정원 사업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리고 ‘수목원정원법’ 제정 10년에 즈음한 지금, 산림청은 5년마다 수립되는 법정 계획(정원진흥기본계획)을 토대로, 정원 인프라 확충, 전문가 양성, 정원 산업 진흥, 정원 문화 확산의 네 분야에 대한 사업을 추진 중이다. 정원 사업에 대한 지방자치단체의 반응도 뜨겁다. 2025년 3월을 기점으로, 무려 92개의 지방자치단체가 정원 문화 조성 및 육성에 관한 자치법규를 제정했으며 정원 조성 및 운영을 담당하는 부서를 신설하거나 재편했다.

 

이제는 산림청 주도의 정원 사업이 정원의 전통적인 개념과 역사를 역행한다고 해서 마냥 불만을 표출하거나 등한시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심각한 환경 문제에서 우리를 구원해 줄 것만 같은 정원의 이미지가 여전하면서도 지자체장들의 열렬한 구애까지 등에 업고 있는 한, 산림청의 제도와 정책은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이 어쩌면, 조경가들이 더욱 목소리를 내 산림청의 정책을 지원하고 사업의 방향을 유도해야 하는 때인지도 모른다.

 

지금의 정원 정책과 정원 사업이 향후 시의적절하고 유효한 성과로 평가받게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산림청 정원 사업의 시작 배경을 토대로 앞으로 풀어야 할 주요 난제를 점검해 본다.(각주 1) 국제정원박람회로 촉발된 산림청 정원 사업 산림청 주도의 정원 사업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 처음에는 2013년의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있다. 그런데 순천시는 정원박람회를 단지 도시 경쟁력을 위한 수단으로 간주했지, 정원 혹은 정원박람회 자체에 관심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1990년대부터 순천시의 순천만 보존과 동천東川 개발은 서로 첨예하게 맞섰다. 2000년대에 이르러 순천만이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되고 람사르 협약에 등록되면서, 생태적 가치와 위상이 날로 강화됐다. 이에 반해, 시역市域은 광양, 여수 등의 주변 도시와 비교될 정도로 위축되어 도시 경쟁력 확보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순천시 행정가들은 보존과 개발 양단의 답안을 모두 포용하는 방식을 택했다. 즉, ‘대한민국 생태수도’라는 콘셉트를 내세우고 보존과 개발의 매개로서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개최 추진’을 정책으로 결정한 것이다.(각주 2)

 

2009년 2월 25일에는 산림청이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추진을 위한 주무부처로 확정된다. 관련 자료에 따르면, 순천시는 국제 행사 추진에 필요한 절차를 담당해 줄 중앙의 주무부처를 찾았지만, 대부분의 부처는 법률과 제도의 미비를 핑계로 수락을 기피했고 오직 산림청만 적극적으로 검토했다고 한다. 이후 산림청은 순천시 중앙정부(기획재정부)로부터 국제 행사로 승인받도록 협조하는 등 정원박람회 개최지로 최종 확정될 때까지 역할을 했다. 2013년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성공을 거둔 이후, 2014년부터 산림청은 본격적인 정원 사업을 시작하는데, 그 출발은 법적·제도적 기반 구축이었다.

 

수목원과 평행한, 배타적인 정원

산림청이 정원 법제를 선제적으로 구축한 것은 정원 사업의 안정적인 운영과 관리를 위한 탁월한 선택이었지만, 기수립된 ‘수목원법’의 법 체제에 정원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재편한 것이 큰 패착이었다. 정원을 수목원과 같은 단순명료한 시설로 간주하면서 법제 전반에 정원의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문제를 고질적으로 안고 가게 된 것이다. 법제상의 이러한 문제는 정원의 구분에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2015년 처음 개정된 ‘수목원정원법’은 정원을 수목원 분류 체계에 그대로 대응해 적용시켰다. 정원을 국립수목원, 공립수목원, 사립수목원, 학교수목원의 분류에 맞춰 국가정원, 지방정원, 민간정원, 공동체정원으로 구분하고 보니, 운영 주체만 강조될 뿐 정원의 기능을 충분히 담지 못하고 있다는 한계를 드러냈다. 2021년 산림청은 생활정원과 주제 정원(교육‧치유‧실습‧모델정원)을 추가하는 법 개정을 진행했지만, 정원의 식물 자원을 활용한 치유 기능을 강조하고 생활권에서 국민이 정원 가꾸기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정원 진흥에만 목표를 두었기 때문에 법제상 정원 구분은 여전히 불완전했다. 조성 주체와 조성 목적에 따른 구분이 대등하게 나열되는 새로운 문제를 낳았고, 정원의 조성 주체와 조성 목적이 서로 연관될 수 있는 여지―예컨대, 민간정원이면서 교육정원일 수 있고, 공동체정원이면서 치유정원일 수 있다―가 충분하므로 정원의 구분 자체에 모순이 생겨 버렸다.

 

‘수목원정원법’ 제2조 “정원”이란 식물, 토석, 시설물(조형물을 포함한다) 등을 전시·배치하거나 재배·가꾸기 등을 통하여 지속적인 관리가 이루어지는 공간(시설과 그 토지를 포함한다)을 말한다. 다만, ‘문화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 제2조에 따른 문화유산, ‘자연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에 따른 자연유산, ‘자연공원법’에 따른 자연공원,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른 도시공원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공간은 제외한다.

 

정원은 본래 시설(내지 공간)과 행위(조성, 가꾸기, 재배, 휴식 등)의 두 속성을 함께 가지는데, 현행 법제에는 시설(내지 공간)로서의 정원만 한정하고 있다. 이러한 정의는 타법과의 정합성 문제로 정원 진흥에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조경진흥법’의 ‘조경’이나 ‘산림휴양법’의 ‘산림문화·휴양’, ‘도시농업법’의 ‘도시농업’, ‘경관법’의 ‘경관’처럼, ‘정원의 행위’를 시설(내지 공간)과 함께 정의 내림으로써 정원의 기능을 온전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국토 전반에 적용되는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이하 국토계획법)’에서 ‘수목원정원법’의 정원을 별도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은 도시계획상에서 정원을 고려해야 할 근거가 없으므로, 정원은 언제든지 다른 공간으로 대체되거나 용도 폐기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정원은 도시계획법상의 다른 공간과의 관계가 불분명해서, 도시계획에 적용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한계가 있다.

 

정원이 본래의 특성을 발휘하여 국토 환경에 유효한 역할을 하려면, 법제 간의 배타적 관계를 허물고 개념 간의 이해와 조정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국토계획법’은 ‘수목원정원법’의 목적과 취지를 공감하며 정원 개념을 명시하고 법제상의 정원을 도시계획의 지목으로 인정할 것인지 검토해 볼 수 있다. ‘수목원정원법’은 ‘도시숲법’상의 도시숲, 생활숲 개념을 포함시키되 정원을 상위 개념으로 조정하는 것을 고려할 수도 있다. 정원을 상위 개념으로 조정하는 데는 정원의 가치와 목적을 추가하는 것까지 생각해 볼 수 있다.

 

 

환경과조경 444(2025년 4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본문에서 다루는 ‘수목원정원법’ 관련 내용 일부는 2023년 공동연구원으로 참여한 산림청의 ‘정원진흥법재정비’의 성과 내용에 기초한 것이다.

2. 순천만에 국제정원박람회를 개최하겠다는 아이디어는 공무원 최덕림(2003년 순천시 관광진흥과장, 2023년 순천만국가정원박람회 총감독)이 우연히 『고정희의 독일 정원 이야기: 정원박람회가 만든 녹색도시를 가다』를 접하게 되면서 힌트를 얻었다고 알려져 있다.



박희성은 대구가톨릭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한중 문인정원과 자연미의 관계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에서 건축과 도시, 역사 연구자들과 학제간 연구를 수행하면서 근현대 조경으로 연구의 범위를 확장했다. 대표 저서로 『원림, 경계없는 자연』이 있으며, 최근에는 도시 공원과 근대 정원 아카이빙, 유네스코 세계유산 제도와 운영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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