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 이야기, ‘비할 바 없이 근심 없는 곳’
나란히 세계문화유산을 남기고 간 남매가 있다. 누나 빌헬미네 폰 바이로이트(Wilhelmine von Bayreuth)(1709~1758) 공비는 독일 바이로이트에 산스파레유 기암괴석 풍경정원(Felsengarten Sanspareil)을, 동생 프리드리히 대왕은 포츠담에 상수시(Sanssouci) 궁전과 바로크 정원을 남겼다. 산스파레유는 ‘비할 바 없는 곳’이라는 뜻이고 상수시는 ‘근심 없는 곳’을 말한다. 근심이 너무 많았던 프리드리히 대왕은 자신의 여름 별궁과 정원의 이름을 그렇게 지어 불렀다.(각주 1) 누나 빌헬미네는 딸의 결혼식에 맞춰 산스파레유 정원을 완성하고 하객들에게 보여주었는데, 그들 중 어느 프랑스 귀부인이 “와, 비할 곳이 없네!”라고 외쳤다고 한다. 그 외침이 공식 명칭이 되었다. 마치 둘이 짜기라도 한듯 남매는 산스파레유와 상수시를 거의 동시에 조성했다. 흥미로운 점은 두 정원의 조성 개념 차이다. 빌헬미네는 시대를 앞질러 풍경정원의 개념을 적용했고, 프리드리히는 후기 바로크 양식으로 지었다. 모두 1744년에서 1745년 사이의 일인데, 이 시기는 바로크 정원의 권세가 사그라지고 풍경정원이 서서히 대두될 무렵이었다. 영국에선 이미 태동했지만 독일에는 수십 년 뒤에나 상륙하게 되는데, 빌헬미네가 홀로 훌쩍 앞질러 간 것은 기이한 일이다.(각주 2)
그러나 빌헬미네가 산스파레유 정원을 의도적으로 풍경정원으로 꾸미려 했다고 볼 수는 없다. 기존 지형 자체가 매우 독특했는데 그걸 그대로 이용하다 보니 풍경정원이 되어 버린 것이다. 드물게 석회암층에 나도밤나무 숲이 울창하게 자란 곳이었다. 폭 약 15m, 연장 약 700m의 골짜기 여기저기에 석회암, 정확히 말하자면 돌로마이트 암석이 녹아 형성된 기이한 바위와 동굴이 많았다. 빌헬미네의 말대로 “자연 자체가 건축가”였던 곳이다. 이곳에 산책로를 만들고 누각을 배치한 것이 전부였다. 수백만 년에 걸쳐 자연이 만들어놓은 기암괴석의 지형에 인간의 설계가 결합된 이 정원은 바이에른주 환경부가 지정한 가치 있는 지오톱(Geotop)이며 세계문화유산이다.(각주 3)
남매는 무척 사이가 좋아 죽는 날까지 소울 메이트로 서로 의지하며 지냈다. 둘의 험난한 성장 과정을 보면 공주나 왕자로 태어나지 않은 것을 천만다행으로 여겨야 할 것 같다. 아버지의 엄격한 군국주의적 통치와 궁정 생활의 억압 속에서 몹시 힘들게 자랐다. 남매의 아버지는 그 이름 높은 프로이센의 ‘군인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였다.(각주 4) 빌헬미네의 묘사에 따르면, “그는 비록 위대한 인물을 특징짓는 모든 자질을 갖추었으나 너무 다혈질이어서, 종종 격렬한 행동으로 치닫고 나중에 후회하곤” 했다.(각주 5)
군인왕은 변덕이 심해 너그럽다가도 불쑥 포악해졌는데 신하들이 보는 앞에서 황태자 프리드리히를 때리고 발로 차기까지 했다. 훌륭한 군인으로 성장해 주기를 바랐던 황태자가 책만 읽고 음악과 예술에 심취해 있는 것이 못마땅해서 부자간 갈등이 심했다. 결국 견디다 못한 황태자가 도주하려다 발각된 사건이 유명하다. 그때 함께 도주하려 했던 절친한 친구는 결국 사형을 당했다. 법정에서 무기형을 받았으나 왕이 우격다짐으로 형을 바꾼 것이다. 빌헬미네도 동생의 도주 계획을 도왔다는 비난을 받고 일 년간 감금되었다. 남매는 그때 자기들도 죽는 줄 알았다고 한다.(각주 6)
모두 평생의 트라우마를 얻게 된 것인데 그 때문인지 둘 다 예술에 더욱 집착하게 된다. 1740년 군인왕이 타계하자 왕위를 계승한 프리드리히는 곧 프로이센 궁중에 음악이 가득 울려 퍼지게 했다. 남매 모두 음악에 특별한 재능이 있었다. 프리드리히의 플루트 연주와 빌헬미네의 하프시코드(피아노의 전신) 연주는 대가의 경지였다고 한다. 연주에서 멈춘 것이 아니라 둘 다 협주곡, 교향곡, 오페라 아리아 등을 작곡했는데, 그들이 작곡한 음악은 지금도 정기적으로 연주된다. 물론 프리 드리히가 플루트 솜씨 때문에 대왕이란 칭호를 얻은 것은 아니다. 희한하게도 그는 홀연히 전쟁의 화신이 되어 7년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등 숱한 전장을 누비며 프로이센을 강대국으로 이끌게 된다.


* 환경과조경 444호(2025년 4월호) 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프리드리히 대왕과 상수시에 관해서는 『고정희의 바로크 정원 이야기』(나무도시, 2008), 222쪽 “프리드리히 대왕과 상수시” 참조.
2. Adrian von Buttlar, Der Landschaftsgarten. Gartenkunst des Klassizismus und der Romantik. Erweiterte Neuausgabe, DuMont Buchverlag, 1989, pp.135~138.
3. 관련 내용은 다음을 참고. www.bayreuth-wilhelmine.de/deutsch/sanspar/felseng.htm
4. Friedrich Wilhelm 1세(1688~1740). 프로이센을 강대국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군사력을 길러야 한다고 믿고 강력한 군사 조직을 구축한 왕이어서 군인왕(Soldatenkonig)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독일 왕족 남자 이름은 프리드리히 아니면 빌헬름이어서 빌헬미네의 생애에 중요했던 세 남자인 아버지, 남동생, 남편 모두 우연찮게 프리드리히였기 때문에 잘 구분해야 한다. 아버지는 프리드리히 빌헬름, 남동생은 그냥 프리드리히, 남편은 프리드리히 3세였다.
5. 빌헬미네 회고록 29쪽. Wilhelmine Friederike Sophie, Wilhelmine von Bayreuth, eine preussische Konigstochter. Glanzund Elend am Hofe des Soldatenkonigs in den Memoiren der Markgrafin Wilhelmine von Bayreuth , Ingeborg Weber-Kellermann ed., Frankfurt am Main: Insel Verlag(Insel-Taschenbuch, 1280), 2016.
6. 빌헬미네 회고록 157쪽.
고정희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손수 가꾼 아름다운 정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느 순간 그 정원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유년의 경험이 인연이 되었는지 조경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 『신의 정원, 나의 천국』, 『고정희의 바로크 정원 이야기』, 『고정희의 독일 정원 이야기』, 『100장면으로 읽는 조경의 역사』를 펴냈고, 칼 푀르스터와 그의 외동딸 마리안네가 쓴 책을 동시에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베를린 공과대학교 조경학과에서 20세기 유럽 조경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는 베를린에 거주하며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