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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웃거리는 편집자] 1승을 향해
  • 환경과조경 2025년 4월호

고등학교에서 지하철 타고 한 정거장만 가면 영화관이 있었다. 영화관 근처에 맛집과 놀거리가 많아 시험 끝난 날에는 이곳에 가 맛있는 밥도 먹고, 영화도 보며 스트레스를 풀기도 했다. 통신사에서 선착순으로 천원에 영화 티켓을 선물로 주기도 해 방과 후에 친구랑 종종 영화를 보러 갔다. 그때는 OTT가 없었을 때라 영화관이 아니면 영화를 보기 힘들었다. 티켓이 생기면 한 번은 친구 취향, 한 번은 내 취향의 영화를 번갈아 봤다. 취향과 상관없이 친구들 사이에서 재미있다고 소문 난 영화도 보며 다양한 영화를 접했다. 이때 어떤 영화를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알게 되면서 나만의 영화 선택 기준이 생겼다.

 

이제는 OTT가 발달해 많은 영화를 손쉽게 접할 수 있지만, 그때 생긴 나만의 기준은 지금의 영화와 드라마 선택에도 영향을 미친다. 나만의 기준은 네 가지다. 1) 로맨틱 코미디, 스포츠, 타임슬립, 추리물 등 선호하는 장르 2) 좋아하는 배우가 출연하는 영화나 드라마 3) 흥미로운 제목과 예고편 4) 입소문 타고 있는 영화나 드라마. 네 가지 기준의 교집합에 속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발견하면 챙겨 보곤 한다.

 

스포츠 영화인 데다가 주인공인 박정민의 연기를 좋아해서 보고 싶었던 영화가 있었는데, 예고편을 보고 스포츠 영화 특유의 클리셰 범벅일 것 같아 망설이고 있었다. 우연히 유튜브 쇼츠로 본 영화 속 한 장면이 보고 싶다는 마음을 일깨웠다. 마침 구독 중인 OTT 영화 리스트에서 이 영화를 발견해 바로 재생 버튼을 눌렀다.

 

그렇게 본 영화가 ‘1승’(2024)이다. 1승은 배구를 소재로 한 영화로, 김우진(송강호) 감독이 만년 꼴찌 후보인 프로 여자 배구단 ‘핑크스톰’의 감독을 맡아 1승을 향해 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영화는 처음부터 예상을 뒤엎는다. 강정원(박정민)은 해체 직전인 핑크스톰을 일으키기 위해 구단주가 된 게 아니라 다시 잘 팔기 위해 프로 배구단을 산다. 지도자 승률이 10%인 점과 파직, 파면, 파산, 퇴출, 이혼 경력이 마음에 들어 김우진을 감독으로 선임한다. 구단주의 파격적인 행보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핑크스톰이 1승만 하면 시즌권 구매자 중 추첨을 통해 20억을 준다는 것이다. 구단주는 돈이 없는 구단을 위해 그나마 잘하는 선수 두 명을 다른 구단으로 보내 5억을 받아내는 트레이드를 진행시키고, 통역자를 구할 돈이 없어 재일교포를 용병으로 기용하고, 훌륭한 실력에 그렇지 못한 인성을 가져 출전 정지 명령을 받은 선수를 다시 부른다. 이렇게 구성된 핑크스톰은 1승은커녕 1세트도 따내기도 힘들어진다.

 

영화는 1승만 바라보며 달려간다. 스포츠 영화에서 종종 선수의 가슴 아픈 사연이 나오곤 하는데, 이 영화는 선수 사연보다 선수가 가진 특징에 집중한다. 특히 감독은 선수에게 끊임없이 묻는다. “너의 장점이 뭐라고 생각하니.” 프로 생활 6년 내내 벤치를 지키던 선수는 대답하지 못하고, 반대로 단점을 물으니 소심하고 눈치 보는 것이라 답한다. 이를 들은 감독은 눈치를 보니 다른 선수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다며 세터 포지션에 서게 한다. 여기에 유연한 허리를 이용한 기술을 연마하게 했고 이는 팀의 무기가 됐다. 다른 선수에게도 똑같이 질문하며 선수가 가진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게 포지션을 변동하고 경기를 뒤집는 한 방으로 활용한다. 상대 팀이 예상하지 못하는 공격과 수비로 이어지고 점수로 연결되었다. 점차 프로다운 면모를 갖추게 되고 1세트도 못 따던 핑크스톰은 1세트를 넘어 1승을 바라보게 된다.

 

스포츠 영화에서 볼 법한 클리셰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예상을 빗나간 장면과 대사, 몰입도를 높인 시합 연출은 영화를 끝까지 보게 했다. 특히 현실에선 보기 힘든 구단주의 공약들은 나의 웃음 요소였다. 그리고 영화는 뜻밖의 질문을 내게 남겼다. “너의 장점은 무엇인가.” 이 질문의 답이 나만의 1승을 향해 나아가는 첫 걸음이 될 것 같았다. 내 장점은 뭘까, 갑자기 궁금해져 AI에게 질문을 던져보았다. “장점을 찾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장점은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의식적으로 찾아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을 수도 있어요. 과거 경험 돌아보기, 주변 사람에게 물어보기, 다양한 관점으로 살펴보는 등의 방법을 활용하면 나 자신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장점도 더 잘 보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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