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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다시 만난 세계, 조경의 위로
  • 환경과조경 2025년 1월호

신나는 크리스마스 캐럴을 기대했던 지난해 겨울, 난데없는 12.3 비상계엄 사태로 대한민국은 또다시 민주주의의 위기를 맞이했다. 놀란 시민들은 국회로 한달음에 달려가 완전 무장한 특수부대 계엄군과 장갑차를 맨몸으로 막아냈다. 국회에서 어렵사리 계엄 해제가 의결되고 진통 끝에 탄핵안이 가결되는 순간까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민주주의의 회복을 열망하는 시민들의 함성이 차디찬 겨울 광장을 뜨겁게 달구었다.

 

“이 세상 속에서 반복되는 슬픔 이젠 안녕, 언제까지라도 함께하는 거야, 다시 만난 나의 세계.” 1980년대 서슬 퍼런 군부 독재 시절에 목 놓아 부르던 민중가요 대신 거리에는 형형색색의 응원봉과 깃발을 든 2030 청년들이 걸 그룹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떼창으로 부르며 축제와 다름없는 새로운 시위 문화를 만들어냈다. 해외 언론들은 한국이 ‘K팝 문화’에 이어 새로운 ‘K시위 문화’를 만들어냈다며 우리 국민들의 민주주의 회복력에 찬사를 쏟아냈다. 반면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로 한국 경제는 증시 급락, 원‧달러 환율 급등 등 큰 충격을 받았고 정부와 한국은행은 유동성 공급 등 긴급 대책을 시행해 시장 안정화에 나섰지만, 정치적 위기에서 비롯된 소비 위축, 금리와 물가 상승 등 경제 리스크는 지속되고 있다. 정치적 불안이 장기화될 경우 국가신용등급이 떨어지고 외국인 투자자들의 신뢰를 저하시켜 자본의 급격한 유출로 인한 국내 경제의 어려움이 가중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나라의 어려움과 함께 지난해 조경계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임금과 원자재 가격 등이 오르면서 건설 업종 수익성이 전년 대비 크게 나빠졌고, 하도급 회사가 대다수인 조경 시공 회사 경영에도 연쇄적으로 적신호가 켜졌다. 정부의 ‘건전 재정’이라는 명목하에 복지, 민생 안정 정책은 후퇴하고 공공 부문의 건설 관련 예산도 대폭 삭감되어, 선행 지표 격인 건설 계약액도 5년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서면서 대부분 영세한 조경설계사무소도 일감을 찾느라 애를 먹었다. 연말 비상계엄 이후 탄핵 정국이 이어지면서 불확실성이 커져 주택 거래가 위축되고, 공공 기관이 발주하는 건축·토목 사업도 영향을 받아 향후 건설 경기 전망을 어둡게 하면서 새해를 맞이하는 조경계의 어려움도 더 커지고 있다.

 

‘어둠이 짙을수록 새벽이 가깝다’는 옛 선인의 고사처럼 2025년 신년을 맞이하여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회복과 함께 조경계도 찬란한 부활을 꿈꾸어본다.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가 계엄 사태에 놀란 시민에게 새로운 희망과 위로의 노래로 울려 퍼지듯, 조경이 만드는 세상도 우리 사회에 큰 위로가 될 것이다. 5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한국 조경은 산업화 시대의 단순한 국토 환경 조성 역할을 넘어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녹색 공간 복지에 기여하는 필수 분야로 자리매김해 왔다. 공원 녹지로 대표되는 생활 공간의 녹색 인프라(green infrastructure)는 지역 사회에 중요한 서비스를 제공해 기후위기로 인한 홍수, 폭염 등 자연재해로부터 시민 안전을 도모하고 인간과 환경의 건강을 뒷받침하는 대기와 수질 개선에 도움을 준다.

 

조경가는 옥상 녹화, 벽면 녹화, 빗물 정원, 잔디 수로, 투수 포장 등 기존 토목의 접근 방식과 다른혁신적 친환경 인프라 해결책을 통해 크고 작은 지역 사회가 빗물을 관리할 수 있도록 돕는다. 조경은 공원과 개방된 공간을 자연 탄소 흡수원으로 변환하는 기후 포지티브 디자인(climate positive design) 접근 방식을 사용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변화하는 기후에 적응할 수 있도록 자연과 함께 설계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생물 다양성을 높이고 지구상의 생명체를 지탱하는 생태계를 보호하고 복원한다. 또 조경가는 자연환경과 함께 인간 커뮤니티를 돌봄으로써 인종과 성별, 직업과 국가를 넘어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 문제에 대해 더 정의롭고 포용적인 커뮤니티, 공정한 사회로의 길을 모색하고 선도한다. 조경가는 환경 및 사회과학 교육과 첨단 기술의 활용을 통해 활기차고 탄력적이며 공평하게 모두를 위한 정의로운 커뮤니티를 설계할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을 갖추고 있다. 동네의 작은 골목길부터 어린이 놀이터, 공원, 도시 전 지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규모에서 조경가는 공공 레크리에이션 시설, 운동 시설, 자전거 도로, 산책로 등 신체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장소를 조성하며, 지역 사회의 장기적인 건강과 회복력을 향상시키고 안전하고 건강하며 능동적인 교통 시스템을 갖춘 걷기 좋은 교통 중심 환경을 계획하고 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조경은 이제 소극적 의미의 경관적, 미학적 기능을 넘어 공공 복지를 실천하는 사회 서비스의 중요한 첨병이다. 자연환경과 인간 커뮤니티를 새로운 접근 방식으로 설계하면서 우리 사회에 풍부한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다양한 방면의 생태적, 문화적 기능을 향상시킨다.

 

배정한 교수는 저서 『공원의 위로』에서 “공원은 도시의 여백이다. 미래 세대를 위한 숨통이다. …… 공원은 누구에게나 자리를 내주는 위로의 장소이자 모두를 환대하는 공간”이라며 공원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선한 영향력의 무한한 잠재력을 전한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시련을 겪었던 우리 세대에게 다시 되풀이되지 않을 줄 알았던 민주주의의 위기와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서 새해에는 조경이 모든 국민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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