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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가 원종호] 랜드스케이프 플레이메이커
  • 환경과조경 2025년 1월호

원드리

프랭크 리베리(Franck Ribery)라는 은퇴한 축구 선수가 있다. 그는 프랑스 국가대표 출신으로, 현재 김민재 선수가 뛰고 있는 바이에른 뮌헨에서 선수 시절 윙어로 대활약했다. 원종호 소장 이메일과 인스타그램 아이디인 ‘원베리(wonbery)’는 리베리의 플레이 스타일을 좋아하는 팬이자 그 자신도 빠르고 기술적 타입의 축구 동호인인 점에서 비롯된 닉네임이다.

 

그는 본업에서도 빠르고 기술적 스타일의 조경가다. 그러나 리베리처럼 측면을 파고들어 크랙을 만드는 현란한 윙어의 이미지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오히려 그의 본업 스타일은 수비형 미드필더 최초로 발롱도르를 수상한 로드리(Rodri)를 떠올리게 한다. 로드리의 소속팀 감독은 그의 기술적 역량, 영향력, 경기를 읽는 능력, 정신력이 완벽하다고 언급한다. 복잡한 도시 내에 아름답고 쾌적하며 건강한 공간을 만들기 위한 설계 과정에서 개인의 설계 실력뿐 아니라 넓은 시야를 갖고 사무실 안팎에서 의견을 조율해 가며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내는 능력은 훌륭한 조경가로 성장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더불어 ‘더 젊은’ 조경가들이 함께 성장하도록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 역시 중요한 역량이다. 원 소장은 이런 면에서 다재다능한 조경가다.

 

개인적으로 ‘원드리(wondri)’란 아이디를 추천하고 싶을 만큼 그는 세련되고 꾸준하며 노련한 조율자다. 수비형 미드필더의 속성처럼 그는 외부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한때 지도 교수였던 이와 함께 실무를 해서 넘버 투 정도의 역할만 할 것이라 넘겨짚는다. 젊은 조경가 수상을 계기로 그를 제대로 소개할 기회를 얻어 매우 기쁘다. 그간 함께한 여정을 되돌아보며 평범함을 가장한 비범함을 갖춘 젊은 조경가의 출현을 전하고자 한다.

 

성장의 기억

학부 때도 만났지만 본격적 인연은 2011년 그의 대학원 시절부터 시작된다. 빠듯한 스튜디오 작업과 논문, 많은 과제를 수행하면서 바쁜 삶을 함께 보냈다. 그 시절 기억 중 인상 남는 지점이 두 군데 있다. 하나는 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와 협업한 경의선숲길 프로젝트에서 그가 그린 스케치 플랜, 다른 하나는 그의 석사 논문 최종 검토본이다.

 

‘라코닉(laconic)’이란 단어가 있다. ‘최소한의 언어로 요점을 명확히 전달하는’의 뜻을 지닌다. 필자의 대학원 시절 지도 교수가 자주 언급했던 단어로, 최소의 선으로 설계 핵심을 전달하라는 수업 때 사용됐다. 경의선숲길 북쪽 부분을 맡아 진행한 그의 스케치 플랜을 받았는데,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고, 공간적 짜임새를 갖춘 스케치를 보며 그의 설계 감각 스위치가 켜졌다고 생각했다.

 

그가 쓴 논문의 최종 심사 검토본을 10년 넘도록 보관하고 있다. 논문 준비 과정에서의 논리적 구성력과 체계적 매니지먼트 능력이 묻어나는 물증이다. 논문을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좋은 레퍼런스가 될 것이라 생각해 오랫동안 가지고 있다. 안정과 신뢰는 그를 설명하는 또 다른 단어인 셈이다.


간결, 구성, 논리, 체계, 안정 등으로 설명되는 그의 성장 캐릭터는 그 만의 디자인 스타일로 가시화되면서 세련됨과 노련함을 축적하기 시작했다. KnL환경디자인스튜디오 인턴 생활도 실무 능력치를 향상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석사 과정 졸업 후 그는 건설사에 취직해 외국 현장으로 향했다. 설계 분야로 진출하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 시간 동안 다양한 설계 근력을 키우며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이라 기대했다. 언젠가는 같이 일해보자 하는 희망사항을 간간히 흘리면서 안부를 전하곤 했었다.

 

 

환경과조경 441(2025년 1월호수록본 일부


정욱주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와 펜실베이니아대학교 디자인 대학원 조경학과를 졸업했다. WRT, 올린 파트너십(Olin Partnership), 필드 오퍼레이션스(Field Operations) 등 국내외 설계사무소에서 10년 가량 실무 경력을 쌓은 뒤, 2005년부터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14년부터 제이더블유랜드스케이프의 디자인 디렉터 활동을 겸하면서, 도시 정원, 대형 공원, 문화적 장소 구성에 대한 디자인 리서치와 실천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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