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초 조경가
난초 조경가. 그를 이렇게 부른다면 과찬일까. 처음 만난 건 2010년 가을 무렵이었다. 돌이켜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참 한결같다. 수더분하고 꾸밈없는 모습, 무던한 성격을 가진 그는 친구들 사이에서 덕망이 있었다. 그와 가깝게 교류하기 시작한 건 이듬해 정욱주 교수님 연구실에서 석사 과정을 보내면서다. 나이도 비슷하고 몇 가지 관심사도 공유하던 터라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그는 난초를 닮은 면이 있다. 작약이나 모란은 화려한 모습과 강한 향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바쁘지만, 난초는 절제된 외양과 은은한 향을 가지고 바위틈에서 숨어서 핀다. 예부터 사람들은 이런 난초의 겸손함과 고매한 태도를 높게 평가했다. 공자는 “선한 사람과 사귀는 것은 마치 난초를 가꾸고 있는 방에 들어가는 것과 같이 오래 있으면 그 향기를 맡지 못하나 곧 그 향에 동화된다”고 했다. 그는 주변 사람들 돕기를 마다하지 않고 자신을 낮추는 데 익숙하다. 이런 귀한 성품 때문에 그가 자신의 이름을 조경 업계에 알리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생각한다. 주변 사람들의 권유와 추천이 아니었으면 그가 이번 기회에 발굴되어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는 것이 지금보다 더 늦어지지 않았을까.
달필 조경가
난초처럼 조용한 성격 탓에 조경가로서의 면모는 베일에 덮여 있었지만, 그 베일을 걷어보면 뛰어난 자질을 확인할 수 있다. 2010년 겨울부터 약 2년의 기간 동안 원종호 소장과 나는 끈끈한 공모전 파트너였다. 30대를 목전에 둔 20대 후반의 학생이라면 대개 마음이 조급하다. 본격적으로 직업 전선에 뛰어들기 전이라 자신이 선택한 일이 나와 맞는 직업인지 자문하게 된다. 학업과 설계사무소 인턴 생활을 병행하면서도 짬을 내어 여러 개의 공모전에 도전한 것도 우리 자신을 시험대에 올려보기 위해서였다.
우리가 참가했던 제8회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의 주제는 ‘그린 인프라, 그린 시티’였다. 대상지로 선정한 장항습지 일대 도시 환경을 생태적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설계안을 제시했는데, 대상이라는 좋은 결과를 얻었다. 이 공모전에서 원 소장은 전체 설계안의 핵심 메시지를 전달하는 다이어그램을 구상하고 구체화했는데, 논리적 사고의 탁월함과 표현 기술의 우수함을 엿볼 수 있었다.
그는 달필이다. 문인에게 달필이라고 하면 글솜씨가 능숙한 사람을 말하겠지만, 설계가에게 달필이라 한다면 좀 더 다양한 의미가 있다. 대상지에 맞춘 설계를 구상하는 빠른 감각, 주저하지 않고 그려내는 과감한 드로잉, 거친 드로잉을 정교한 플랜이나 다이어그램으로 전환하는 섬세한 솜씨 등을 의미한다. 개인적으로 그의 펜 드로잉을 좋아한다. 드로잉에도 설계가의 특징이 드러나기 마련인데, 날렵한 직선들을 중첩해서 그리는 스케치 스타일이나 플랜에서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그의 설계 특징을 엿볼 수 있다. 둥글둥글하고 수더분한 그의 평상시 모습과 다르게 그의 설계는 이성적이고 명쾌하다. 당시 그와 4개 공모전에 함께 팀을 이뤄 참여했고 그중 3개 공모전에서 상을 받았다. 2012년 박유선과 함께 3인 공동의 팀을 이루어 도전한 제3회 대한민국 신진조경가 대상 설계공모전에서 전문가 대상을 받는 영예를 얻었다. 젊은 시절의 도전과 성취에 대한 경험은 그가 조경가로 직업을 선택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 환경과조경 441호(2025년 1월호) 수록본 일부
최재혁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조경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후, KnL환경디자인스튜디오에서 정원 및 조경설계 실무를 익혔다. 2017년 오픈니스 스튜디오(Openness Studio)를 개소하여 생태적 관점을 바탕으로 정원, 공공 예술 분야에서 폭넓은 활동을 하고 있다. 서울국제정원박람회 조직위원,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서울시립대학교에서 정원과 공원설계 수업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