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수성구가 새로운 비엔날레를 기획하는 데 도와달라는 연락이 왔다. 건축가에게서 연락이 왔으니 건축비엔날레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건축가는 건축과 조경을 동등한 주제로 다루는 비엔날레로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 도시건축비엔날레나 광주폴리 같은 성격의 기획에 조경가가 작가로 참여한 적이 있고 조경 관련 작품이나 주제를 다루기도 했다. 그래서 건축비엔날레나 건축·조경비엔날레나 이름만 다를 뿐 차이가 없어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이 둘은 전혀 다른 비엔날레였다. 최근 건축비엔날레에서 자연의 주제가 인기다. 작년 서울 도시건축비엔날레의 주제도 ‘땅의 도시, 땅의 건축’이었고 부제는 ‘산길, 물길, 바람길의 도시’였다. 그런데 이때 자연은 어디까지나 건축화된 자연을 이야기한다. 조경가가 건축비엔날레의 작가로 종종 참여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건축에 포함된 조경을, 건축의 보조자로서 조경을 의미한다.
한편 조경에서는 최근 정원박람회와 플라워쇼가 유행이고 예술 전시에서도 조경이 인기 소재지만 정작 조경을 주제로 한 예술 기획으로서 비엔날레를 본 적은 없다. 그래서 건축의 부분으로서 조경이 아닌 건축과 조경의 비엔날레는 어떤 형식일지, 건축과 조경은 어떤 시선으로 조경과 자연을 담아야 하는지 건축가와 조경가가 함께 고민해보기로 했다. 우선 기존 비엔날레가 중요시하던 담론에 얽매이지 않기로 했다. 오히려 담론의 장에서 벗어나 실무 현장에 초점을 맞춘 비엔날레를 구상하기로 했다. 수성국제비엔날레의 가장 중요한 기획 방향은 단순히 보여지고 소비되는 전시 행사로서의 비엔날레가 아니라 실제로 도시에서 만들어지는 공공 건축과 공공 공간의 조경을 아카이빙하고 재규정해 미래를 축적해나갈 기회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관계성의 들판’이라는 주제와 제목은 이러한 기획 의도를 반영한 결과였다. 관계성은 건축과 조경, 도시와 자연과 같은 대상 자체보다는 대상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기 위한 키워드였다. 인간의 관점을 넘어 새, 나무, 돌과 같은 비인간의 관점을 포섭하려면 먼저 주체의 자리를 지워야 했다. 건축의 자리를 조경이 대신해봤자 관계는 똑같다. 자연이 소외된다고 인간을 자연이 대체한다면 인간이 소외된다. 그래서 주체를 지우고 관계를 더 탐색하는 데 의견을 모았다. 들판은 영어 필드(field)의 번역어다. 필드는 들판이라는 자연의 풍경이면서 여러 요소가 관계를 맺는 장(場)의 뜻도 있었고, 담론과 이론과 대비되는 현장이나 실무를 의미하기도 하는 중의적 단어였다. 사실 들판, 장, 현장, 어느 단어를 사용해도 영어의 중의적 의미는 사라질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들판’이 비엔날레를 찾는 이들에게 더 많은 것을 상상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관계와 들판을 이번 비엔날레의 성격을 규정하는 두 키워드로 정했다.
* 환경과조경 439호(2024년 11월호) 수록본 일부
김영민은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다.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이고, 설계를 하는 조경가이며, 글을 쓰는 사람이다. 서울대학교와 하버드대학교에서 조경과 건축을 함께 공부했다. 미국에서 도시설계와 조경설계 실무를 하고 여러 나라의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이론적 담론을 생산할 수 있는 설계를 추구하며, 설계를 각성시킬 수 있는 이론과 비평 작업을 해나가고자 한다. 현재 조경기술사사무소 바이런과 함께 설계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