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를 시작한 지 어느덧 2년이 됐다. 여러 법제도가 어떤 목적과 수단으로 시행되며 어떤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는지에 관심을 가져 왔고, 그간 몇몇 연구와 수업에서 다루기도 했다. 그러나 이 주제로 열두 번의 글을 쓰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생각해 두었던 ‘거리’가 금세 떨어져 솔직히 고백하자면 중복해서 등장한 소재도 있다. 연재 전에 알고 있던 것 이상으로 연재를 하면서 알게 된 것도 많다. 쓰고 지우기를 무한 반복하며 문장을 짓는 나의 대책 없는 글쓰기 방식에 대해서도 반성했다. 참 무모한 도전이었고, 부끄러움을 평생 지고 가야할 것 같다.
마지막 원고에 이르러 이 연재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한 것일까 돌이켜보며 열한 편의 원고를 찬찬히 다시 읽어 보았다. ‘제도는 정당한가, 그리고 효율적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연재를 시작한 이래, 도시 제도와 우리 도시 공간의 ‘크기’, ‘비움’, ‘다양성과 통일성’, ‘생로병사’, ‘소유’, ‘자연’, ‘기능’, 그리고 ‘역사’에 관여하는 바를 이리저리 헤집었다.
특히 여러 현실 공간의 사례와 기사를 많이 다루려 했다(그림 2). 대개는 우리 도시 제도가 만든 공간 현상의 부정적 결과를 들추며 제도의 불완전함과 부작동, 나아가 부조리를 지적하기 위해서였다. 첫 원고에서 ‘제도는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질문했지만, 역시나 비판이 쉽기 때문이다. 전보다 더 나은 도시 공간을 만드는 데 기여한 도시 제도도 많고, 제도 자체도 더 좋은 방향으로 발전해 왔는데 그런 부분은 충분히 다루지 못했다. 각 꼭지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내용들을 되짚어 보면 다음과 같다.
도시의 ‘크기’에 관여하는 제도는 ‘최소’, ‘최대’ 같은 기준으로 도시의 웬만한 공간 요소의 크기를 재단한다. 우선적으로는 더 높고, 더 넓은 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개인의 욕망을 공공의 이익을 해치지 않는 선으로 제한하기 위한 목적에서다. 그러나 동시에 ‘크기’에 관여하는 제도는 더 높고, 더 큰 도시를 향한 우리 사회의 집단적인 욕망을 수용하고 혹은 부추기며, 작은 공간에 더불리하고 가혹하게 작용하는 ‘이중 플레이’를 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내 방 창문의 크기부터 도시의 크기까지, 도시 공간의 크기를 정하는 제도가 못하는 것이 있다. 도시의 크기를 줄이는 것이다. 도시 자체의 ‘크기’에 관여하는 현대의 도시계획 제도는 오로지 인구가 늘어나는 것을 전제하고 그에 맞춰 도시를 넓혀 짓는 물레라서 거꾸로 돌아가지 않는다. 인구가 감소하는 만큼 이미 만들어진 도시를 합리적으로 줄여나가기 위한 도시계획 제도는 사실상 아직 없다. 그러나 인구 감소를 넘어 소멸을 우려하는 지방 소도시에서도 기성 시가지 밖 새로운 땅에 새로운 건물을 짓는 것을 허용하는 물레는 여전히 돌아가고 있어 사실상 도시를 늘려가고 있는 셈이다.
도시의 ‘비움’에서는 공공이 마련하는 ‘공동의 비움’과 민간이 대지 단위에서 확보하는 ‘개별의 비움’ 간의 균형에 대해 질문을 제기했다. 우리 도시의 주거지에서 단지형 아파트가 점점 더 우세해지는 상황은 도시가 공유하는 비움이 아닌 외부에 배타적인 비움이 늘어나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더 큰 문제는 도시 안에서 그 분포와 역할이 다른 두 비움 간의 적정한 배분이나 상호 관계에 대해 도시 제도가 거의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달리 말해 ‘공동의 비움’을 만드는 제도와 ‘개별의 비움’을 만드는 제도는 각각 움직인다.
* 환경과조경 439호(2024년 11월호) 수록본 일부
유영수는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로재와 기오헌에서 건축 실무를 경험했다. 런던 정치경제대학교에서 도시 디자인과 사회과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돌아와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며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병행했다. 현재는 인천대학교 도시건축학부에서 법, 제도, 현대 도시설계 이론, 스튜디오를 가르치고 있다. 건축과 도시를 아우르는 스케일에서 개별적인 공간 현상과 법제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고, 계획과 디자인의 역할을 확장하기 위한 이론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