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1. 용산공원에서 내셔널 몰까지 12시간 15분
오전 5시 10분, 우려와 달리 눈이 번쩍 뜨였다. 몇 달을 기다려온 출장이다. 올해 ASLA(American Society of Landscape Architects)(미국조경가협회) 대회가 워싱턴 DC에서 열린다는 소식에 으쌰으쌰 발표 자료를 만들어냈다. 동료 발제자들과 용산공원의 시민 참여에 관한 다양한 켜를 다루는 교육 자료를 준비했는데, 과연 이게 먹힐지 모르겠다는 의문과 열심히 준비해 좋은 성과를 내고 싶다는 마음이 공존했다. 사실 여러모로 조경과 연관 있는 도시인만큼 그냥 간다고 해도 누가 뭐라 하겠냐만 왠지 모르게 ‘대회’, ‘학술’, ‘답사’라는 키워드를 끼고 가야 양심이 덜 아프다.
집 현관에서 워싱턴 DC 숙소까지 비행 시간 열두 시간을 포함해 꼬박 열여덟 시간이 걸렸다. 발표 준비를 완벽하게 못 했다는 걱정도 잠시, 파란 하늘과 듀폰 교차로 광장(Dupont Circle) 주변 예쁜 역사 유적지들이 마음을 들뜨게 했다. 역시 집 바깥은 즐겁다.
내셔널 몰이 ‘몰’인 이유
몰(mall)하면 떠오르는 첫 번째 모습이 쇼핑몰이다. 긴 보행로 양측으로 상점가가 길게 늘어선 실외 또는 실내 공간. 하지만 녹지를 양옆으로 둔 긴 가로도 몰이라고 부른다. 후자에 해당하는 몰의 어원은 16세기와 17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오늘날 크리켓의 원형인 펠-멜(pall-mall) 게임에서 따왔다는 설이 유력하다.(각주 1) 실제로 그 모습을 그린 그림을 보면 그제야 어원을 납득할 수 있다. 판더페너의 그림은 녹지 공간 사이 선형으로 길쭉한 경기장을 담고 있다. 손잡이가 긴 나무 망치로 공을 쳐서 멀리 위치한 골대로 가게 하는 게 게임의 목적이다. 즉 ‘녹지를 양옆으로 둔 선형의 넓은 가로’라는 점에서 이 공간이 오늘날 공원이나 오픈스페이스의 몰이 된 것이다. 이 어원을 염두에 두면 결국 몰이란 녹지를 양옆에 둔 넓은 직선형 오픈스페이스라고 정리할 수 있다.
**각주 정리
1. 이탈리아어로 공과 나무 망치를 의미한다.
* 환경과조경 439호(2024년 11월호) 수록본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