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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웃거리는 편집자] 다음을 꿈꾸는 반란
  • 환경과조경 2024년 11월

평소 관심이 없던 야구에 호기심을 갖게 하는 영상을 보게 됐다. 땡볕으로 달궈진 야구장의 홈 플레이트까지 전속력으로 달리고, 공을 잡기 위해 온몸을 던지고, 있는 힘껏 방망이를 휘두르고, 때론 패배의 슬픔을 주체하지 못해 땅에 닿을 정도로 고개를 숙이며 울고, 짜릿한 승리에 포효하는 까까머리의 소년들. 처음엔 만감이 교차하는 승패의 순간을 잘 담아낸 스포츠 영화 예고편인 줄 알고 봤는데, 알고 보니 2024 고시엔(Koshien) 하이라이트 영상이었다.

 

고시엔이 대체 뭐길래. 소년들이 이토록 열광하는 걸까. 대회가 열리는 구장의 이름에서 유래한 고시엔은 일본 고교 야구대회로 봄과 여름에 개최된다. 3,700개에 달하는 고등학교 야구부 중 지역 예선을 거쳐 올라온 49개의 팀이 우승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특히 올해 여름 고시엔은 한국계 고등학교 최초로 교토국제고등학교가 우승을 차지했다.

 

이들의 우승은 ‘꼴찌들의 대반란’에 가깝다. 창단 초기엔 제대로 야구를 배운 선수가 한 명에 불과했다. 제대로 된 운동장이 없어서 정식 훈련을 위해 다른 운동장을 빌려야 했고, 34 대 0이라는 굴욕적인 대패를 당하기도 했다.(각주 1) 역설적으로 대패를 안겨준 상대 팀 선수 고마키 노리쓰구(Komaki Noritsugu)는 고등학교 졸업 후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교토국제고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이후 좋은 성적을 거두기도 했지만, 올해 우승 직전까지 테이프로 감은 야구공으로 연습할 만큼 사정이 좋지 못했다. 그들의 사연을 접한 한국의 한 프로야구단이 연습공을 후원했다는 미담이 알려지기도 했다. 그들의 우승이 따뜻한 환대와 열정이 빚어낸 결과인 것 같아 고시엔 영상이 더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감동에 잠시 허우적거리는 와중에 고시엔을 소재로 한 드라마를 우연히 발견했다. 드라마 ‘하극상 야구 소년’은 내일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은 만년 꼴찌 야구부가 ‘고시엔 진출’이라는 하극상을 일으키는 과정을 다룬다.(각주 2) 형이 이루지 못했던 고시엔 진출이란 꿈을 대신 이루기 위해 야구부에 입단한 동생,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직무 정지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승리를 위해 부원들의 장단점과 상대 팀의 약점을 꼼꼼하게 파악해 부원들에게 건네는 감독, 빠른 속도로 에이스로 성장해 나가는 후보 선수를 위해서 자신의 선발 투수 자리를 기꺼이 양보하는 만년 에이스, 아파도 아픈 티를 내지 않고 선수들의 마음을 보듬고 사기를 올려주는 코치.

 

스포츠 영화의 클리셰인 꼴찌의 반란과 성장이란 서사가 어떻게 흘러갈지 알면서도 드라마를 보는 내내 응원하는 마음으로 그들의 성장을 지켜보았다. 이 꼴찌들의 반란이 좋았던 건 도파민을 자극하는 짜릿한 대반전이라는 점도 있지만, 단순히 시합의 스코어로 단박에 평가할 수 없는 숫자 너머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열악한 환경과 시련을 이겨내고 하나의 그라운드 위에서 같은 유니폼을 입고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전력 질주하며 경기장 안팎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에 괜히 뭉클했다. 과장을 보태자면 대반전이란 결과를 완성해 나가는 지난한 과정이 아름다운 반란으로 다가왔다고 할까.

 

가을은 반란의 역사를 쓰는 야구 시즌이기도 하지만, 젊은 조경가의 계절이기도 하다. 젊은 조경가 수상이 조경가를 단박에 평가하는 단일한 잣대로 적용될 수는 없다. 하지만 이탈하거나 한눈팔지 않고 용기와 끈기를 갖고 자신의 세계를 완성하기 위해서 지난한 과정을 거치며 아름다운 반란을 꿈꾸는 이들에게 보내는 작은 위로 정도는 되지 않을까.

 

어쩌면 청춘의 특권은 반란일지도 모른다. 기존의 질서를 뒤집고, 무모한 꿈을 꾸며, 한계를 넘고 자 노력하는 이들 모두 청춘이다. 하극상 야구 소년의 주인공인 야구부 감독은 숱한 패배와 시련을 딛고 고시엔 진출이란 꿈을 이룬 후 이런 말을 한다. “한 가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진다고 끝이 아니란 겁니다. 반드시 다음이 있습니다. 다음을 목표로 하는 한 우리는 끝나지 않습니다.” 올해 젊은 조경가 접수(마감은 11월 4일까지)를 놓쳤거나 수상을 못했더라도 다음을 꿈꾸는 조경가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다음을 꿈꿀 수 있다면 모두가 청춘이고, 모두가 젊은 조경가다. 그렇다면 고시엔 우승처럼 미래의 한국조경도 빛나는 대반전이란 다음을 꿈꿀 수 있지 않을까.



**각주 정리

1. 홍석재, “25년 전 0-34 패배 안긴 선수가 감독으로…교토국제고 강자 우뚝“, 「한겨레」 2024년 8월 23일.

2. 2018년 고시엔에 진출한 하쿠산 고등학교 야구부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당시 일본 언론은 이를 ‘일본 제일의 하극상’으로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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