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떠보니 경복궁역이었다. 경복궁역에서 지하철을 탄 게 분명한데, 아직 열차가 출발하지 않은 걸까. 다시 잠에 빠졌다. 온몸에 흘러내리는 식은땀에 다시 눈을 떴다. 또 경복궁역이었다. 시계를 보고 그제야 깨달았다. 깊은 잠에 빠져 3호선 구간을 세 번이나 왕복한 것. 닷새 밤 꼬박 새워 겨우 마무리한 졸업 작품 패널을 경복궁역 지하 전시장에서 열린 ‘한국조경작품전’에 걸었던 1990년 가을 어느 날의 고단한 기억. 요즘도 영화의 플래시백 장면처럼 꿈에 출몰한다.
이번 호에는 제21회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 수상작들을 싣는다. 대상을 수상한 강현지‧박시연‧송재영(경희대학교 환경조경디자인학과)의 작업은 댐을 개방해 하천 생태계를 회복하고 댐 해체 잔해를 재사용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실험적 경관을 제안한 수작이다. 대상뿐 아니라 여러 수상작 모두 인류세와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조경설계의 창의적 지혜를 선보였다는 평을 받을 만하다. 수상자를 비롯해 119팀의 출품자 모두에게 축하와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은 2004년부터 계속 개최되며 예비 조경가의 등용문으로 자리 잡았지만, 그 전신이라 할 전국 규모 학생 공모전의 시점은 4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8년 한국조경학회 주최로 제1회 ‘전국대학생조경작품전’이 개최됐다. 4년간 열리지 못한 2회 공모전은 ‘전국조경작품전’이라는 이름으로 1982년 부활했다. 이듬해에 3회 공모전이 열렸지만 다시 중단됐고, 1987년에 4회 공모전이 개최됐다. 1988년 5회 때부터는 ‘한국조경작품전’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이후 1991년의 8회까지 이어졌다.
1992년부터 8년간은 작품전의 명맥이 끊겼다. 오랜 공백 끝에 2000년 늘푸른 재단이 학생 대상 설계공모전을 주최했다. 2001년부터는 늘푸른 재단과 한국조경학회가 공동 주최하는 방식으로 ‘늘푸른 환경조경설계공모전’이 3년간 개최됐다. 이때부터 공모전은 해마다 특정 주제를 내걸었는데, 2001년 주제는 ‘자연으로의 회귀, 인간적 환경으로의 환원’, 2002년은 ‘네트워킹을 통한 쾌적한 도시환경의 전개’, 2003년은 ‘물과 도시 환경’이었다.
2004년부터는 늘푸른 재단과 한국조경학회이 공동 주최하는 전국 공모전 이름이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으로 변경됐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 제1회(2004년) 환경조경대전의 주제는 ‘회고와 전망: 우리 시대 조경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서’였다. 2회(2005년) ‘다이내믹 랜드스케이프: 역동하는 경관, 생산하는 경관’, 3회(2006년) ‘도시+재생’, 4회(2007년) ‘도시 인프라—조경을 만나다’, 5회(2008년) ‘작동하는 경관’, 6회(2009년) ‘길’, 7회(2010년) ‘공원도시’, 8회(2011년) ‘그린 인프라, 그린 시티’, 9회(2012년) ‘경계의 풍경, 그 경계’로 이어진 주제만 보더라도 이른바 “조경의 시대”를 맞은 당시 한국 조경계의 지향점과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 열풍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 시절 환경조경대전은 신진 조경가들의 화려한 등단 무대이기도 했다. 초기 수상자 명단을 살펴보면 현재 국내외 설계사무소와 대학에서 맹활약 중인 40대 조경가들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다. 박경탁과 이상수(1회 대상), 이진욱(1회 최우수상), 박유선(2회 최우수상), 박경의와 이윤주(2회 우수상), 백종현(3회 대상), 안동혁(3회 최우수상), 이상훈과 이성민(3회 우수상), 최영준‧박태형‧강한솔(4회 대상), 최혜영(4회 특선)을 비롯한 여러 이름이 눈에 띈다.
2013년 제10회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의 주제는 ‘열린 정원’이었고, 11회(2014년) 주제는 ‘공공복지’였다. 9회까지 엇비슷한 공통분모를 지녔던 주제가 다변화되기 시작했다. ‘근대문화유산의 공간에 대한 조경적 접근’을 주제로 내건 12회(2015년)부터 월간 환경과조경이 한국조경학회, 늘푸른 재단과 함께 공동 주최자로, 때로는 공동 주관 기관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16회(2019년)부터는 늘푸른 재단의 역할이 후원 기관으로 바뀌었다. 13회(2016년) 주제는 ‘기후변화와 조경의 역할’이었고, 14회(2017년)는 ‘광장의 재발견’이었다. 15회(2018년) ‘도시재생과 미래의 조경’, 16회(2019년) ‘도시공원의 안과 밖’, 17회(2020년) ‘포용도시’, 18회(2021년) ‘건강도시와 조경’, 19회(2022년) ‘리:퍼블릭 랜드스케이프’, 20회(2023년)와 21회(2024년) ‘(The) Nature’로 이어진 환경조경대전의 주제에서 조경계의 이슈 담론은 물론 한국 사회의 변화와 도시 환경의 쟁점을 읽을 수 있다.
이번 438호 환경조경대전 수상작 지면을 편집하다 출품 학생들의 노력과 분투에 감정이입(?) 되어 내친김에 여기저기 흩어진 옛 기록들을 모아 뒤적이다 보니 어느덧 마감 전야다. 오늘밤 꿈에도 지하철 경복궁역이 등장할 게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