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는 바다와 땅을 하나로 일군다. 그들은 물 아래 바당밭에 소라나 전복, 톳이나 미역을 보살피고 수확한다. 땅 위 우영팟에서는 쌈 채소, 당근, 마늘, 호박 등을 키워 자신과 가족의 끼니를 해결하거나 판매한다. 물때와 날씨에 따라 바당밭이나 우영팟에 나가며 해녀들은 각 환경에 필요한 영양분을 물에서 뭍으로 혹은 그 반대로 이동시켜 여러 생물에 이로운 먹이 연쇄를 조성했다. 나는 이 글에서 일 년간 해녀들과 지내며 배운 그들의 고유한 풍경 감각을 묘사하고, 이에 기반을 둔 ‘해륙순환 도시주의(Submersible Urbanism)’를 제안한다. 해녀가 땅과 바다를 연결시키듯, 건축과 조경이 수면 위아래의 다양한 행위자들의 (부가) 생산물들을 호혜 교환할 수 있게 한다면 어떨까? 지역 공동체마다 각자의 방식으로 바다와 땅의 리듬을 따라 에너지를 순환시킨다면 어떤 모습일까? 이 연재에서 해륙순환 도시주의를 세 편의 에피소드와 함께 도시, 풍경, 건축의 스케일로 상상해보겠다.
코로나19가 일상을 마비시켰던 2020년 초 나는 대학원에서 건축 전공으로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학교가 문을 닫고 모든 수업이 화상으로 전환되던 시기, 교수님에게 졸업 연구를 제주에서 하겠다고 말했다. 당시 지도 교수 중 한 명이었던 게럿 도허티(Gareth Doherty)는 현지 조사에 기반을 둔 디자인 인류학을 가르쳤다(“브렉시트 이후 아일랜드 북서부 풍경: 경계에서 백터로”, 『환경과조경』 2024년 6월호 참조). 그는 풍경과 공동체를 깊이 알려면 현장에서 온몸으로 느끼고 생각해야 한다고 가르쳤고, 나는 학교 폐쇄가 그 방법을 실천해볼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겼다. 고향이었지만 중학교 졸업 후 떠나 제주의 건축과 풍경을 깊이 있게 알지 못해 궁금했고, 육지의 목조 한옥으로만 한국 전통 건축이 대표되는 것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다. 졸업 작품을 통해 제주의 고유한 건축과 풍경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격리를 마치고 5월부터는 해안선을 따라 자전거를 탔다. 처음에는 해녀를 연구하겠다는 생각이 없었고, 제주의 지역성이 근대 건축적으로 표현된 예를 찾고 있었을 뿐이었다. 이러한 답사는 로버트 벤투리(Robert Venturi)와 데니즈 스콧 브라운(Denise Scott Brown)의 『라스베가스의 교훈(Learning from Las Vegas)』(MIT Press, 1972)이나 엘리슨 스미스슨(Alison Smithson)의 『차를 탄 엘리스: 도로 위의 관찰자(AS in DS: An Eye on the Road)』(Springer Science & Business Media, 2001)처럼 근대 건축이 만들어낸 풍경을 관찰하고 기록한다는 점에서 궤를 같이한다. 다만 앞선 연구자들이 자동차를 택한 반면 나는 자전거를 선택한 것이 중요한 차이였다.
자전거는 나를 오래된 마을의 골목골목으로 안내했고, 작은 오르막이나 내리막, 바람까지도 오롯이 느끼게 해주었다. 바람이 거센 날이나 오르막이 많은 날에는 편의점이나 마을 정자에서 쉬어가며 마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평균 속도 시속 15km, 6시간의 주행이 내 평균이었기에 집에서 멀리 갈 때는 숙소를 구해 머물면서 여러 마을의 다양한 시간과 장소를 경험했다. 그렇게 답사를 다니던 중 해안가에 검은 현무암으로 덮여 있고 낮고 둥근 지붕을 올린 단층 건물이 해녀 탈의장이라는 것을 알게 된 뒤로, 해녀의 건축과 풍경에 관심을 갖게 됐다.
12월부터는 삼양3동 해녀들과 알게 되면서 삼양으로 이사를 했다. 당시에는 일곱 명이 활동하고 있었다. 톳이나 소라를 옮기는 것 등을 도우며 그들의 일상이나, 분위기, 풍경을 답사 노트, 스케치, 사진, 소리 등으로 기록했다. 게럿은 내게 현장에서 한 시간을 기록하고 해석하는 데 네 시간을 할애하는 ‘1대4 규칙’을 지키길 요구했다. 그는 가치 판단 없이 모든 것을 기록하고 그 기록을 여러 번 다시 읽으며 패턴을 찾아보기를 강조했다. 나는 답사 노트를 쓰고, 현장 스케치를 도면으로 다시 그리고, 녹음한 소리들을 들으며 공간의 성격과 관계를 살폈다. 특히 녹음한 소리는 내가 무의식중에 걸러낸 ‘소음’들을 들려주었고, 이는 바람과 건축, 풍경의 관계를 체감하게 했다. 게럿은 현지의 삶에 몰입하고 기록하고 상상하는 방법을 디자인 인류학 혹은 풍경 현지 조사(landscape fieldwork)라고 불렀다.1
사람마다 정도와 접근법은 달라도, 땅과 사람으로부터 설계를 시작하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주민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묻고 땅에 귀를 기울이는 언뜻 당연한 일은 오늘날 더 빨리 더 많이 생산하라는 자본주의적 명령에 맞서야만 가능하다. 이 명령에 맞서 사용자에게 무엇이 필요하냐고 묻거나 대지를 살펴도 그 답이 시원하게 돌아오는 경우는 드물다. 오직 끈질기게 물어야만 답을 들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영화 ‘땅에 쓰는 시’(2024)에서 정영선 조경가가 풀과 나무, 바위에게 말을 걸고 호미질을 하며 만지고 쓰다듬는 것을 보라. 보살피고 아끼는 마음이 쌓여 영감이 되는 순간을. 또는 정기용 건축가의 안성면사무소 목욕탕을 생각해보자. 그가 주민에게 “돈 처들여 가며 그런 건물을 뭐 하러 짓는가? 목욕탕이나 지어주지”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던 건 정기용이 수많은 이에게 물었기 때문이다. 열린 마음으로 들었기에 설계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2 이런 좋은 선례를 따라 나도 해녀의 풍경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그 속에서 만난 기후 변화와 오염, 위험한 작업 환경, 그리고 사라져가는 공동체에 이르기까지 해녀들이 당면한 과제와 그 해결 방안을 해륙순환 도시주의 관점에서 다뤄보겠다.
“바당에 물건이 어따”
해녀들은 바다에서 채취해서 현금화가 가능한 모든 생물을 ‘물건’이라고 부른다. 물건을 잠수해서 수확하는 일을 ‘물질’이라고 한다. 삼양 해녀들은 예전에는 소라나 전복, 톳이나 미역 같은 물건이 바당에 많았으나 이젠 찾아보기 어렵다며 한탄했다. 그들은 도시의 생활 폐수, 양식장 방출수, 화학 비료가 섞인 유거수, 인근 발전소 냉각수 등을 물건을 사라지게 한 주범으로 지적했다. 특히 발전소 건설 이전, 밀물에는 서로, 썰물에는 동으로 흘렀던 바다가 1980년대 발전소가 생기고 나서부터는 항상 동에서 서로만 흐른다고 해녀들은 말했다. 해녀들은 이것을 강처럼 흐르는 바다라는 뜻에서 ‘강바당’이라고 불렀다. 강바당에서 해조류가 먼저 사라지더니, 다른 물건들도 하나씩 자취를 감추었다.
생활 하수의 경우 1970년대 급격한 도시화와 관광객의 증가 이후, 하수 처리 시설이 그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면서부터 심각해졌다.3 넘치는하수는 완전히 정화되기 전에 바다로 방류되었다. 많은 해녀 공동체가 이런 하수가 그들의 건강과 생활에 지장을 주고 있다고 지적한다. 일례로월정리 해녀들은 하수 처리 시설에서 나온 하수가 그들의 바당밭을 오염했으며, 피부 병변까지도 유발했다고 주장한다.4 또한 일부는 제주 해안에 걸친 380여 개의 양식장에서 나오는 배출수에 포함된 항생제나 사료가 오염의 원인이 된다고 주장한다.
오염과 해수면 온도 상승으로 인해 바다숲이 사막이 되고, 흰 석회 조류가 그 자리를 채우는 백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5 바다숲이 사라지는 것은 바다에 사는 생물들과 그것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 모두에게 치명적이다. 한국수자원자원공단은 이미 2015년 연근해의 35%가 이미 백화 현상이 진행 중이거나 완료되었다고 발표했다.6 이를 뒷받침하듯 2000년대 중반 이후 모든 해조류의 생산량은 감소해왔다.7 해녀들은 이런 바다의 변화를 “바당에 풀이 어따(바다에 풀이 없다)”라든지 “물 아래가 다 희양하다(하얗다)“고 묘사했다.
이처럼 해녀는 색깔을 통해 바다의 오염이나 상태를 인식했다. 비가 많이 오던 날, 삼양 해녀 한 명은 바다가 겉으로는 파랗지만 물 아래는 다 갈색이라고 말했다. 이런 날엔 주변 밭에서 흘러 온 흙이 섞여 앞을 볼 수 없다고. 그녀는 밭에 뿌린 비료나 제초제 등이 바다로 흘러 들어온다며 걱정했다. 이것을 직접적으로 입증한 연구는 찾을 수 없었지만, 한 연구는 돼지 농장이 밀집되어 있고 그 분뇨로 만든 액체 비료(액비)가 살포되는 서부 지역 지하수에서 수질 오염의 한 지표인 질산성 질소 수치가 훨씬 높게 나온다는 점을 밝혀냈다.8 만약 지하수가 오염되는 정도라면 인근 해의 바다 또한 오염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이처럼 깨끗한 물을 가져다 사람의 필요에 따라 소비하고 오염시켜 방류하는 선형적 착취가 바로 바당밭에 물건이 사라진 이유다.
바다와 땅을 연결하기
인간이 자연을 착취해왔던 것만은 아니다. 과거 제주에는 땅과 바다 사이에 필요한 영양분을 선순환시키는 사례가 있었다. 제주 화산토는 배수가 잘됐지만 지력이 약해서 연속적으로 농사를하려면 유기물과 질소를 포함한 영양분을 보충해주어야 했다. 1975년 제주에서 화학 비료 공급이 급격히 증가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제주도민은 두 가지 비료를 만들어 썼는데 그중 하나가 듬북이었다.9 듬북은 식용으로 쓸 수 없는 고지기, 지청, 그리고 실갱이를 포함한 갈조류 모자반과의 해조류를 지칭한다. 이러한 바다풀은 질산과 인산을 함유하기에 해녀들은 이를 잘라 건져내서 건조한 뒤 밭에 비료로 쓰거나 돼지 분뇨와 섞어 사용했다. 이렇게 바다풀을 베어낸 자리에서는 미역이나 톳과 같이 식용 가능하고 현금화할 수 있는 해조류가 자랄 수 있었다
두 번째 비료는 발효된 돼지 분뇨인 돗거름이다. 제주 초가는 통시라는 공간을 분리해두어 화장실과 돼지우리를 겸하게 했다. 통시는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사람들이 화장실로 쓰는 지들팡이라는 돌단과 인분을 먹는 돼지, 그리고 돼지를 가두어두는 돌담이었다. 사람의 부가 생산물이 돼지를 먹였고, 듬북이나 건초와 섞어 발효한 돼지 분뇨는 돗거름이 되어 땅을 비옥하게 했다. 그 땅에서 자란 마늘, 고구마, 당근, 보리 등이 다시 제주 사람들의 식사가 되었다. 돗거름과 듬북은 해륙순환의 좋은 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며 급격한 도시화와 농업의 산업화가 이러한 원형 자원 순환 구조를 선형적 착취로 바꾸어 놓았다. 더 이상 거주와 농업의 부산물들은 순환되지 않으며, 값싼 화학 비료가 친환경 비료를 대체하게 되었다.
해륙순환 도시주의 관점에서 땅과 바다 사이의 호혜적 자원 교환을 복원하기를 제안한다. 육상 양식장 대신 인공 해초로 둘러싸인 인근해 양식장은 어떤가. 인공 해초는 양식장에서 나온 과도한 영양분을 흡수하여 자라 해삼이나 성게, 전복 등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이 될 것이다. 그리고 양식장에 먹이로 공급되는 지렁이들은 돼지 분뇨를 먹으며 자라고, 지렁이똥(분변토)은 다시 농가에 비료로 공급될 것이다. 은퇴 해녀가 소득이 필요하다면 지렁이를 키워 낚시꾼들에게 미끼로 팔거나 지렁이와 분변토를 자신의 우영팟에 쓸 수도 있을 것이다. 현역 해녀들은 인공 해초들을 돌보며 미역이나 톳을 키우고, 물건을 수확하며 바다 속 이산화탄소도 줄이고 다른 생물의 서식지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관계를 통해 해녀들은 그들의 바당밭을 확장하고,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지켜갈 수 있지 않을까. 사람도, 도시도, 풍경도, 땅과 바다의 순환 속 일부로 설계한다면, 더 이상 쓰고 버리는 무분별한 착취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효율과 편의를 쫓아 잠시 잊었을 뿐 방법은 있어왔으니까.10
각주
1. Gareth Doherty, Landscape Fieldwork: How Engaging the World Can Change Design , University of Virginia, 2024.
2. 최선희, “건축가 정기용이 지난 10년간 전북 무주군 곳곳에 31개의 공공건축물을 세웠으나 관리 부재로 문제점 속출”, 『월간조선』 2009년 11월호.
3. 강민정·권상철, “제주시 도시화의 공간적 특성: 인구와 지가 변화를 중심으로”, 『한국도시지리학회지』 10(3), 2007, pp.55~67.
4. 이석형, “월정리 해녀들 “오폐수 방류로 구토와 피부트러블 생겼다”“, 「뉴스1제주」 2008년 12월 17일.
5. 윤지희, “바닷속 석회조류 다닥다닥…마을어장 3분의 1황폐”, 「세계일보」 2014년 7월 23일.
6. 형민우, “바다사막화 1. 온 바다가 ‘시름’…여의도 65배 면적 황폐화”, 「연합뉴스」 2017년 7월 17일.
7. 녹색연합, “그 많던 제주의 ‘구쟁기’는 누가 다 먹었을까?”, 녹색연합 홈페이지, 2022년 6월 5일.
8. 김정호, “제주 가축분뇨 살포 땅 시추해보니 ‘지하수 오염 위협적’”, 「제주의소리」 2021년 11월 30일.
9. 고광민, 『제주도의 생산 기술과 민속』, 대원사, 2004.
10. 이 글은 중국 『Landscape Architecture』 2022년 11월호에 실린 글을 번역해 수정, 보완한 것이다. Kang Jun Ho·Gareth Doherty·XIAO Su Feng, “Submersible Urbanism and Its Commons: Jamsu (Haenyeo) Living Across Land and Seaon Jeju Island”, 『Landscape Architecture』 29(11), 2022, pp.131~144.
강준호는 존재와 제도가 만든 풍경을 읽는 건축가다. UCLA에서 건축과 미술사를 복수전공한 뒤 하버드 디자인 대학원(GSD)에서 건축학 석사를 마쳤다. 이후 게럿 도허티(Gareth Doherty)의 비평적 조경 디자인 연구소(Critical Landscapes Design Lab)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며 해안 지역의 기후 변화 인식을 조사했다. 현재 건축가와 정원사로 일하며 조경과 건축을 함께 실천하려 노력하고 있다. @junho_s_k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