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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의 도시공원 이야기] (B급의) 뉴욕 공원 문화 향유기
  • 환경과조경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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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 Squares, Parks, and Places in the City of New York, 1852(출처: 뉴욕공립도서관) 1852년 뉴욕 시가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지도 문서다. 배터리 공원을 비롯해 허드슨 광장, 파이브 포인트 공원, 워싱턴 스퀘어, 톰킨스 스퀘어, 유니언 플레이스 등 지금도 익숙한 맨해튼 이곳저곳의 지명이 보인다. 공원 내부를 기록하기보다는 면적과 규모, 위치를 한눈에 보기 위해 만든 점을 주목할 만하다.

 

 

에피소드 1. 싱클레어로부터의 탈피

얼마 전 박사과정을 위해 미국으로 떠난 동기의 연락을 받았다. “여기 애들은 뭐 하고 놀아요?” 도시화율 80%에 빛나는 대한민국에서 살다 미국 중부로 떠났으니 무얼 하며 하루를 보내는 것인지 궁금한 게 당연하다. 이는 필자가 ‘자유’를 찾아 뉴욕 시로 간 이유와도 일맥상통하다. 필자가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곳은 아름다운 대자연이 숨 쉬는 캐나다 벤쿠버 섬. 운동을 장려하는 학교 분위기에서 학생들은 뛰어다니고, 다람쥐와 토끼와 사슴이 뛰놀고, 연어도 뛰어오르고, 덩달아 불곰도 앞다리를 휘두르는 아름다운 경관이 창밖으로 펼쳐지는 정말 심심하기 짝이 없는 곳이었다. 심심해서 운동하는 학생들이 종종 있었고, 필자 역시 심심함에 몸부림치다 지치면 숲길로 나가 정처 없는 산책을 하곤 했다. 봄이 되면 곰이 나올 수 있으니 숲에 들어가지 못해 책 한 권 들고 기숙사 앞 잔디밭에 누워 뒹굴거리기도 했고, 그마저도 신경이 쓰이면 방 안에서 공부했다. 데미안이 남겨두었던 메모를 읽고 세상이 흔들려버린 싱클레어에 몰입한 이유다.(각주 1) 유흥 거리가 없으니 자아의식이 강해지고 혼자서 또는 주변 친구들과 세상에 대한 질문을 시작했다. 그래서 뉴욕으로 갔다. 세상의 기원에 대한 자기성찰적 질문으로부터 자유를 구하고 인간이 만들어낸 유흥 거리(각주 2)로 회귀하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번화한 곳으로 갔고, 그곳에서 완전히 다른 자연을 만났다.


여기가 뉴욕대학교 입구인가요? 워싱턴 스퀘어 공원

곰과 사슴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 순수한 인공 환경 속에서 한창 밤낮이 바뀌어 뉴욕을 쏘다니던 필자에게 어떤 신사가 말을 걸었던 것이 기억난다. 대형 버스가 공원을 둘러싸고 있어 어느 아시아계 지역에서 단체로 대학 투어를 다니고 있구나 싶었다. 작은 아시아 사람을 보고 반가웠는지 그가 물어보길, “이곳이 뉴욕대학교 입구인가요(Is this the door to NYU?)” 순간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맨해튼 그리니치 지역의 워싱턴 스퀘어 공원(Washington Square Park)은 캠퍼스 없는 대학으로 잘 알려진 뉴욕대학교 정중앙에 위치해 있어 캠퍼스의 중심에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필자가 뉴욕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공공 공간 중 하나다. 멍하니 다른 사람들을 구경하기에 최적의 공원이다. 거대한 개선문 형태의 워싱턴 스퀘어 기념비 앞으로 여름을 알리는 분수가 뿜어져 나오고, 그 주변에 사람들이 앉아 시간을 보낸다. 중앙 광장을 중심으로 반려견 놀이터와 녹지가 있고 수목 천개가 잘 펼쳐져 있어 아주 작은 사이즈의 센트럴파크 분위기를 자아낸다.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형태로 공원이 조성된 건 1870년인데, 시기상 옴스테드의 센트럴파크 영향을 크게 받았을 테다.(각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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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스퀘어 공원 ⒸLeonid Andronov/shutterstock

 

 

하지만 뉴욕대학교와의 연결 고리는 ‘지리적 가까움’에서 끝난다. 워싱턴 스퀘어 공원은 말 그대로 조지 워싱턴을 기리는 공원이다. 조지 워싱턴이 1789년 뉴욕 시에서 미국의 첫 대통령으로 취임했고, 워싱턴 스퀘어 공원은 1826년부터 군사 퍼레이드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됐다. 1827년이미 공원으로 지정되어 번잡한 뉴욕 다운타운을 피해 공원 주변에 자리 잡은 사람들이 여럿이었다. 공원 주변의 신고전주의 건축 양식이 그 당시의 산물이다.

 

조경 측면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2007년의 재설계다. 2000년대 중후반에 뉴욕 시에 살았던 사람이라면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조경가 조지 벨로나키스(George Vellonakis)의 설계로 2007년부터 재구조화가 진행됐는데, 녹지가 넓어지고 수목이 더 다양해졌다. 하지만 당시 공원 이용에 제한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기억하는 건 단 한 가지다. “2년 동안 공사해서 분수대를 중앙으로 옮겼다.”

 

 

환경과조경 438(2024년 10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헤르만 헤세의 1919년 소설, 『데미안』의 주인공 에밀 싱클레어를 말한다. 성장과 인간의 초월적 가능성을 다루었는데, 기숙사형 고등학교 출신들을 보면 대다수 싱클레어에 과몰입했던 경험이 있다.

2. 이 연재의 여러 부분에서 드러났듯, 필자는 컴퓨터 게임과 애니메이션 문화에 푹 절은 학창 시절을 보냈다. 창밖으로 펼쳐진 숲과 

3. 수석 엔지니어 M. A. 켈로그(Kellogg)와 수석 조경 정원사 I. A. 필라트(Pilat)가 1870년 워싱턴 스퀘어의 재설계를 수행했다. 뉴욕 시 공원 홈페이지에 따르면, 공원의 분위기부터 마차 길을 연장하는 것까지 옴스테드가 큰 영향을 끼쳤다.새소리보다 2.5인치 화면 속 포켓몬 숲이 훨씬 더 친근하다.



신명진은 뉴욕대학교에서 미술사를 공부한 뒤 서울대학교 대학원 생태조경학과와 협동과정 조경학전공에서 석사와 박사를 마친 문어발 도시 연구자다. 현재 예술, 경험, 진정성 등 손에 잡히지 않는 도시의 차원에 관심을 두고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의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도시경관 매거진 『ULC』의 편집진이기도 하며, 종종 갤러리와 미술관을 오가며 온갖 세상만사에 관심을 두고 있다. @jin.everyw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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