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1. 타돌이의 반기
이 글을 작성하기 바로 며칠 전, 자유를 갈망한 타조의 성남 도심 탈출기가 기사를 탔다. 함께 지내던 친구가 먼저 세상을 뜨며 상실에 빠진 ‘타돌이’가 근처 생태 체험장에서 탈출한 것으로, 대로에서 버스와 나란히 달리는 위험천만한 풍경이 펼쳐졌다. 봄날의 한 일화로 넘어갈 수도 있지만 최근 연구실에서 토론하고 있는 ‘비인간 도시’의 조건이 생각나며 그 잔상이 가시질 않는다.
만약 이곳이 타조가 뛰어다니는 게 익숙한 또 다른 차원의 세상이라면 타조를 위한 별도의 도로가 있을 수 있을까. 물론 야생 동물이니깐 인간의 신호 체계에 무조건 맞출 수는 없을 것이다. 언젠가부터 야생 동식물 서식처의 연결과 이동을 돕고자 만든 생태 통로가 일반화됐듯, 타조가 도시를 활보하는 어떤 차원에서는 공존을 위한 또 다른 규칙들이 존재했을 것이다.
사실 안전하고 편리한 도시를 꿈꾸며 만들어낸 도로 규칙들은 결코 고정적이지 않다. ‘우회전할 때 횡단보도가 빨간불이면 무조건 멈춤’이라는 규칙 역시 이제 갓 돌이 지난 신생 규칙 중 하나다. 보행자와 운전자의 안전을 위해 제정된 교통 규칙이다. 한 차원 깊이 들어가자면 도시 공간을 누가 점유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실려 있다.
이처럼 실제 공간 규칙은 필요에 따라 언젠가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반대로 관습화된 규칙은 변화에도 쉽게 움직이지 않으며 아주 천천히 바뀐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치렀던 운전면허시험의 기억도 이미 가물가물(참고로 필자는 운전면허 필기시험 73점을 받은 용사다). 실제 우리가 도시 공간을 향유할 때는 대부분 본능처럼 체화된 규칙을 따르기 마련이다. 이 도시 공간 활용의 변화는 반드시 갈등을 불러오고, 공원 역시 여기서 자유롭지 못하다.
또스테드: 뉴욕의 산책과 드라이브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의 걸작 중 하나라고 평가받는 보스턴 에메랄드 네클러스 공원 시스템(Boston Emerald Necklace Park System)은 뉴욕 센트럴파크와 프로스펙스 공원에서 그가 꿈꿨던 ‘녹지이자 교통 인프라이자 여가 공간’으로서 공원이 실험된 곳이다. 특히 파크웨이와 함께 회자되는 옴스테드의 발상 중 하나는 도시의 분리 이용에 관한 것이다. 필자가 종종 참고하는 옴스테드의 1870년 보스턴 미국사회과학협회 발표문을 보면, 그는 이렇게 말한다. “12년 전 뉴욕에서 드라이브(pleasure driving)를 하는 것은 거의 없는 일이었다. 오늘날에는 최소한 1만 마리의 말이 드라이브를 위해 대기하고 있다. 12년 전에는 경량 마차를 위한 길이 전무했다. 오늘날에는 준공된 공원 내 14마일에 달하는 드라이브 코스가 있고 사람이 바글거린다. (뉴욕과 브루클린) 두 도시를 합하면 50마일에 가까운 파크웨이가 조성되어 있으며, 여기에는 적어도 평균 150피트 넓이의 녹지 경계가 만들어질 예정이다.”(각주 1)
비단 옛날이야기로만 치부할 수도 없다. 공원 조성 관련 시민 참여 프로그램을 운영하면 흔히 목격하게 되는 것이 조용하게 자연 속에서 산책할 수 있는 공원에 대한 욕망과 다양한 운동과 활동이 가능한 공원에 대한 욕망의 부딪침이다. 공원 내 자전거 도로용 신호등 체계나 골프 카트와 전기 자동차가 일렬로 서 있는 관리자용 주차 구역이 즐비함에도 불구하고 눈에 띄지 않게 단차를 조정하고 동선을 그려놓은 센트럴파크를 누가 그려냈는가 생각해보면, 이처럼 욕망의 부딪침으로 인한 갈등을 해결하는 건 결국 설계가의 몫이다.
* 환경과조경 433호(2024년 5월호) 수록본 일부
신명진은 뉴욕대학교에서 미술사를 공부한 뒤 서울대학교 대학원 생태조경학과와 협동과정 조경학전공에서 석사와 박사를 마친 문어발 도시 연구자다. 현재 예술, 경험, 진정성 등 손에 잡히지 않는 도시의 차원에 관심을 두고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의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도시경관 매거진 『ULC』의 편집진이기도 하며, 종종 갤러리와 미술관을 오가며 온갖 세상만사에 관심을 두고 있다. @jin.everyw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