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말하고 싶은 것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그래서 원도심은 재생되었을까? 막대한 예산이 집행된 도시재생 사업의 결과와 효과가 ‘참으로’ 궁금하다. 이렇게 질문하니 원도심이 사업 방식으로 재생될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 원도심 재생이라는 표현은 어쩌면 관료, 공무원, 지식인 그룹의 상상속에서 존재하는 판타지적 기호가 아닐까. 과연 원도심은 재생될 수 있을까?
다른 지자체 사정은 어떨까? 대구 외의 여타 지역은 이전 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한 도시재생 사업의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는지 궁금하다. 결론을 말하자면, 대구 원도심은 재생되지 않았다. 아니 재생될 수 없었다. 애초에 원도심 재생을 기대한 게 무리였다. 이제는 말할 수 있겠다. 원도심은 재생될 수 없다고 말이다. 사람이 재생될 수 없는 것처럼. 원도심은 사업 방식으로 인위적으로 재생되는 게 아니다. 원도심은 진화한다. 원도심은 단지 오래된 거리, 골목, 집 그리고 원주민을 뜻하지 않는다. 원도심은 오래된 거리, 골목, 집, 원주민을 포함하여 유입자,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 커뮤니티가 종횡으로 엮인 복잡 생태계다. 또한 원도심은 과거‘들’과 현재‘들’의 서로 다른 시간이 교차하는 복잡 생태계다. 놀라운 사실은 이 복잡 생태계가 진화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 진화의 표정은 한 가지로 그려지지 않는다.
대구의 대표적인 원도심인 북성로. 북성로 거리에는 여전히 공구 가게가 성업 중이다. 도시재생 사업을 계기로 더 주목받은 북성로 공구 가게. 이 가게들의 몰락을 예고한 리뷰와 언론이 적지 않았다. 실제로 문닫은 가게도 없지 않다. 그러나 아직 이 거리의 주인공은 공구 가게들이다. 북성로 거리와 달성공원의 교차 지점 도로에는 여전히 새벽마다 번개 장터가 열린다. 토요일, 일요일 번개 장터는 인파로 가득하다. 향촌동 골목 콜라텍에는 어르신들이 출입하고 있다. 변하지 않는 원도심의 풍경이다.
달라진 풍경도 있다. 북성로 입구에 고층 주상복합건물이 여러 동 신축되고 있다. 올해 내로 입주 예정이라고 한다. 달라진 풍경이 더 있다. 청년 사장이 영업하는 레트로 카페들이 원도심에 입점하고 있다. 더 놀라운 풍경도 있다. 대구 교동시장과 인근은 지역의 ‘힙’한 청년들이 즐겨찾는 거리로 탈바꿈했다. 정리하면 이렇다. 2023년 가을의 대구 원도심은 불변과 가변이 뒤섞인 진화의 풍경을 연출한다.
말하고 싶은 것은 이렇다. 불변과 가변이 혼재된 대구 원도심의 진화는 도시재생 사업과는 무관하게 전개된 풍경이거나 일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풍경과 일상은 그 자체로 선이거나 악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풍경과 일상은 대구 원도심의 풍경과 일상이며 우리는 이 풍경과 일상을 선입견 없이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원도심을 재생 대상으로 간주한 원도심 초보자였다. 수제화 골목에 ‘스토리텔링 공방 북성로대학’을 만들 정도로 원도심 마니아를 자처하며 도시재생 사업의 예산을 지원받아 이런저런 일을 주도하거나 관여했다. 아마도 그때의 나는 원도심은 재생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을 게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원도심은 재생되는 어떤 대상이 아니었다. 원도심은 사업 대상이 아니라는 반성과 원도심은 스스로 진화하는 생태계라는 성찰을 하기까지 적지 않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원도심은 사업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임을 깨달았다. 원도심 진화의 풍경을 조망하고 인정하는 너른 사랑이 내게는 부족했다.
정말 말하고 싶은 건
대구에 교동시장이 있다. 교동시장은 대구역 정문에서 그리 멀지 않다. 교동시장의 교동은 고유명사가 아니다. 향교가 문을 연 마을은 대개 교동으로 불린다. 교동마을이 전국에 산재한 이유이다. 대구도 그렇다. 본래 교동시장 인근에 대구 향교가 있었다.
현재 대구 향교는 남산동에 있다. 1932년 일제 총독부는 대성전, 명륜당 등을 남산동으로 이전한다. 이리하여 대구 향교의 역사가 남산동에서 새로이 시작한다. 향교는 이전했으나 마을 이름은 바뀌지 않는다. 도깨비시장으로 불리던 교동시장은 한국전쟁기에 탄생한다. 교동시장의 인기 품목은 미군 PX 군수품이었다. 이렇게 문을 연 교동시장은 여타의 재래시장과는 성격이 다르다. 다른 재래시장에서 찾기 어려운 구제 의류, 일제 상품, 전자 제품, 시계 가게 등이 교동시장에는 흔하다. 그런데 교동시장이 언제나 호황을 누릴 수는 없었다. 교동시장은 손님들의 발길이 뜸해지자 도시재생 사업의 대상으로 지목된다.
그런데 교동시장을 청년들의 레트로 거리로 바꿔낸 주역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지역 청년들이다. 도시재생 사업의 결과가 아니다. 교동시장과 인근의 오래된 집과 건물, 거리, 골목은 전형적인 원도심의 표상을 연출한다. 그런데 이 거리가 ‘힙’한 청년들의 아지트로 변모하고 있다. 교동의 변모는 인근 동성로와는 비교될 만한 현상이다. 대구 대표 상권 동성로는 터주 역할을 하던 대구백화점이 문을 닫으며 부진을 겪고 있다. 교동은 그렇지 않다. 교동시장과 그 인근에는 터주 역할을 하는 고급 브랜드가 없다. 고층 건물도 없다. 높아야 2층, 3층 게다가 구축이다. 골목은 미로 같다. 임대료는 교동이 동성로보다 저렴하다. 그런데 이런 원도심의 여건이 교동을 살린다. 교동이 대구 레트로의 성지로 변모하고 있다.
교동의 진화는 누가 의도한 게 아니다. 정책 당국자들은 더욱이나 아니다. 누가 의도하였다 하여 이렇게 교동이 바뀔 일이 아니다. 지자체마다 앞다퉈 개업한 청년몰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그 주된 이유가 거리 생태계와 무관한 청년몰의 개업이다. 반면에 교동은 그렇지 않다. 교동은 진화의 여건이 충분하다. 시장, 구축 건물, 거리, 골목이 교동을 청년들의 레트로 거리로 바꿀 진화 토대다.
교동의 예기치 않은 진화를 반기는 마음이 컸다. 그리고 그와 함께 원도심의 진화를 초래하는 청년들의 더 많은 관여와 상상력을 응원하는 마음이 컸다.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도 그렇다.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도 진화할 수 있고 진화해야 한다. 원도심이 진화할 수 있는 생태계라면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도 그럴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가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이론이거나 주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 역시 충분히 진화할 수 있으며 어쩌면 더 진화해야 한다는 얘기다.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는 박제화된 담론이지 않아야 한다. 만약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가 박제화된 담론처럼 이야기된다면 청년 세대들에게 환영받기 어렵다. 아니 청년 세대만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에게 환영받기 어렵다. 이는 대구 원도심도 해당한다.
대구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는 재발견, 재해석될 수 있다. 그리고 재구성될 수 있다. 대구 원도심이 식민지 근대를 경험하며 탄생한 배경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한 예로 대구 원도심에는 ‘희움일본군위안부역사관’이 있다. 대구를 포함한 경상도 지역에 위안부 강제 연행을 겪은 어른들이 있는 까닭이다. 물론 위안부 강제 연행이 비단 대구와 경상도에 한정하여 일어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위안부 할머니를 기억하는 역사 관은 지역에 인권과 평화라는 인문학적 가치를 파급한다는 점에서 위안부 문제를 인권 문제로 현재화하는 효과가 있다. 이 또한 인문학적 가치의 진화이다.
대구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를 둘러싼 다양한 논의는 필요하다. 그런데 이 논의 과정에서 청년 세대의 참여가 긴요하다. 그런데 청년 세대 의 참여는 언어적 이론으로 피력될 이유는 없다. 청년 세대의 참여는 놀 이와 퍼포먼스, 축제의 방식으로 얼마든지 가능하다. 매년 5월이면 대구 중구 일대에서 거리 페스티벌이 열린다. 이름하여 ‘파워풀대구페스티벌’. 적어도 페스티벌이 열리는 날은 거리의 주인공이 시민이다. 차로를 막고 개최된 여러 행사 중에 유독 돋보였던 것은 K-POP 커버 댄스 경 연이었다.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청년들이 저렇게 신나게 춤을 추는 한, 이 나라에 희망이 있구나 싶었다. 저 청년들의 춤이 저 세대들의 언어이구나 싶었다. 그들은 그들의 언어로 원도심 거리에서 자기를 표현했다.
인문학적 가치라는 게 뭘까? 인문학에서의 ‘문’을 나는 꼭 글로 해석하지 않는다. 나는 ‘문’을 ‘무늬’로 더 해석한다. 인문학의 ‘인문’은 ‘사람 의 무늬’라는 말이다. 그 무늬는 우리들의 노래일 수도 율동일 수도 호흡 일 수도 있다. 지역 원도심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기록하는 청년 들을 인문학의 새로운 주체로 보고 싶은 마음이 각별하다.
또 다른 예를 들고 싶다. 해마다 10월이면 대구 향촌동 골목에서 독 립출판작가들의 북페어가 열린다. 2022년 10월 22일부터 23일, 이렇 게 이틀 ‘아마도 생산적 활동’이라는 슬로건으로 북페어가 열렸는데, 8회를 맞이해 대구의 대표적인 독립출판서점 더폴락과 인근의 어울리커피클럽에서 진행됐다.
이 북페어가 열리는 장소는 향촌동 골목이다. 향촌동은 ‘향기로운 마을’이라는 뜻을 가졌다. 향촌동의 유래는 식민지 대구로까지 소급된다. 대구에서 향촌동 골목은 한국전쟁 전시 문화의 본산으로 기억된다. 그럴 이유가 있다. 한국전쟁 때 대구는 경향 각지 피난민들의 집결지였다. 서울에 이어 대전을 잃은 한국군은 대구에 사령부를 차린다. 대구가 반격의 거점이었다. 서울의 내로라하는 시인, 소설가, 음악가, 화가들이 대구로 피난 왔다. 그들은 향촌동 골목에서 우정과 돌봄의 후일담을 남겼으니 그 주역이 구상 시인이다.
독립출판작가들의 북페어는 향촌동 골목에 또 다른 기억을 입히는 작업이다. 과거의 전시 기억만이 아니라 독립출판작가들의 현재의 기억 이 입혀진 향촌동 골목. 골목은 이처럼 여러 기억을 보유할 때 빛나는 인문학의 자산으로 탄생한다. 그래서 이 북페어가 좋았다. 대구 독립출 판작가들의 북페어는 향촌동 골목을 청년들의 골목으로 바꿔내는 놀이 였고 축제였고 사건이었다. 향촌동 골목이 전시 문화의 본산으로 기억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향촌동 골목이 전시 문화의 본산으 로‘만’ 기억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향촌동 골목이든 원도심의 어떤 골 목이든 기억의 중첩을 거듭하며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를 갱신해야 한다.
독립출판작가? 서울과 부산에 비하자면 그 수가 많지 않다. 그리고 독립출판서점도 서울과 부산에 비하면 그 수가 많은 게 아니다. 그러나 대구에서도 어느새 ‘아마도 생산적 활동’이라는 이름으로 북페어가 열리고 있다. 북페어 참여 작가들과 대화를 나누는 게 즐거웠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책을 몇 권 샀다. 그러는 사이에 졸업한 제자를 북페어 현장에서 반갑게 만났다. 나는 그날 책을 산 게 아니다. 나는 그날 청년들이 새롭게 일궈낸 대구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를 산 것이다.
정말 말하고 싶은 것은 이렇다. 대구의 인문학적 가치, 좀 젊게 가자는 말이다. 그래야 대구 원도심이 인문학적 자산으로 진화할 수 있다는 말이다. 대구 원도심이 특정 시기의 기억만을 보유하지 않게 하자는 말이다. 대구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가 과거 회귀나 회고에 머물지는 않아야 한다.
다시 말하고 싶은 건
대구 원도심 진화의 풍경은 다양하다. 교동은 청년들의 레트로 거리로 진화하고 있다. 식민지 대구의 표상인 북성로 입구에는 고층 주상복합 건물이 우람하게 세워지고 있다. 어르신들은 콜라텍 출입을 계속하실 것이다. 청년 사장이 개업한 카페는 더 늘어날 추세다. 또 다른 한편으 로는 북성로 도시재생 사업은 이렇다 할 성과 없이 마무리될 상황이다. 어떤 풍경은 반가움으로, 어떤 풍경은 우려로, 또 어떤 풍경은 아쉬움으 로 나에게 남는다. 그런데 반가운 풍경, 우려의 풍경, 아쉬움의 풍경 모두 원도심 진화의 풍경이다.
대구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도 그럴 것이다. 대구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도 다양하게 진화할 수 있다. 원도심을 지배하는 권위적이고 절 대적인 인문학적 가치는 애초부터 없다. 또한 최고의 가치도 없다. 진화 하는 원도심의 풍경처럼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도 진화할 수 있다. 예 를 들면 이렇다. 틈틈이 들르는 극장이 있다. 대구 오오극장이다. 정확 한 명칭은 ‘대구경북영화영상사회적협동조합’ 오오극장이다. 오오극장 은 대구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를 견인하는 독립영화 전용관이다. 시 설은 롯데시네마나 CGV와 같은 멀티플렉스를 따라갈 수 없다. 그렇더 라도 나는 틈틈이 오오극장에 들른다. 8월의 대구는 ‘덥다’라는 말이 무색하다. 습기까지 더해져 8월의 대구는 사람을 완전히 지치게 한다.
8월 대구에서 오오극장 중심으로 ‘대구단편영화제’가 열린다. 올해로 24회째다. 국내 독립영화계를 대표하는 유일한 전국 규모의 경쟁영 화제가 바로 ‘대구단편영화제’다. 그런데 이 영화제를 아는 대구 시민들이 많지 않다. 전주와 부산만 영화제가 있는 게 아니다. 대구 원도심에서도 개성적인 영화제가 열린다. 이 영화제에서 재현되는 대구는 어른 들이 경험한 대구와는 또 다른 대구다. 이 대구에는 지역 청년들의 삶이 다양하게 재현된다. 그들은 영상으로 그들의 대구를 이야기하고 있었 다. ‘대구단편영화제’ 때문에 8월의 대구가 뜨거웠다고 나는 말하고 싶다.
다시 말하고 싶은 것은 이렇다. 대구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가 고여 있지 않게 하자는 것이다. 이상화, 현진건만 말할 게 아니다. 국채보상운 동의 의의만을 말할 게 아니다. 지금 여기, 특히 청년들이 만들어 내는 인문학적 가치도 이야기하자는 말이다. 대구 원도심의 장소를 밀어내고 신축 아파트는 완공되고 있다. 원도심의 오래된 거리와 골목, 집들은 사라지거나 철거되고 있다.
이러는 사이에 교동은 청년들의 레트로 거리로 탈바꿈했다. 대구 오오극장은 ‘대구단편영화제’를 거행했다. ‘아마도 생산적 활동’이라는 이 름의 북페어는 올해에도 개최되리라. 롤러커피처럼 대구를 전국적인 커피 명소로 이끌 청년 커피 장인들은 계속 등장할 것이다. 골목 책방들은 폐업과 개업을 반복하리라. 그리고 청년들은 계성중학교에서 춤을 춘 뉴진스처럼 어딘가에서 춤을 추고 있을 것이다. 이들의 활약이 대구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를 견인하는 몸짓이 아 닐까? 대구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가 원도심 골목과 거리에서 영화를 찍고 글을 쓰고 춤을 추는 청년들에 의해 진화하기를 응원한다. 그럴 수 있고 그렇게 가야 한다. 느리더라도 꾸준히 그렇게 가야 한다. 그래야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가 죽지 않고 지역도 소멸의 오명을 피할 것이다.
양진오는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공부했다. 현재는 대구대학교 문화예술학부에서 학생들에게 지역 문화, 스토리텔링 창작을 강의하고 있다. 대구 수제화 골목에 스토리텔링 공방 북성로대학을 만들어 마을 인문학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