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두 시간 수다를 나누면 종종 듣는 질문이 있다. “서울 사람 아니죠?” 그렇다, 서울 사람이 아니다. 고향은 대구광역시로 경상도 사람이다. 일곱 살 때 가족과 함께 상경했고,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서울에서 다녔다. 대구에서 산 세월보다 서울에서 보낸 시간이 더 길지만, 서울말을 쓰기 어렵다. 특히 부모님 두 분 다 경상도가 고향이고 그곳에서 나고 자랐기에 경상도 특유의 억양이 남아 있어 그 영향을 피할 수 없었다. 나름 서울말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서울 토박이들과 대화를 하면 단번에 고향이 서울이 아니라는 걸 들키게 된다.
대구 사람인 걸 들키고 나면, “대구는 뭐가 유명해요”라는 질문을 받는다. 나름 답해 보지만 더 자세한 부분을 물어보면 더 이상 말을 이어나가기 어렵다.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을 채우지 못하고 서울로 올라왔기에 대구는 오래 전 묻어둔 추억 상자 같은 지역이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대구는 아파트 단지로 둘러싸인 대도시라기보단 다양한 모양의 주택과 구불구불한 골목으로 만들어진 정겨운 도시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곳은 지금은 이(E)월드, 83타워로 명칭이 바뀐 우방랜드, 우방타워다. 우방타워는 나에겐 세상에서 가장 긴 타워였고, 우방랜드는 매일 가고 싶은 모험의 놀이공원이었다. 이번 호 특집 준비는 익숙하면서도 새로웠다. 알고 있던 곳의 숨겨진 면을 발견하기도 하고, 아예 몰랐던 곳을 새로 알게 되기도 했다.
특집을 준비하면서, 가보지 않은, 처음 알게 된 공간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마침 대구에 갈 일이 생겨 이 생각을 실행해 볼 수 있었다(사실 이 지면에 쓸 만한 소재를 찾기 위함도 있다). 어디로 갈지 고민하던 중 “대구에 와서 할 만한 유일한 소일거리는 구도심의 골목길을 걸어보는 것”이라는 최이규 교수의 글(26쪽)을 보고 골목길로 행선지를 정했다. 갈 만한 골목길을 조사하던 중 발견한 근대골목. 대구 중구청에서 진행하는 근대골목 투어의 코스를 참고해 동선을 계획했다. 나의 코스는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계산성당-3.1만세운동길. 자동차가 아닌 두 발로 직접 걸으며 느꼈던 근대골목의 풍경을 짧게 적어본다.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67쪽)에는 고 김광석의 기타 치는 모습의 동상으로 시작을 알린다.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에서는 김광석 노래가 흘러나오고 김광석 일생을 담은 벽화를 따라 걷는다. 그곳에서 다시 들은 노래는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들었다. 벤치에 한동안 앉아 노래를 들으며 예전에는 공감하지 못했던 가사에 귀를 기울였다. 골목에는 뽑기 게임기가 줄지어 있었다. 지갑에 있던 꾸겨진 지폐를 동전으로 바꾸고 오백원을 게임기에 넣어 뭐가 나올지 기대하며 손잡이를 돌렸다. 나온 건 맥주 모양의 사탕, 사탕을 입에 물고 계산성당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계산성당은 청라언덕에 있어 짧은 등산(?)이 필요하다. 원래 목조 십자형 건물이었는데 화재로 인해 불에 타 고딕 양식을 활용해 재건축했으며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다. 유럽에서 볼 법한 고딕 양식의 성당이라 그런지 그 위용은 거대했다. 사진을 잘 찍으면 외국에 온 듯 한 연출이 가능하다. 신성한 분위기를 느끼며 내려오는 길에 만난 3.1만세운동길. 이 길은 드라마 ‘김비서가 왜 그럴까’(2018) 남녀 주인공이 데이트하던 장소로도 유명하다. 90개의 계단 옆으로 태극기가 휘날리고 벽에는 3.1만세운동 당시 사진이 걸려있다. 바람에 펄럭이는 태극기와 사진을 보며 치열했던 그날의 함성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짧은 일정으로 많은 곳을 둘러보진 못했지만, 잠깐이나마 본 근대골목은 대구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기엔 충분했다. 이 글을 쓰면서 ‘○○에 가면’이란 노래가 떠올랐다. 누군가 ○○에 한 지역을 말하면 거기에 있는 볼거리, 먹거리 등으로 이어 달리기하듯 순서대로 노래를 부른다. 대구에 가면이라고 선창하면 얼마나 이어 부를 수 있지 생각해봤을 때, 많은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너무 어렸을 때의 기억이라서, 대구에 살던 기간이 길지 않아서라는 핑계를 삼으며 대구를 멀리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더 다양한 곳을 조사하고 지면에 실으려고 노력했다. 이번 특집의 목표 중 하나는 대구를 한 번쯤 가보고 싶어지게 만들고 여행의 큰 틀을 잡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 지면도 그 길잡이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