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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웃거리는 편집자] 우리 곁의 조경
  • 환경과조경 2021년 11월

가장 어려운 일은 하나를 고르는 것이다. 대상이 많을수록 고민의 시간이 길어진다. 고민의 시간이 길다고 결과가 좋은 것도 아니다. 어떨 때는 타고나는 것이란 생각도 든다. 이런 이유로 이 사진을 빼고, 저런 이유로 저 사진을 제외하고 남는 사진이 단 한 장이면 좋으련만 그런 경우는 없다. 늘 몇 장의 사진이 남는다. 어떻게든 선택해야 한다. 우선 머리를 맑게 비운다. 가까이서 보고 멀리서 보았다가 잠시 그 사진들을 잊는다. 그러다가 꼭 이 사진이어야 하는 이유를 궁리한다. 왜 저 사진이 부적합한지를 스스로에게 되뇐다. 납득시키고자 애쓴다. 그렇게 한 장의 사진이 남는다. 때론 인쇄소에 송고하기 직전까지 고민하고 망설인다. 물론 늘 그런 것은 아니다. 어떤 때는 채 10분이 걸리지 않을 때도 있다. 그리고 요즘 들어 결정의 시간이 확 줄었다. 하지만 여전히 잡지든 단행본이든 표지 사진을 고르는 것은 늘 어렵다. 포스터의 메인 이미지를 선택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디자인에는 정답이 없다. 그래서 세상 모든 에디터와 디자이너들은 정답 없는 취향과 맞서고 있다.

파주출판도시에서 열리고 있는 제4회 파주건축문화제 ‘우리 곁의 조경’(각주1) 전시장에 들어서서 여섯 개의 키워드에 눈길을 주다가 만난 “지구상의 모든 뭍은 그 끝에 이르면 결국 물을 만난다”란 문구 앞에서 이 문장을 골랐을 이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많고 많은 문장 중에서.

전시는 조경이 다루는 근본 요소인 땅, 물, 식물, 시간, 사람 그리고 도시라는 키워드를 화두로 여섯 개의 공간을 펼쳐 보인다. 하나의 키워드마다 하나의 문장이 달렸고, 예닐곱 개의 사례가 순백의 하드커버에 혹은 하나의 사례가 한 편의 영상, 한 장의 패널, 하나의 모형에 오롯이 담겼다. 그러다가 주신하(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교수)가 찍은 사진 한 컷이 이 구역의 키워드가 ‘땅’임을 혹은 ‘물’임을 웅변하기도 한다. 직업병 탓이겠지만 하늘거리는 재질의 패브릭에 인쇄된 문장 앞에서 서성거리다 셔터를 눌렀다. 그것도 각도를 달리해서 여러 번. 전시는 크게 두 공간으로 나뉜다. ‘땅’을 밟고 ‘시간’을 거스르다 보면 그 사이에 여러 장의 하늘거리는 ‘식물’들이 걸음을 느리게 한다.

한 장, 두 장, 세 장, 네 장, 그러다가 맞닥뜨리는 밝은 조명을 배경으로 그 문장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지구상의 모든 뭍은 그 끝에 이르면 결국 물을 만난다.” 그런데 유독 이 문장에만 출처가 없다. 어쩌면 그래서 한 번 더 곱씹어 보았는지도 모르겠다.

전시장은 그리 크지 않다. 그 문장을 (그 문장이 프린트된 패브릭을) 들어 올리곤 물을 주제로 한 인터뷰 영상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러면서 다시 생각했다. 누가 쓴 문장일까, 누가 저 문장을 골랐을까. 검색창에 문장을 입력했다. 또박또박 띄어쓰기도 신경 써서. 하지만 뭔가 검색되리란 기대는 없이. 결국 전시를 총괄한 큐레이터 김아연(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에게 물었다.

문장은 누가 골랐나요? 서울시립대학교 대학원 졸업생인 김희원과 재학생 손영호, 조경설계 서안에 재직 중인 김정인이 키워드별로 여러 개의 문장과 작품 후보를 골랐어요. 저 문장에만 출처가 없어요. 의도인가요? 사실은 실수입니다. 앗, 그렇군요. 출처를 물어봐도 될까요?

 

“조경은 정원과 공원, 길과 광장처럼 빛, 바람, 땅, 비, 식물과 같은 자연을 만나고, 휴식과 놀이와 만남의 공간을 만들며, 파괴된 생태계를 복원하고, 생명 윤리와 과학적 지식을 토대로 건강한 삶의 터전을 가꾸는 지구적 실천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우리 곁의 조경’을 통해 자연과 도시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고 우리 삶 속에 스며있는 자연과 풍경, 그리고 조경 공간을 만드는 창작의 과정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전시장 입구에 고딕체로 쓰여 있는 김아연의 글이다. 『텍스트로 만나는 조경』이란 단행본의 보도자료 카피를 정리할 때가 떠올랐다. 조경의 가치를, 의미를, 역할을 몇 문장으로 어떻게 축약해야 할까? 고심하던 시절이었다.

 

“여의도 샛강을 주차장으로 만든다고 하더라고요. 막 눈앞이 캄캄한 거에요. 그래서 샛강을 큰돈 안 들이고 물고기도 살고 풀도 사는 아름다운 공간으로 만들겠다고 했지요.” ‘물’을 주제로 한 영상이 쉼 없이 재생되던 모니터 옆에 새겨져 있는 정영선(조경설계 서안 대표)의 말이다. 글이나 문장이나 문구가 아닌 말. 그것도 진심이 느껴지는 말.

 

마음속으로 밑줄을 그으며 전시장을 나왔다. 참, 출처는 독립출판 방식으로 제작된 『박승진 텍스트_북』 374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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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이 전시 이외에도 강연, 영화 상영, 어린이를 위한 일일클래스, 영화마을 오픈하우스 등이 11월 14일까지 진행된다. 전시 장소는 파주출판도시 서축공업기념관 1층, 총괄 큐레이터는 김아연 + 이진형(조경설계 서안 소장). ‘노 플라스틱’을 지향하여 전시품들은 모두 종이와 나무와 천으로 제작되었다. 골판지 책꽂이며 지관으로 주상절리를 표현한 전시물 등 흙 색깔을 닮은 종이 전시품이 모두 근사하다. 여섯 개의 키워드를 구성하는 프로젝트는 ‘도시: 파주출판도시의 풍경, 시간: 서울숲, 땅: 제주 중문 대포해안 주상절리대 경관설계, 사람: 소년문제해결 디자인프로젝트 ‘마음풀’, 물: 여의도 샛강 프로젝트, 식물: 베케정원과 아모레퍼시픽 원료식물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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