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수집, 취재, 기획, 편집, 교정, 마감. 쉼표로 생략된 이야기가 많지만 에디터는 대강 이 정도의 사이클을 반복하며 일 년을 보낸다. 첫 과제인 정보 수집은 귀동냥, 제보, 대화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이루어지지만 그중에서도 검색은 얄팍한 정보를 재빠르게 수집하기에 제격이다. 이따금 키보드와 모니터를 통해 세계 곳곳을 탐방한다. 이번 호 지면을 가득 채운 놀이터도 그 대상 중 하나다.
마스크 없이 랜선에 올라타기만 하면 되는 여행은 보통 두 단계로 진행된다. 검색어는 ‘놀이터’. 이 여정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많아야 스무 개 남짓, 그나마도 ‘MZ세대를 위한 놀이터’, ‘새들의 놀이터’처럼 각종 캐치프레이즈 때문에 검색된 기사를 제외하면 영양가 있는 정보가 얼마 남지 않는다. 검색어를 ‘playground’로 바꾼다. 훨씬 다채로운 결과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색색의 옷을 입은 독특한 형태의 조합 놀이대가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공원이나 광장에 가까워 보이는 곳도 많다. 파빌리온이나 실험적 예술 작품도 거리낌 없이 놀이터라 부르고, 아이들과 어른들이 한 공간에 얽혀 저마다의 놀이를 즐기고 있다. 단어가 품는 범위뿐만 아니라 물리적 면적 자체도 월등히 크다.
놀이터는 제법 여러 번 다룬 소재다. 특집으로 소개한 적도 있고, 참고할 만한 놀이터 전문 서적이 없던 시절에는 독일의 『Kinderspielplatze mit hohem Spielwert(놀이 가치가 높은 어린이 놀이터)』를 번역해 실었다. 113호(1997년 9월)에는 전통 놀이 공간을 이르는 ‘전승놀이터’라는 개념이 등장하는데, 심우경 교수(당시 고려대학교 원예과학과)는 과거 “우리의 놀이는 주로 아름다운 산천에서 행해졌으며 고정된 시설이 아니고 빈터(마당)만 있으면 철에 따라서 남녀노소가 따로 함께 놀았”다고 말한다. 즉 산과 들을 비롯해 자유롭게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모든 장소를 놀이의 터로 삼았단 이야기다.
그렇다면 미끄럼틀과 그네가 놓인, 우리가 익숙하게 봐 온 놀이터는 언제 등장했을까. 김성문 대표(판타지 코리아)는 4호(1983년 10월호) 특별기획 지면에서 놀이터가 탄생한 이유를 “산업화의 영향에 의해 도시가 구조적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도시에 인구가 집중되며 “어린이들이 뛰어 놀 수 있는 공간이 고층 건물과 주차장, 도로 등의 시설로 점령”되었고, 어린이를 보호하고 그들의 활동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놀이터’라는 별도의 공간이 필요해졌다는 것이다. 함께 수록된 삽화가 인상적인데, 자동차 사이에 낀 그네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뒷모습이 쓸쓸해 보인다.
“도시의 모든 공간이 그렇듯 놀이터도 도시를 반영한다. 밀도가 높은 도시에서는 놀이터 시설 구성의 밀도도 높아지게 된다.”(기아미+김연금, 50쪽) 땅에서 한계를 맞닥트린 놀이터는 자연스럽게 하늘을 향해 솟는다. 트리하우스는 나무 주변을 감싸 오르고(영도초등학교 트리하우스, 부산 새들원), 둘레길을 닮은 데크는 지면에서 서서히 떠오르며 다이내믹한 등굣길과 놀이 공간을 선사한다.(배봉초등학교 놀이키움). 좁은 공간에서 놀이 흐름이 끊기지 않게 할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어린이꿈공원). 이러한 입체적 시설은 중력을 거스르며 놀고 싶은 어린이의 욕구를 해소시키고 주변을 색다른 높이에서 바라보는 생경한 경험을 주지만(하늘바다놀이터), 사실 공간을 조금이라도 더 다채롭게 활용하기 위한 방책이기도 하다. 밧줄과 암벽을 타고 공중에 매달린 그물 위를 쏘다니며 모험심을 키울 수 있게 되었지만, 내키는 만큼 달리고 실컷 공놀이를 할 수 있는, “멀쩡한 놀이터를 놔두고…스탠드 기둥에 찰싹 붙으며 도망 다니는, 매미 놀이”(문교초등학교 언덕 놀이터)를 할 수 있는 너른 터는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바벨탑에서 시작해 세계 곳곳에 우뚝 선 마천루까지, 수직을 향한 인류의 욕망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위로 오르는 행위를 신분 상승에 비유한 영화 ‘기생충’에서 기우는 어둑한 지하를 향해 말한다. “아버지는 그냥 계단만 올라오시면 돼요.”놀이터에는 계단 따위는 없을수록 좋다. 도전 정신을 키울 수 있는 사다리도 좋지만, 휠체어와 유모차도 오를 수 있는 나지막한 경사가 더 좋다. 모두가 수직 도시를 꿈꾸는 이 시대에 놀이터는 평평하고 널찍한 수평을 바라는 몇 안 되는 공간이다. 더불어 궁금해졌다. 더 높은 구조물을 짓고, 더 깊숙이 땅을 파는 방법을 고민하는 이 시대에 결국 땅에는 무엇이 남게 될까. 또 무엇을 남겨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