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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코로나 블루, 그린 블루!
  • 환경과조경 2020년 12월

나의 코로나 블루는 새해를 맞이해 기대를 가득 안고 떠난 이스라엘 성지 순례에서 시작됐다. 동네 성당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행사였고 나 또한 설레는 마음으로 참가했다. 그런데 79일 여행의 둘째 날, 서울발 뉴스가 전해준 성지 순례단의 코로나 감염 소식으로 갑작스럽게 모든 한국인이 이스라엘 당국의 입국 금지 조치를 당했다. 텔아비브 공항에 도착한 비행기는 승객을 내리지도 못한 채 다시 한국으로 떠났고, 현지의 많은 한국 순례자들은 여행 및 이동 금지와 격리 조치 예정이라는 급보를 받았다. 당장 숙소를 떠나 달라는 요청이 왔고, 성지는 한국인의 관광을 금지했다. 가장 두려움에 떨게 만든 건 어쩌면 우리가 이스라엘 군부대에 무기한 격리될지도 모른다는 입소문이었다. 당황한 일행은 즉시 순례를 멈추고 긴급 회의를 통해 격리 조치가 이루어지기 전, 아직 입국이 허가된 터키로 탈출하기로 하고 인원을 나누어 간신히 항공권을 예약하는 데 성공했다. 한국에 도착한 뒤엔 2주간 자가격리를 해야 했고, 평생 1주일 이상 쉬어본 적이 없던 나는 집에 갇혀 지내는 내내 답답함과 무기력함 속에서 우울한 나날을 보냈다. 아마 코로나 블루였던 것 같다.

 

코로나 블루는 코로나19와 우울감을 의미하는 블루blue를 결합한 신조어로,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일상에 큰 변화가 닥치며 생긴 우울감이나 무기력증을 뜻한다. 며칠 지나지 않아 갑자기 신열이 오르고 오한이 들기도 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드라이브스루 코로나 검사를 받았는데, 음성 진단을 확인하고 나서야 안심이 되었는지 그제야 열이 내렸다. 늘 바깥에서 바쁘게 지내던 내가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요즘 대세인 트로트 열풍에 채널만 돌리면 나오는 송가인의 노래를 듣거나 소위 간 큰 남자들이 한다는 삼식이되기가 고작이었다. 참다못해 마스크를 쓰고 동네 뒷산을 오르내렸다. 하루하루 짙어지는 올리브그린 색의 새싹들과 점점 부푸는 꽃망울들의 뭉그적거리는 몸놀림, 코끝으로 전해오는 이름 모를 식물들의 짜르르한 풀 내음 같은 미시적인 현상을 체감하며 그동안 알지 못했던 또 다른 자연의 경이로움에 새삼 감탄했다. 들뜬 마음으로 숲의 초록과 향기에 몸을 맡기고 자연의 치유력을 믿으며 점차 몸과 마음의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불안한 상황은 직장으로 돌아온 뒤에 더욱 확장됐다. ‘자연과의 동거가 사훈인 회사는 이제 신종 바이러스인 코로나와의 새로운 동거를 준비해야 했다.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직원들이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도록 하는 등 코로나 대응 지침을 만들어 시행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재택근무가 가능한지 점검하고 과밀한 지하철을 피해 출퇴근 시간을 유연하게 선택하게 했다. 단체 회식을 금지하고 점심시간에도 가급적 도시락을 싸 오도록 했다. 마스크를 구매해 직원들에게 배급하고 간헐적으로 면역력 향상을 위한 홍삼과 비타민을 지급했다. 대부분의 대면 행사가 취소되고 장기간 회식이 금지되자 직원들의 사기가 저하되었다. 분위기를 전환해보고자 옥상에서 함께 텃밭을 가꿔보자고 제안했다. 직원들과 상추, 오이 등 갖가지 엽채 모종을 심고 함께 자장면을 시켜먹으며 스프링 파밍 데이(spring farming day)를 즐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채소가 자랐을 땐 함께 수확의 기쁨을 나누며 루프 가든 파티를 열었다.

 

가을이 시작되고 공기가 서늘해져도 팬데믹이 지속되자 사회 곳곳에서 코로나 블루가 점점 짙어졌다. 노심초사하는 마음에 조금이나마 직원들의 마음 치유에 도움이 될까 싶어 가평 깊은 산자락에 위치한 회사 연수원을 무료로 개방해 가족들과 특별 휴가를 다녀오도록 했다. 국내외 여행이 어려운 시기, 단풍이 짙은 계곡 사이 한적한 숲 속의 연수원은 코로나 시대의 여행지로 제격이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정착되고 모든 단체와 모임이 비대면 방식으로 바뀌었다. 조경 분야도 예외일 수 없었다.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의 심사와 시상식 역시 온라인으로 진행되었고, 서울정원박람회, 대한민국조경박람회, LH가든쇼, 경기정원문화박람회도 오프라인 행사를 취소하거나 연기하고 불가피한 상황에서는 제한된 인원만 참석하는 방식으로 개최됐다. 주목할 만한 점은 정원 조성과 전시 같은 필드 행사는 취소되지 않았고, 한국조경협회의 학교 치유정원 조성사업과 같이 녹지를 통한 힐링 프로젝트의 수요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코로나 블루의 처방책으로 백신의 신속한 개발과 함께 조경가들이 만드는 공원과 숲길, 정원 같은 그린 인프라 사업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 사태가 한 해 가까이 지속되며 일상의 변화가 우리 사회 모든 영역에서 빠르게 일어났다. 자주 다니던 동네 마트, 음식점, 영화관, 학원에 가는 것을 꺼리게 되고, 소비와 관련된 물리적 공간이 온라인 플랫폼 기반의 다양한 서비스로 대체되면서 이른바 언택트 소비가 일상화됐다. 학교는 수업을 디지털 원격 학습 방식으로 대체했고, 등교하지 않는 학생들의 일과는 저소득층 가정과 맞벌이 부부에게 또 다른 걱정거리가 됐다. 재택근무가 급증하면서 전통적인 근태 중심 관리 방식이나 워크숍, 단체 회식에 기반을 둔 직장 문화도 크게 바뀌고 있다. 산업 현장에 디지털 워크플레이스(digital workplace) 개념이 도입되며 일자리가 더욱 줄어들지도 모른다는 부정적인 전망도 보인다. 전반적으로 4차 산업혁명이 가속화되고 인공 지능, 챗봇, 빅데이터, 태그 정보, 5G, 가상 및 증강 현실 기술의 발전으로 스마트화가 급속하게 진전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변화의 갈림길에서 여전히 꽃과 나무 같은 아날로그적 감성을 무기로 삼고 있는 조경 분야는 과연 위기를 맞이한 것인가, 또 다른 기회를 마주한 것인가. 건강과 위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밀폐된 실내 공간을 피해 사람들은 산책과 등산을 즐기려 가까운 공원과 산으로 몰려간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가능한 외부 공간의 필요성이 한층 높아지는 상황은 곧 오픈스페이스 소비의 확산을 의미한다. 코로나 블루를 극복하기 위해 사람들이 가장 먼저 찾은 곳이 공원과 정원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소비재로서의 공원과 자연의 수요가 폭증하고 있는 현상은 조경 분야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코로나 사태가 끝나면 사회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예상되는 거대한 변화를 기점으로 BC(Before Corona)AC(After Corona)로 시대를 구분 지을 정도다. 숲(green)과 물(blue)을 다스리고 오염된 도시에 건강한 자연을 심는 조경가야말로 이 시대의 코로나 블루를 치유하는 진정한 그린-블루 히어로가 아닐까? 우리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사회 전반적으로 지식 체계를 비롯한 과거 모든 질서를 새롭게 구축해야 하는 시기에 살고 있다. 작은 바이러스에서부터 동물과 식물을 아우르는 위대한 자연, 그리고 겸손한 자세로 자연을 경외하는 인간의 공생 인식이 필요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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