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마무리하며 살짝 의기소침해질 때면 영화 ‘세 얼간이(Three Idiots)’(2011)를 본다. 긴가민가한 인도식 영어와 전혀 못 알아듣는 힌디어 사이에서도 “알 이즈 웰(All is well)”만큼은 잘 들린다. 주인공 란초는 큰 문제에 부딪쳤을 때 가슴에 손을 얹고 “알 이즈 웰”을 되뇌면 이를 해결해 나갈 용기를 얻는다고 한다. 그를 보고 있자면 볼테르(Voltaire)의 소설 속 인물 캉디드(Candide)가 생각난다.
학부 시절 프랑스 문학 수업을 들으며 이해에 앞서 일단 시험을 위해 외우고 봤던 구절들이 있다. 가령 카뮈의 『이방인』에서 어떤 이유로 뫼르소가 살인을 했는지, 사르트르의 『구토』에서 로캉탱은 왜 구역질을 해대는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마르셀은 마들렌 한 조각에 뭐 그렇게 호들갑인지, 그리고 볼테르의 『캉디드』에서 “하지만 우리의 정원을 가꾸어야 합니다(Mais il faut cultiver notre jardin)”1라는 마지막 문장은 무슨 뜻인지 등이 그 예다.
정원에 대한 강연을 마무리할 때 인용하면 상당히 있어 보이는 구절이지만 캉디드가 이 말을 하기까지 많은 일이 있었다. 그는 베스트팔렌 지방에 있는 툰더 덴트롱크 남작의 성에서 남작 누이의 사생아로 태어났고, 그곳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곳이라고 믿었다. 타고난 성품이 유순하고 해맑았고(캉디드는 프랑스어로 순박하다는 뜻이다), 또 가정 교사 팡글로스가 그렇다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팡글로스는 자기도 잘 모르는 철학적 내용을 말하는 인물인데, 이는 라이프니츠의 낙관주의와 예정 조화설을 패러디한 것이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고, 이 세상은 (신이 만들었으니) 수많은 가능한 세계 중 가장 최선이라는 것이 팡글로스의 주장이다. 맞는 말 같지만 코는 안경을 걸치기 위해 만들어졌기에 사람들은 안경을 쓰고, 돼지는 잡아먹히기 위해 태어났기에 사람들은 일 년 내내 돼지고기를 먹는다는 그의 논지는 공허하다. ...(중략)
* 환경과조경 392호(2020년 12월호) 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캉디드』의 번역서는 여러 출판사에서 간행되었다. 대부분 성이나 저택에 속한 정원 외부에 있는 사냥터, 숲, 초지를 지칭하는 프랑스어 parc를 ‘공원’이라고 번역했으나, 이형식이 번역한 펭귄클래식 본에는 ‘파르크’라고 표기되어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조경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고, 배경이 베스트팔렌임을 고려하여 독일어 발음으로 적었다고 한다. jardin은 역자에 따라 정원, 혹은 밭으로 번역되었다.
2. www.etymonline.com/word/optimism
황주영은 서울대학교 협동과정 조경학전공에서 19세기 후반 도시 공원의 모더니티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파리 라빌레트 국립건축학교에서 박사후 연수를 마쳤다. 미술과 조경의 경계를 넘나들며 문화사적 관점에서 정원과 공원, 도시를 보는 일에 관심이 많으며, 이와 관련된 강의와 집필, 번역을 한다. 그러는 동안 수많은 책을 사거나 빌렸고, 그중 아주 일부를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