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쯤, 서울 남산 예장자락에서 한양도성을 발굴하던 때다. 1969년에 만든 옛 남산식물원 앞 분수대를 철거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한창 논의가 있었다. 1970년대 남산의 흔적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이유로 분수대의 존치가 결정됐지만, 설득 과정에서 조경 분야는 ‘국내 최대 규모의 분수대’라는 사실 외에 별다른 논거를 내세우지 못했다고 한다. 분수대가 한국 조경에서 그토록 기념비적인 것이라면 누가, 어떤 의도로, 무엇에 근거하여 만들었는지, 한국 공원사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 시설인지, 재료와 색감, 형태 등에서 어떤 시대적 특징을 보여주는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이런 질문에 증거가 되는 ‘기록’이 있었다면 존치의 당위성을 더 확실하게 인정받았을 테다. 기록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지금의 상황이 여러모로 민망하고 아쉬울 따름이다. 현재, 한국 조경의 기록을 ‘날것’으로 볼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기록 부재에 대한 불편함은 오직 연구자의 몫일 뿐, 여전히 공원을 포함한 조경 기록물의 아카이빙은 낯선 일이다.
아카이브의 확산
기록물 또는 기록물의 보관소로 정의되는 아카이브(archive)는 어떤 대상이나 사건의 진위를 보여주는 가장 일차적인 자료가 된다. 기록은 기록하는 자의 산물이다. 자의든 타의든 순수하게 객관적으로 기술하기 어렵고 기록물을 완벽하게 수집하는 것 또한 불가하므로 기록의 불완전함과 왜곡을 피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기록이 의미 있는 이유는 항상 존재한다. 기록의 집적물인 아카이브는 우리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하고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진정성에 기반을 둔 두터운 스토리텔링을 구축할 수 있는 토대이며 과거와 미래와 소통할 수 있는 매개체로서도 힘을 갖는다.
최근 국내외 전반에 아카이브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사실을 눈여겨보자. 다양한 분야에서 아카이브를 활용한 작품을 생산하고 있으며,1도시와 건축 분야는 개발로 사라져가는 많은 도시 경관과 건축물을 기록하는 일을 더는 수고스러운 일이라 생각하지 않는다.2여기에는 근대가 조명받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근대는 가까운 과거로, 정서적인 교감이 남다른 특징이 있고 다양한 유형의 아카이브를 구축하기 용이하기 때문이다.
아카이브가 사회 전반에 유행하고 근대의 면면이 주목받는 지금, 공원 아카이브를 논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공원 아카이브를 논해야 하는가. ...(중략)
* 환경과조경 383호(2020년 3월호) 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2019년 12월, 서울도시건축전시관이 주관한 ‘지워지는 공간, 덧쓰여지는 기록’은 아카이브의 잠재력을 가늠할 수 있는 좋은 사례다. 두 개의 주제 발표 가운데 하나인 ‘변화하는 도시, 이미지 아카이빙’에서는 재개발 주거지의 장면을 아카이빙해 사라진 장소를 환기하고자 한 안세권 사진작가, 공원의 미시적 흔적을 아카이빙해 설치 작품을 생산한 문경원 교수(이화여자대학교), 방송 아카이브를 이용해 88서울올림픽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이태웅 PD(KBS)의 활동상이 소개됐다.
2. 도시와 건축 분야는 20여 년 전부터 아카이빙 활동을 시작했다. 근대 건축 도면의 발굴, 원로 작가 구술 채록 출판 사업, 한국 건축 아카이브 구축 사업 등을 통해 꾸준히 성과물을 내놓고 있다. 경관 기록 보존 프로젝트, 로컬 공간 기록 프로젝트 등 민관 협치 사업 또한 활발히 진행 중이다. 한옥 등 건축 자산의 진흥에 관한 법률의 지정, 도시재생 사업의 붐업, 서울도시건축전시관의 건설 등 일제히 쏟아지는 이 같은 상황이 단지 시류에 따른 결과물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전문가 중심의 아카이브 연구와 저술 활동이 정부와 민간이 협력하는 구조로 확장되고 국토 개발에 영향을 주는 제도의 구축, 건축 도시 아카이브 전문 기관의 생성까지 견인한 것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공원 아카이브 사업을 시작하려는 시점에서, 아카이브 구축을 위해 노력하는 도시 및 건축 분야의 행보는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