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고향’은 어디인가요?
마을과 동네에 관심 있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도시재생대학에서 강의를 할 때면 가장 먼저 이 질문을 던진다. “여러분이 고향이라고 생각하는 곳이 어딘가요?”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선뜻 답을 하지 못한다. 사전적으로 고향은 태어나서 자란 곳 혹은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곳이라고 통용된다. 그런데 사람들이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본인이 태어난 지명을 이야기하면 간단한 것 아닌가. 나는 다시 질문한다. 내가 태어난 곳이 고향인가요? 아니면 학창 시절을 보내거나 결혼한 곳? 내 아이를 낳은 곳? 아니면 지금 사는 곳? 그것도 아니면 지금 나의 직장이 있는 곳인가요? 질문 공세를 마구 이어가면 사람들은 더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입가에 아리송한 미소를 머금는다. 무언가 말하고 싶어 입을 꿈틀거리는 사람도 있지만, 선뜻 한 번에 입을 떼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서대문이요. 제가 1970년대에 서울에 올라온 뒤부터 지금까지 자리잡고 자식 키우고 산 곳이에요.” “계동이 제 고향 같죠. 스무 살에 시골에서 시집와서 얼마 전까지 시어머니 모시고 자식 뒷바라지하며 남편과 참 악착같이 살아 낸 곳이에요.” “용산이요. 집은 경제적 상황 때문에 참 많이 옮겼는데, 제 가게는 30년 동안 죽 용산에 있어요. 예전엔 일 년 중 명절 당일 하루씩 딱 이틀만 놀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나갔으니까요.” “반포동 아파트요. 1980년대 후반에 거기서 태어나 지금까지 한 번도 다른 곳에 살아 본 적이 없어요.”
어떤 동네, 어떤 세대, 어떤 경제적·사회적 배경을 가진 사람인가에 따라 모두 다른 대답을 하기 시작한다. 장소도 이유도 제각각이다. 20세기 독일의 철학자 오토프리드리히 볼노(Otto Friedrich Bollnow)는 “인간과 공간의 관계는 태생적으로 상호 의존적이며 인간의 삶은 근원적으로 인간과 공간의 관계 속에 존재하며 떨어질 수 없는 관계”라고 정의했다.1인간은 태어나서 숨 쉬는 순간부터 삶을 마감할 때까지 모든 생애 전반을 공간들 속에서 관계 맺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비슷한 시기 프랑스의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는 “집은 우리의 첫 번째 우주다. 집은 인간이 존재하는 최초의 세계다”라고 말했다.2집은 사람들에게 고향으로서의 의미가 있고, 낯선 외부로부터의 안도감과 평화를 주는 곳이라는 의미다.
사람들은 본인이 태어난 곳을 고향이라 생각하기도 하지만, 태어난 곳이 아니더라도 정서적 애착 관계에 있는 특정한 장소를 고향으로 부르기도 한다. 볼노는 인간은 태곳적 내밀한 행복이 있는 곳이자 모든 생명의 근원인 ‘고향’을 찾아 회귀하고자 하는 본능이 있다고도 했다. 자신이 태어난 곳의 외형이 어떻게 변하건 상관없이 감정적 교류를 한 공간(집 혹은 마을)은 개인 혹은 한 가족의 소중한 추억이 있는 고향이 될수 있는 것이다.
파란 대문 집의 기억
“하얗게 부서지는 햇살 아래 각양각색의 대문들이 길고 긴 골목 양쪽으로 쭉 늘어서 있다. 나의 눈높이는 대문 높이의 중간 즈음으로 맞춰져 있고, 쭉 뻗은 골목 끝자락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간다. 골목의 끝 왼쪽의 파란 대문 집 앞에 다다르자 익숙한 듯 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어선다. 밝은 햇살에 눈이 부시다. 파란 문 안쪽 정면엔 넓디넓은 초록색 잔디 마당이 펼쳐져 있고, 오른쪽엔 위풍당당한 이층 저택이 있다. 쭉 뻗은 잔디 마당 한편엔 백 년은 된 듯 보이는 아름드리나무 한 그루가 햇살 아래 당당한 위용을 뽐내고 있다. 잔디 마당에서 놀던 사람들이 밝은 표정으로 내게 달려온다. 마당과 저택 사이에서 내가 올라타고도 남을 것 같은 큰 개가 나를 향해 마구 짖는다. ‘플란다스의 개’만큼이나 크다. 저택 거실에 엎드려 바라보는 마당의 풍경은 푸르고 또 생기롭다.”
성장하면서 이따금 머릿속에 떠오르던 어떤 장면에 대한 묘사다. 꿈인지 실제인지 알 수는 없지만, 확실한 건 골목과 마당과 집의 순차적·장소적 연결성과 그 형태가 선명하다는 것, 마당의 따스한 햇볕과 온기, 파란 대문과 잔디 마당의 색감이 강렬했다는 것이다. 이 기억이 무엇에 근거했는지 알 길이 없었지만 이 장면이 떠오를 때면 마냥 가슴이 따뜻해져 슬며시 미소를 짓곤 했다.
성장한 후 가족들과 함께 어릴 적 살던 집에 관해 이야기 나눈 적이 있다. 내가 태어나 돌이 되기 전까지 10개월 정도밖에 살지 않았다는 서울시 광진구 구의동의 ‘파란 대문 집’은 내가 ‘태어난 고향’이다. 지금은 다세대 빌라가 지어져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그곳을 언니들은 생생하게 기억했다. 언니들은 신나서 각자 마당과 골목에서 뛰어놀던 기억을 꺼내기 시작했다. 나도 이따금씩 떠올렸던 그 장면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골목의 모습, 파란 대문을 열면 나타나는 잔디 마당과 나무, 오른쪽의 대저택…. 이 같은 기억이 구의동 집에 대한 묘사라는 걸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부모님과 언니들은 강남의 아파트로 이사 가서 돌잔치를 한 내가 그 집을 기억해 낼 리 없다며 무시했다. 내 기억이 맞는 것인지 확실한 증거가 없었다. 언니들 어렸을 때 사진을 보고 내 기억으로 착각한 것이 아닐까. 나조차도 내 기억일 리 없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더 물었다. “그런데 그때 거기 ‘플란다스의 개’만큼 엄청나게 큰 개가 있지 않았어요? 그 개가 정말 무서웠던 감정이 떠오르는데….” 어머니가 깜짝 놀라며 말씀하셨다. “엄청 큰 개? 설마 쫑이 말하는 거니? 걔는 (팔뚝의 반을 가리키며) 요만한 새끼 똥개였단다.” 우리는 모두 너무 놀라 몇 초 동안 서로 바라보기만 하다 박장대소할 수밖에 없었다. ...(중략)...
**각주 정리
1. 오토 프리드리히 볼노, 이기숙 역, 『인간과 공간』, 에코리브르, 2011, pp.23, 172~173.
2. 가스통 바슐라르, 곽광수 역, 『공간의 시학』, 동문선, 2003, p.77.
* 환경과조경 382호(2020년 2월호) 수록본 일부
서준원은 열다섯 살부터 대학 졸업 후까지 뉴욕에서 약 10년간 생활했다. 파슨스 디자인 스쿨(Parsons School of Design) 인테리어디자인학과에서 다양한 생활 공간에 대해 공부했고, 한국인의 주거 환경에 대한 관심으로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쳤다. SOM 뉴욕 지사, HLW 한국 지사, GS건설, 한옥문화원,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 등에서 실내외 공간을 아우르는 디자이너이자 공간 연구자로 활동했다. 한국인의 참다운 주거 환경을 위한 디자인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품고, 다양성이 공존하는 도시공간 연구를 위해 곳곳을 누비며 ‘공간 속 시간의 켜’를 발굴하는 작업을 긴 호흡으로 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