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 사는 일과 도시를 만드는 일은 별개의 일이었다. 도시의 크고 작은 공간은 계획가, 행정가, 자본가가 만든 도면에 충실하게 구현됐고, 사람들은 주어진 환경에 맞춰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을 재단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살고 싶은 도시를 직접 만들려는 움직임이 곳곳에 나타났다. 자본이 주목하지 않는 소외된 지역에 터를 잡고, 지역 주민과 연대해 독특한 문화를 만들며, 공구를 손에 들고 직접 공간을 개선하는 사람들이 도시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기 시작했다.
지난 2월 15일 연남장에서 도시재생의 새로운 흐름과 공간 DIY 문화를 공유하는 ‘셀프 어반 크래프트십(Self Urban Craftship)’ 세미나가 열렸다. 정음철물, 한국리노베링, 오롯컴퍼니, 일본의 툴박스(Toolbox)의 대표가 모여 각 사무소의 활동 내용을 소개했다. 행사를 기획한 심영규 대표(정음철물)는 “앞으로 우리 스스로 동네를 어떻게 바꾸어 나갈지 살펴보고, 혼자 하기 힘든 사람에게 함께하자고 손을 내미는 시간”을 마련했다고 행사의 취지를 설명했다.
공간 편집권, 전문가에서 사용자에게로
“툴박스의 미션은 일본의 주거 공간을 더 즐겁고 풍요롭게 만드는 데 있다. 공간은 공간을 만드는 전문가가 아닌 사용자의 것이기 때문이다. 공간 만들기에 있어 사용자가 주역이 되는 환경을 만들고자 한다.” ‘자기 공간을 편집하기 위한 도구 상자’라는 뜻의 툴박스는 거주자가 손쉽게 자신의 공간을 구성하도록 돕는다. 히토스기 이오리(툴박스 집행임원)는 툴박스 소개에 앞서 도쿄R부동산(툴박스를 운영하는 기업, 이하 R부동산)을 소개하며 사용자 중심의 공간 문화를 만들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일반적인 부동산에서 제공하는 면적, 임대료, 역까지의 거리 같은 기본적인 정보로는 실제 그 집에서의 생활이 어떨지 가늠하기 어렵다. 이러한 점에 착안해 R부동산은 사용자의 취향과 연계된 실질적 정보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전망이 좋은 곳, 주변에 녹지가 많은 곳, 천장이 높은 곳 등 사용자가 체감할 수 있는 특징으로 공간을 소개해 주거 공간 공급 체계에 변화를 가져왔다.
R부동산이 살고 싶은 공간에 대한 선택의 폭을 넓혔다면, 툴박스는 나만의 공간을 손쉽게 만들 수 있는 실천적 플랫폼을 제공한다. 바닥재, 벽재, 스위치 등의 재료 판매부터 셀프 시공 아이디어와 노하우를 전달하고, 소비자의 다양한 취향을 존중하는 제품 개발에도 힘쓴다. ...(중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