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만들어라
지난 달에는 한국 도시화 50년의 세 번째 공간 사례로 지방의 도시화를 행정중심복합도시와 혁신도시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네 번째 사례로 2010년대 자연의 도시화를 살펴본다. 이를 위해 자연과 자연의 도시화에 대한 개념적 이해로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자연自然, nature은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아니하고 세상에 스스로 존재하거나 우주에 저절로 이루어지는 모든 존재나 상태를 뜻한다.1다시 말해 자연은 사람의 힘, 즉 인공으로 조성된 건조 환경과 대비되는 공간, 환경 또는 영역이라 정의할 수 있다. 이 같은 관점에서 자연의 도시화는 사람이 인위적으로 개입하지 않았거나 설령 개입을 했더라도 그 정도가 크지 않았던 공간, 환경 또는 영역에서 일어나는 도시화라 할 수 있다.
2010년대 자연의 도시화는 역설적으로 당시 자연 이외의 지역이 도시화가 더 진전되기 어려울 만큼 충분히 성숙되어 있었다는 점을 시사한다. 1970년대 농촌의 도시화, 1980~1990년대 근교의 도시화, 2000년대 지방의 도시화로 인해, 2010년을 전후로 도시화가 진행될 수 있는 인공적 영역이 남아있지 않았다. 더욱이 당시에는 세계적으로 자원 고갈, 기후 변화, 지속 가능 개발, 녹색 성장 등 인간과 자연의 미래 지향적 관계 설정에 대한 논의가 뜨거웠다. 같은 맥락에서 흥미롭게도 과거 현대건설의 사장이었으며 서울시장으로서 청계천 복원 사업을 진두지휘한 장본인이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이명박 정부(2008~2013)는 대통령 선거에서 한반도 대운하 건설, 747공약(연평균 7% 성장, 1인당 소득 4만 불, 세계 7대 강국 진입) 등 대규모 토목 사업 및 고도 경제 개발을 핵심 공약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대통령 당선 이후, 2008년 세계 경제 위기 속에서 한반도 대운하 건설은 경제적·생태적 관점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리하여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건국 60주년 광복절 경축사 연설에서 저탄소 녹색 성장을 국정의 비전이자 핵심 기조로 천명했다. 한반도 대운하 건설은 4대강 살리기 사업으로 변모해 임기 중에 추진됐다.
“본 의원은 한강과 낙동강을 연결하는 운하를 건설할 것을 제의하는 것입니다. 낙동강과 한강, 540km 강을 준설하고 두 강의 가운데를 조령의 해발 140m 고지에 20.5km의 터널을 하여 연결하게 되면 경부운하가 건설이 될 것입니다. 이제 수문과 적당한 댐을 설치하게 되면 수위를 조절하여 5,000톤의 바지선이 부산을 거쳐 인천까지 갈 수가 있습니다. 경제적으로나 기술적으로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2
“저는 신년연설을 통해 ‘전국 곳곳을 자전거 길로 연결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이 마무리되는 2012년이면 한강·금강·영산강·낙동강 물줄기를 따라 약 2,000km에 이르는 자전거길이 만들어집니다. 그때가 되면 목포에 사는 젊은이가 영산강을 출발해 금강을 거쳐 서울에 오고, 서울에서 출발한 청소년들이 강바람을 가르며 한강과 낙동강을 거쳐서 부산까지 갈 수가 있습니다. 자전거를 통해 동·서와 중·남부가 통해서 사람들도 동서남북으로 다 통하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3
13년의 세월을 사이에 둔 이명박 대통령의 두 발언을 보면서, 한반도에 물길 대신 자전거길이 만들어졌다고 하면 지나친 표현일까? 우리에게 길이란 과연 무엇이며, 2010년대에 왜 그토록 길을 만들고자 했는가. ...(중략)...
* 환경과조경 377호(2019년 9월호) 수록본 일부
1. “자연”, 표준국어대사전, 2019년 8월 10일 접속(https://ko.dict.naver.com/#/entry/koko/c413f4f2bd48406eb455
361de527dca0).
2. 1996년 7월 18일에 열린 국회 제8회차 본 회의 이명박 의원의 발언 일부. 『이명박정부 국정백서: 2008.2~2013.2. 7, 녹색뉴딜 4대강 살리기와 지역상생:국토』, 문화체육관광부, 2013, p.65.
3. 이명박, “제13차 라디오 연설, 4대강 따라 열리는 자전거길”, 2009, 대통령기록연구실, 2019년 8월 10일 접속(http://pa.go.kr/research/contents/speech/index.jsp).
김충호는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공학과 도시설계 전공 교수다.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미국 워싱턴 대학교 도시설계·계획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삼우설계와 해안건축에서 실무 건축가로 일했으며, 미국의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와 워싱턴 대학교, 중국의 쓰촨 대학교, 한국의 건축도시공간연구소에서 건축과 도시 분야의 교육과 연구를 했다. 인간, 사회, 자연에 대한 건축, 도시, 디자인의 새로운 해석과 현실적 대안을 꿈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