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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서재] 보스토크
  • 환경과조경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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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붙잡음이라는 뜻의 포착은 사진과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가 아닐까. 사진은 시간을, 정확히 말하면 특정 순간을 포착한다. 피사체의 움직임, 빛과 그림자를 재빠르게 붙잡아 프레임 속에 가둔다. 이번 달 이미지 스케이프에서 주신하 교수가 말한 것같이 사진은 언제고 찍을 수 있지만 그 순간은 다시 만나기 어렵다.” 그래서 사진은 몇 픽셀 그 이상의 크기와 무게를 갖는다. 사진이 분절된 시간이라면 장대한 서사의 일부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소설의 한 문장이나 한 줄의 노랫말처럼.

사진에 대한 단상을 그럴듯하게 늘어놓았지만 사실 난 사진에 도 모른다. 부끄러운 고백을 하나 더 하자면 한때 사진이 글보다 못하다 여겼다. 글보다 사진이 많은 책은 소장 가치가 없어 보였다. 내 기준에서 이미지는 한 번 보고 뭔지 알아차리고 나면 그만이고, 글이 적고 사진이 큼지막하게 들어간 페이지는 훌훌 넘기다 금세 읽어버려 돈이 아까웠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내 책장에 사진이 많이 들어간 책이 꽂히기 시작했다. 보스토크Vostok, 올해만 들어 세 권째다.

보스토크2016년에 창간된 격월간 사진 잡지다. 창간호의 첫 문을 여는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것은 유쾌한 이야기다. 우리는 새로운 사진 잡지를 만들어 세상에 보낸다. 이 잡지는 한국의 사진 지형에 어떤 깊은 균열을 낼 것이고, 이 작은 세계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2이 문장에는 보스토크가 사진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리라는 비장한 선언이 담겨 있지만, 필자는 이는 유쾌한 일일 뿐이라며 가볍게 일축한다. 보스토크가 실제로 어떤 균열을 만들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으나 이에 버금가는 유의미한 행보를 이어오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 잡지는 예술, 디자인, 문학의 범주를 넘나들며 사진을 통해 많은 이야기를 전달한다. 사진계뿐만 아니라 사진계 밖의 독자도 끌어오고야 말겠다는 근사한 기획과 함께.

보스토크의 특집 앞에서 나는 종종 무장 해제되고 만다. 을지로 일대 재개발과 철거를 다룬 사라지는 나의 도시’(20193-4월호), 늦은 밤을 밝히는 일터의 풍경을 담은 오늘도 야근을 마치고’(20195-6월호)는 안 읽고는 못 배길 주제였다. 다시 보지 못할 도시 풍경과 그 속의 사람들, 고된 노동의 하루 끝을 담아낸 사진을 소장하지 않는 건 도시에서 나고 자란 직장인으로서 예의가 아니라는 둥, 말 같지도 않는 명분을 만들어냈다. 또한 보스토크 편집부는 최신호인 ‘SF 스타일’(20197-8월호)에서 사진과 SF 소설의 만남을 주선했다. 무려 현실 세계와 평행 세계를 연결하겠다는 의미를 담아. “현실 세계의 대상을 다루는 사진과, 눈에 보이지 않는 평행 세계를 다루는 SF의 거리는 언제나 생각보다 멀다. 우리는 양쪽의 만남을 주선하기 위해 네 명의 사진가가 찍은 사진들을 폴더로 묶어서 네 명의 소설가에게 보냈다. 규칙은 간단하다. 받은 사진을 보고 적절한 거리를 유지한 채로 소설을 한 편 써서 보내줄 것. 소설가들에게는 사진에 대한 어떤 정보도 제공되지 않는다.”3덕분에 나를 포함한 어떤 독자들은 사진에서 평행 세계로 진입하는 웜홀worm hole 같은 것을 찾느라 분주했을 것이다.

사진을 통한 다른 세계로의 여행, 그 여독이 아직 풀리지 않았을 즈음 어김없이 환경과조경의 마감도 돌아왔다. 바쁜 마감 중에 사진 하나하나를 깊게 들여다보는 일은 사치다. 하지만 얼마 전 사진에서 어떤 이야기의 단서를 너무 열심히 찾아다닌 탓인지, 평소보다 이번 잡지에 실린 사진을 오래 그리고 길게 보았다. 특히 표지를 장식한 유청오 작가의 사진, 갯벌 위의 구불구불한 두 줄에 자꾸만 눈이 갔다. 어째서 저런 모양을 하고 있나. 누가 만들어 낸 걸까. 파도일까, 아니면 바다 속 생명체일까. 만약 하나의 줄이 외계의 문자로 조합된 문장이라면? 평행 세계의 누군가가 남겨 놓은 신호일지도. 나는 보스토크 편집부가 보낸 사진을 손에 든 소설가처럼, 사진이 포착한 순간에 이따금씩 머물렀다. 그때마다 잠시 어떤 이상한 나라에 다녀온 것도 같았다.

 

1. 보스토크 프레스 편집부, 보스토크, 보스토크프레스.

2. 김현호, “잡지는 가볍게 바다를 가르고”, 보스토크201611-12월호, p.6.

3. 보스토크20197-8월호,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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