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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새광장의 주인, 동상의 주인
  • 환경과조경 2019년 3월

15.jpg최인훈이 소설 ‘광장’을 통해 말하듯 우리의 존재 양태는 밀실만으로, 또는 광장만으로 충족되지는 않는다. 물론 ‘광장’에서 밀실과 광장의 개념은 사회주의, 자유주의와 같은 이념 추구와도 관계가 있겠지만, 굳이 이념적 입장이 아니어도 밀실을 개인주의적 삶, 광장을 사회적 삶과 발언의 비유적 표현이라 볼 때 역시 그러하다. 실은 머리로는 광장을 추구하지만 몸으로는 여전히 밀실을 추구하는 사람, 건물로 둘러싸인 커다란 공터나 폭발적 에너지로 넘쳐나는 군중 사이에 있는 것에 왠지 모를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인 나는,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가 그리는 휴먼 스케일의 도시 내 커뮤니티를 추구하면 했지 그다지 광장을 즐기는 편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광장을 중히 여기고 그 존재 방식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밀실이든 광장이든 어떤 것이 필요할 때 그것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고, 어느 한쪽의 존재가 없다면 이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광화문광장의 조각상을 둘러싼 논쟁은 조각과 출신인 나에게 관심이 가는 논제일 수밖에 없었다.

 

광장을 광장이게 하는 요소는 단순하지만은 않다. 그저 물리적으로 너른 공간을 확보한다 해서 그것이 광장이 되는 것은 아니다. 광장의 의미는 사람들이 그 공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완성된다. 광장은 실재적, 물리적, 일상적 공간이면서 상징적 공간이고, 비워진 공간이면서 동시에 활동으로 채워지는 공간, 그리고 이를 위한 적당한 밀도의 물리적 요소가 필요한 공간이다. 같은 광장이라도 어떻게 디자인하고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것은 아고라가 되기도, 또는 반대로 제의적 공간이나 전체주의적 권력의 전시장이 되기도 한다. 10년 전 광화문 세종로에 광장이라 불리는 어정쩡한 공간이 생겼을 때, 그것은 우리에게 다소 생소하기도 했을뿐더러 그 형태나 내부 밀도를 생성하는 요소들의 배치 역시 광장이라 하기엔 애매하기 짝이 없었다. 어쩌면 군부 정권의 직선적 힘과 미학을 전시했던 쭉 뻗은 대로와 동상이 있던 공간에 사멸한 광장을 되살린다는 상징적 의미에 주안점을 둔 시도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일이 지나면서 시민의 활동에 따라 아고라로서 광화문광장의 역할은 점점 더 커졌으며, 그만큼 공간에 대한 새로운 요구도 생겨났다. ...(중략)

 

* 환경과조경 371호(2019년 3월호) 수록본 일부


진나래는 조각과 사회학을 전공했으며, 사회와 예술, 도시, 인류학과 기술·문화 등에서 발생하는 타자성과 윤리의 문제에 흥미를 느낀다. 2012년 ‘일시합의기업 ETC(Enterprise of Temporary Consensus)’를 공동 설립하여 활동한 바 있다. 현재 학업과 작업을 병행하며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2017년 2월부터 12월까지 『환경과조경』에 “예술이 도시와 관계하는 열한 가지 방식”을 연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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