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 드로잉은 언제부터 그려졌을까. 먼저 조경 드로잉의 범위를 정할 필요가 있다. 정원, 공원, 자연을 그린 모든 그림을 조경 드로잉이라고 한다면 화가가 그린 풍경화도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러한 이미지는 존재하는 경관을 모사한 그림일 뿐 조경 드로잉은 아니다. 조경 드로잉은 설계가가 경관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생산한 경관과 관련한 이미지를 말한다. 초기 아이디어 구상 과정에서 빠른 속도로 그리는 스케치, 대상지를 분석하면서 생산하는 다이어그램, 공모전 출품을 위해 만든 컴퓨터 이미지, 공사를 위한 시공 도면, 조성 후에 자신의 작품을 다시 그린 이미지 등 설계 과정에서 만들어진 모든 시각화 작업을 조경 드로잉으로 볼 수 있다.
그럼 언제부터 조경가가 설계 과정에서 이미지를 생산하기 시작했을까. 조경이라는 전문 분야가 만들어진 것이 19세기 중반 이후이므로, 그 이전의 정원이나 공원을 설계한 전문가를 엄격히 말해 조경가라 부를 수는 없다. 그렇더라도 지난 연재『( 환경과조경』 2019년 2월호, “나무를 그리는 방법, 드로잉의 혼성화”, pp.98~103 참조)에서 소개한 바 있는 이집트 정원 그림을 염두에 둔다면, 우리가 조경이라고 부르는 작업의 역사는 인류 문명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말해도 무방하다.
다만 이집트 정원 그림은 설계가가 그린 것인지 그 여부를 알 수 없기에 조경 드로잉이라 할 수는 없다. 조경 연구자들은 조경 드로잉, 즉 조경가가 경관 설계 과정에서 그린 드로잉이 16세기 이탈리아에서 시작됐다고 추정한다. 이때의 드로잉은 당시 이탈리아 정원의 질서 정연함을 시각화하기 적합한 평면도 형식으로 그려졌다. 그것은 설계가의 머릿속에 디자인된 경관을 자로 측정해 표현한, 조경 드로잉의 두 가지 특성인 과학적 도구성과 예술적 상상성 중에서 전자의 특성이 강조된 시각화 방식이었다.
메디치 정원 드로잉
16세기 중엽에 조성된 이탈리아 메디치Medici 정원 중 하나인 빌라 디 카스텔로(Villa di Castello)의 정원 상세 평면도는 현존하는 최초의 정원 드로잉 중 하나로 여겨진다(그림 1). 이 드로잉은 정원을 설계한 니콜로 페리콜리(Niccolo Pericoli)(1500~1550), 트리볼로(Tribolo)라고도 불린 이탈리아 조각가이자 화가가 그렸다고 추정된다.1
설계가의 머릿속에 있는 정원을 그대로 평면도로 옮긴 듯한 이 드로잉에는 생울타리의 외곽선이 정교하게 직선으로 그려져 있다. 정원이 조성될 대상지는 평면에서 구획되고 그 내부에 식재가 가지런히 채워지게 된다. 빌라 카스텔로는 현재 남아 있는 이탈리아 정원 중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1404~1472)의 조형 질서를 가장 충실하게 구현한다. 그러한 조형 질서는 화가 주스토 우텐스(Giusto Utens)(?~1609)의 그림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그림 2). 남북 방향의 직선 축이 화폭 중앙을 지배하고 축을 따라 건축물과 정원이 좌우 대칭으로 펼쳐지며, 격자형 길의 군데군데 분수대, 퍼걸러, 조각상 등이 놓여 있다.2 ...(중략)
* 환경과조경 371호(2019년 3월호) 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Raffaella Fabiani Giannetto, Medici Gardens: From Making to Design, Philadelphia: University of Pennsylvania Press, 2008, pp.257~258.
2. 빌라 카스텔로 정원 설계의 전반적 설명은 다음을 참조할 것. D. R. Edward Wright, “Some Medici Gardens of the Florentine Renaissance: An Essay in Post-Aesthetic Interpretation”, in The Italian Garden: Art, Design and Culture, John Dixon Hunt, ed.,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6, pp.34~59.
이명준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경 설계와 계획, 역사와 이론, 비평에 두루 관심을 가지고 있다. 박사 논문에서는 조경 드로잉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현대 조경 설계 실무와 교육에서 디지털 드로잉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했고, 현재는 조경 설계에서 산업 폐허의 활용 양상, 조경 아카이브 구축, 20세기 전후의 한국 조경사를 깊숙이 들여다보고 있다. ‘조경비평 봄’과 ‘조경연구회 보라(BoLA)’의 회원으로도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