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중문대포해안 주상절리대 경관설계 국제공모’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소식을 전한 이는 스페인의 한 건축가였다. 그는 공모전에 같이 참여할 의향이 있는지 이메일로 물어 왔다.
흥미로웠다. 정원도 아니고 공원도 아니며 건축도 아닌 경관을 설계하는 것이, 그것도 국제 공모로 진행하는 것이, 이메일을 통해 이름을 알게 된 스페인 건축가가 참여하고 싶어 애달아 하는 것이. 아쉬웠다. 그와 같이 경관을 설계하는 공모전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이. 지난 8월은 연구년을 보내기 위한 출국 준비로 분주했기 때문이다. 기대도 됐다. 참가자들은 경관 설계에 어떻게 접근하고 풀어나갈까. 정원, 공원 같은 영역별 접근이 아니라 경관이라는 포괄적 접근은 다른 결과를 보여줄까. 경관 설계를 평가하는 심사위원은 어떤 관점으로 참가작을 바라볼까. 걱정도 있었다. 주상절리는 좀 놔두면 안 되나? 주상절리를 좀 더 가깝게 체험할 수 있게 한다는 이유로 제거하기 어려운 시설을 설치하는,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는 건 아닐까? 더는 가기 싫게 만들던 조악한 목재 데크를 교체하는 정도에서 머무는 것은 아닐까? 흥미와 아쉬움, 기대와 걱정이 뒤섞여 다가왔다.
경관 설계인가, 공원 설계인가
주상절리대 상부 공간의 녹지, 산책, 전망, 전시와 체험 등을 다루는 일은 공원 설계와 다르지 않다. 통상적이라면 지질 공원 설계 공모전이었을 것이다. 산림청의 후원이 있었다면 지질 정원 설계 공모전이 될 수도 있겠다. 공모전을 기획한 이가 건축 우선주의자였다면, 건축이 지배적 경관 요소이고 공사비 비중과 사회적 영향력이 크다는 측면에서 건축 설계 공모전이 되었을 수도 있다. 이 모두를 어떻게 극복하여 경관 설계 공모가 열릴 수 있었을까?
경관은 그 자체가 지역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집적체이며 이를 서로 연계하려는 관성을 가진다. 시간적 누적의 결과물인 경관은 지역적 가치이자 땅에 관한 문제다. 땅의 기억과 조건이 다른 대상지는 모두 다른 정체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원, 공원, 건축 전문가들은 대상지의 기억이나 성격과 관계없이 작가의 아이디어를 투사해 왔다. 각기 다른 대상지에 작가의 의도라는 이름으로 유사한 정체성을 만든다. 개성이 사라진 얼굴을 어느 성형외과 출신이냐로 구분하듯이, 디자인된 대상지는 설계자(설계사무소)에 의해 균질화되어 왔다.
이런 측면에서 경관 설계는 대상지 그 자체가 정체성임을 강조하여 작가의 의도를 적절하게 제어하는 효과가 있다. 경관 설계라는 포괄적 접근이 정원, 수목원, 공원 같은 각론으로 영역화하는 탐욕을 제어하는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리하여 경관 설계가 상처받고 점점 더 파편화되어 가는 경관을 치유하고 통합하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이 생긴다. 그런 기대가 섣부르다는 것을 심사평이 일깨운다. 심사평은 주상절리대 경관 설계 프로젝트를 제주 섬이라는 지질 공원(geo-park)의 한 부분으로 본다. 공원이라는 관점은 여전히 유효하다. 심사평은 장소의 스토리텔링 구현, 자연 풍경과 인공 구조물의 관계 설정, 주변 지역이나 자원과 적절한 관계 맺기, 주상절리를 경험하는 다양한 방식 제안, 운영·관리 측면에서 풍부한 체험 및 교육 프로그램 제시 등이 평가 기준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어느 공원 설계 공모전에나 적용할 수 있는 기준들이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9호(2019년 1월호) 수록본 일부
최정민은 순천대학교 조경학과 교수로, 설계 실천과 교육 사이의 간극을 고민 중이다. 대한주택공사에서 판교신도시 조경설계 총괄 등의 일을 했고, 동심원 조경기술사사무소 소장으로 다양한 프로젝트와 설계공모에 참여했다. 제주 서귀포 혁신도시, 잠실 한강공원, 화성 동탄2신도시 시범단지 마스터플랜 등의 설계공모에 당선되었다. 조경비평 ‘봄’ 동인으로 현실 조경 비평을 통해 조경 담론의 다양화에 기여하고 싶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