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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가장 식물적인 것이 가장 예술적이다
  • 환경과조경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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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케브랑리 박물관. 식물은 건축물의 수직면을 새로운 서식처로 점유하고 건축물은 이질적인 초록 파사드를 통해 생태적 메시지를 전달하며 해당 시설의 이미지를 개선하거나 자산 가치를 높이거나 미기후를 개선하는 착한 기능을 수행한다. ⓒVertical Garden Patrick Blanc


빌바오 효과라는 말을 낳은 스페인의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은 프랑크 게리라는 유명 건축가의 브랜드 마케팅을 통한 지역 재생의 대표적 사례로 언급된다건축물 자체가 예술 작품인 수많은 미술관을 떠올린다면 새롭게 문을 여는 부산현대미술관이 부산 서부 지역의 부족한 문화 인프라를 확충한다는 사실 자체에 만족하지는 못할 것이다그래서 부산현대미술관이라는 건축물이 그 모습을 공개했을 때 쏟아진 여론의 질타와 대중의 실망감 역시 어렵지 않게 납득할 수 있다얼굴이 메시지이자 자본인 시대에공공 턴키 발주 방식으로 탄생한 대형 마트 같은 겉모습은 미술관의 품격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에 직면했다그렇다면 미술관다운 건축물의 모습은 대체 무엇일까미술관의 조건에 겉모습은 어때야 한다는 조항이 어디에 있단말인가미술관은 건축물이라는 매질媒質을 통해 반드시 어떠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가겉모습에 대한 못마땅한 반응은 쉽게 나오지만 미술관이 어때야 한다는 규범적 대안을 내놓기는 쉽지 않다개관전에 초대된 작가들은 저마다 이 미술관스럽지 않은 신상新商미술관을 미술관스럽게” 만들어야 하는 부차적인 숙제를 떠맡은 듯 보인다부산현대미술관은 미술관 자체에 대한 해석을 요청하는 하나의 기이한 장소특정성을 작가들에게 작품 설치의 조건으로 던져준 셈이다패트릭 블랑(Patrick Blanc)의 수직 정원은 이렇게 스스로는 성격을 드러내지 못하는 중성적 공간에 대한 도발적 대안을 제시한다.

 

을숙도라는 섬그리고 미술관

섬은 땅과 물의 중간자다물이 차면 사라지고 빠지면 드러나는 대지의 유동성은 비옥한 토지를 만들고 철새를 포함한 다양한 동식물의 서식처를 형성한다그러나 안정성이 없는 대지라는 이유로 밑바닥으로 내몰린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점유할 수 있는 변방의 땅이기도 하다많은 영토 분쟁이 섬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이유도 섬은 경계를 결정짓는 중요한 기준이지만 동시에 어디에도 속하기 힘든 중간적 성격을 가지기 때문이다섬을 주제나 배경으로 한 문학 작품이 많다는 사실도 고립된 지형이 만들어 내는 독특한 지정학적생태적사회적 풍경 때문일 것이다시대와 국경을 초월하여 섬이라는 대지의 변화와 불확실성이 초래하는 긍정적부정적 가능성은 예술가에게 마르지 않는 영감을 주었다을숙도를 주제로 한 시와 소설이 많은 것 역시 우연이 아니다이러한 의미에서 부산현대미술관이 을숙도라는 섬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은 오래된 필연이었을지도 모른다.

 

을숙도는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하구에 위치한 모래톱으로원래 일웅도와 붙었다 떨어지기를 반복하는 변화의 땅이었다. 1980년대 낙동강 하굿둑이 건설되면서 담수와 해수가 자유롭게 넘나들던 흐름이 끊기고 천혜의 자연 생태계가 심각한 변화를 겪게 된다그 후로 쓰레기 매립지준설토 적치장분뇨 해양 처리장명지대교(을숙도대교등이 들어서면서 섬의 원시성은 사라지고 을숙도는 인간의 필요에 따라 조각나고 재구성된 어정쩡한 자연으로 남았다이 섬은 우리나라가 근대화와 국토 개발 과정에서 취해 온 자연에 대한 태도를 그대로 기록한 오픈 아카이브이기도하다부산현대미술관은 바로 이 하굿둑이 섬을 가로지르며 만든 도로에 면해 있어 달리는 자동차에서 바라보면 미술관의 파사드가 거대한 광고판처럼 보인다민물과 바닷물을 가르는 대규모 토목 구조물에 붙어 있는 부산현대미술관은 입지적 특성 때문에 본래 의도와는 상관없이 섬의 얼굴 역할을 하는 대표성을 가지게 되었다하굿둑생태 공원체육 시설문화 회관피크닉 광장에코센터미술관매립지체험장 등 저마다의 땅따먹기로 조각난 이 섬은 매력적인가부산현대미술관이 이러한 섬의 역사와 무관하게 간판 역할을 할 수 있을까미술관은 섬의 역사를 끌어안고 새로운 정체성을 세울 수 있을까? ...(중략)...

 

각주 1. 2018년 6월 서울에서 개최된 토론회에서 나온 패트릭 블랑의 발언에서 따온 제목이다.

 

환경과조경 365(2018년 9월호수록본 일부

 

김아연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와 동대학원 및 미국 버지니아 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했다조경 설계 실무와 설계 교육 사이를 넘나드는 중간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국내외 정원놀이터공원캠퍼스주거 단지 등 도시 속 다양한 스케일의 조경 설계 프로젝트를 담당해 왔으며 동시에 자연과 문화의 접합 방식과 자연의 변화가 드러내는 시학을 표현하는 설치 작품을 만들고 있다자연과 사람의 관계에 대한 아름다운 꿈과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일이 조경 설계라고 믿고이를 사회적으로 실천하는 일을 중요시 한다현재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이자 스튜디오 테라 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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