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우회하여 이렇게 시작하자. 지금까지의 조경은 보이지 않았다고. 피터 워커와 멜라니 시모는 『보이지 않는 정원들(Invisible Gardens)』에서 동시대의 조경 작품들이 잘 드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진단하면서 이에 반해 조형성이 두드러진 작품을 내놓았던 모더니즘 계열의 조경가들을 탐구한 바 있다.1 조경 이론가 엘리자베스 마이어는 이러한 논의를 좀 더 정교한 담론으로 진화시켰다. 마이어는 조경을 크게 ‘환경적 혹은 생태적 조경’과 경관을 아름답게 보이도록 만드는 ‘예술로서의 조경’으로 분류하고,2 두 가지 조경의 대립을 해소하기 위해 생태적 성능을 탑재하면서도 예술로 인식되는, 말하자면 지속의 미(sustaining beauty) 를 지향하는 조경 설계가 필요 하다고 주장했다.3
조경이 ‘보이지 않는다(invisible)’고 할 때, 이 말은 두 가지 의미를 담는다. 하나는 설계한 경관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리하여 대중에게 ‘인식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간 예술로 인식되면서 동시에 생태적 성능을 지닌 경관을 만들기 위한 조경가들의 노력이 있었다. 대지 예술에 영감을 받은 조지 하그리브스는 생태적 성능을 탑재한 유려한 랜드폼(landform)을 설계해 왔고, 마이클 반 발켄버 그는 자연의 프로세스를 경험하게 하면서 시각적으로도 아름다운 설계 작품을 선보였다. 이외에도 근래의 포스트 인더스트리얼 공원은 재활용한 건축물과 구조물 덕택에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기 쉬웠다. 마이어의 논의는 밀레니엄을 갓 넘긴 시점에 시작되었지만, 그 주장은 여전히 유효하다. 특히 랜드폼을 디자인하는 실험이 빈 번하지 않은 국내에서 아직 조경은 시각적으로, 그리고 인식적으로 충분히 보이지 않았다. 조경은 좀 더 보일(visible)필요가 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4호(2018년 8월호) 수록본 일부
이명준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경 설계와 계획, 역사와 이론, 비평에 두루 관심을 가지고 있다. 박사 논문에서는 조경 드로잉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현대 조경 설계의 실무와 교육 에서 디지털 드로잉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했고, 현재는 조경 설계에서 산업 폐허의 활용 양상과 20세기 전후의 한국 조경사를 보다 깊숙이 들여다보고 있다. ‘조경비평 봄’과 ‘조경연구회 보라(BoLA)’의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