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기억은 미화되기 마련이지만 이번만큼은 아니다. 두 번의 여름을 몹시 더운 곳에서 보냈다. 한 번은 필리핀, 또 한 번은 습기로 가득한 고온의 온실이었다. 하지만 올여름은 내가 겪은 그 어떤 여름보다도 견디기 어렵다. 연이은 폭염 속에서 ‘차라리 거기가 나았어’라고 중얼거리면서 하루하루 발갛게 익어가고 있다. 영화 ‘클릭’처럼 시간을 조종하는 리모컨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빨리 감기’ 버튼을 눌러 이 지독한 날들을 후루룩 넘겨버리고 싶지만, 1년 중 가장 활발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북극을 생각하면 버튼을 선뜻 누르지 못할 것 같다.
많은 사람이 북극하면 온통 흰 눈으로 뒤덮인 풍경을 상상하지만 북극에도 여름이 있다. 한국에서 여름인 7월이 되면 북극도 여름을 맞이한다. 낮 기온이 영상 10도까지 오르고 온종일 태양이 떠 있는 이 시기는 극한의 추위를 피해 있던 각종 동식물이 움츠렸던 몸을 한껏 펴는 시간이다. 꽁꽁 얼어 있던 땅이 녹으면서 각종 현화 식물과 지의류, 선태류가 넓은 땅을 가득 덮고, 그 속에서 곤충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북극토끼는 마음껏 풀을 뜯어 먹으며 통통하게 살이 오르고 산란기를 맞은 새들은 갓 태어난 새끼들을 보듬기에 여념이 없다.
아쉽지만 북극의 여름은 길어봤자 한 달 남짓, 기나긴 겨울 속 잠깐의 따뜻한 시간이다. 8월이 지나면 또다시 찬바람이 불어와 길고 긴 겨울이 시작된다. 펄펄 끓는 올여름이 지나고 한국에 가을이 오면 북극의 동물들은 잠자듯 살테고, 꼬까도요와 세가락도요는 그린란드부터 유럽과 아프리카 해안까지, 남반구에서 북반구 끝을 오가는 긴 여행을 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쯤 막 알에서 나와 솜털을 휘날리며 북극 위를 앙증맞게 돌아다니고 있을 작은 새들을 생각하니 이 지긋지긋한 여름이 조금은 더디게 흘러도 괜찮을 것 같다.
극지에서 동물을 연구하는 이원영은 북극의 동식물만큼이나 북극의 여름을 기다린다. 극지 연구소 연구원, 동물행동학자, 생태학자 등 그를 수식하는 단어가 여럿 있지만 풀어서 말하면, 동물에 대한 애정이 흘러넘쳐 해마다 여름과 겨울이면 극지로 향하는 사람이다. 그는 매년 남극에서 펭귄을 연구했지만 가슴 한편에 북극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지냈다. 자연 다큐멘터리에서 ‘꽁꽁 언 동토의 벌판 위에 눈을 맞으며 홀로 서 있는 사향소의 모습’을 본 후부터였다. 북극이나 남극이나 어차피 온통 얼음으로 뒤덮인 건 마찬가진데 다른 게 있을까 싶지만, 같은 극지라도 북극에는 펭귄이 없다. 북극흰갈매기, 회색늑대, 사향소는 북극 인근 에서만 볼 수 있는 희귀한 동물들이다. 『여름엔 북극에 갑니다』는 바라고 바라던 북극 땅에 닿게 된 그가 두 차례에 걸쳐 그곳에서 여름을 맞이한 기록이다.
동물을 연구하는 사람은 ‘기약 없는 기다림’에 익숙해져야 한다. 사람이 살지 않는 야생의 땅에서는 더욱 그렇다. 예민한 북극토끼를 관찰하기 위해 오전 내내 토 끼 무리 옆에 가만히 무릎을 꿇고 앉아 기다리기도 하고, 광활한 대지에서 작은 새 둥지를 찾기 위해 몇 시간을 돌아다니는 것쯤은 가벼운 산책 정도로 여겨야 한다. 하지만 기다린 만큼 보람도 있는 곳이다. 식사 도중 ‘얼음 위에 홀연히 나타났다 사라지는 마법의 새’라 불리는 북극흰갈매기가 모습을 드러내는가 하면, 일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사향소와 대뜸 마주친다. 무엇보다 호기심 많은 생태학자에게 산에 굴러다니는 배설물만큼 반가운 손님도 없다. 산 정상에서 말로만 듣던 회색늑대의 분변을 찾았을 때, 그는 손으로 집어 들어 냄새를 맡아보고, 손톱으로 한쪽 끝을 부서뜨려보면서 세상 진지한 태도로 분석한다. “연한 회색빛에 길이는 10센티미터, 두께는 3센티미터는 족히 되는 듯하다. 이 정도라면 작은 동물의 것이 아니다. … 레밍의 것으로 추측되는 뼈와 털잔해가 뒤섞여 나온다. 이 정도 크기의 배설물을 만들어내는 포식자라면 … 생각하다가 나도 모르게 ‘회색늑대다!’하고 외쳤다.”1 가방에서 지퍼백을 꺼내 조심스럽게 분변을 담고, 동료들에게 보여줄 생각으로 가벼운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과장하지 않은 담백한 이야기가 좋다. 북극곰과 마주해 극적으로 살아 돌아온다던지, 새와 친구가 된다는 드라마틱한 내용은 없다. 아무 수확 없이 허탕 치는 날도 있고, 여전히 동물들은 그를 경계한다. 하지만 종종 걸음으로 새를 쫓아다니고, 들판에 핀 꽃의 이름을 찾아보는 이가 매일 밤 써내려간 일기에는 옆에서 듣는 듯 친근한 어투와 순수한 호기심이 가득 들어 있다. 덕분에 읽는 사람은 그의 여정에 쉽게 몰입할 수 있다.
책 속 북극의 풍경을 더듬더듬 그리다 보면 그곳의 서늘한 바람이 한차례 지나가는 듯하다. 더위에 많이 시달린 탓일까. 다음 문장은 여름 내내 가지고 다닐 것 같다. “바다에 떠 있는 빙산 중 하나가 뭍 가까이에 있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 다. 나는 빙산에서 손바닥 크기의 조각을 떼어내 지퍼백에 담아 캠프로 가져갔다. … 우리는 얼음을 잘게 쪼개어 컵에 넣고 위스키를 조금 따랐다. 컵에 귀를 갖다 댔더니 얼음이 녹으면서 ‘톡 톡 톡’ 하는 경쾌한 음이 들렸다. 수만 년 전 빙하가 생길 때 그 안에 갇힌 공기가 빠져나오는 소리다. … ‘역사의 맛이야.’”2가 본 적 없는 그곳의 풍경이 그리워진다.
1.이원영, 『여름엔 북극에 갑니다』, 글항아리, 2017, pp.120~121.
2.위의 책, p.2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