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2일, 손 없는 날은 그 주에서 둘째로 더운 날이었다. 가장 더운 날은 짐 싸기에 이어 본격적으로 짐을 나르기 시작한, 이사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악귀는 없었는지 몰라도, 우리는 귀신보다 더 끔찍한 폭염과 함께 장장 3일간 사우나에서 헤매는 듯한 기분으로 짐을 정리해야 했다.
유월부터 호들갑을 떤 것 치곤, 이사 완료 소식이 늦었다. 예고한 바와 같이 『환경과조경』은 내방역 인근 평지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틀었다. 역에서부터 도보로 3 분도 채 안 되는 거리, 초역세권이다! 게다가 2층이다. 지각할까 염려하며 북적이는 엘리베이터를 몇 번이고 놓치는 대신, 계단을 몇 번 겅중겅중 오르기만 하면 가벼이 사무실에 도착할 수 있다. 이사가 끝난 뒤에도 자잘한 정리 작업 때문에 일주일 정도 정신이 없었지만, 이제 제법 새로운 사무실에 적응한 직원들은 점심 시간마다 새로운 맛집 찾기에 여념이 없다.
이사를 마치자, 두 가지 인상적인 장면이 남았다. 먼저 (구)사무실에 세워졌던 붉은 벽. 베를린 장벽처럼 사무실 중앙을 가르는 이삿짐 바구니가 높게 쌓였는데, 그 안에 든 건 창고와 책꽂이를 채우고 있던 잡지와 단행본들이었다. 옮겨도 옮겨도 끝이 없는 책 꾸리기 작업을 계속하며, 지금껏 소리 내 본 적 없는(마음속으로는 몇 번 한 적이 있다) “잡지를 잘 만들고 잘 팔아서 절대 재고를 만들지 않겠다”는 다짐을 몇 번이나 중얼거렸는지 모른다. 오래전 새로 산 아이패드를 자랑하던 친구의 말도 떠올랐다. 그는 온갖 잡동사니와 두꺼운 책으로 부푼 내 가방을 보며 그랬다. “미련하게 무거운 거 바리바리 싸 들고 다니지 말고, 수시로 가지고 다닐 책은 이북e-book으로 봐.” 한 손에 든 아이패드를 종잇장처럼 가볍다는 듯이 흔들어 보이던 친구의 샐쭉한 미소가 얄밉기만 했는데, 이제 와 그의 말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손끝에 닿는 종이의 질감과 책장을 넘길 때 들리는 바스락거리는 소리 등 종이 책만이 지닌 낭만이 있지만, 나날이 집안 한구석에서 몸집을 키우는 책 더미가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다음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몇 번이고 바뀌었던 가구 배치안이다. 궁금해 하실 것 같아 알려드리자면, 단체 카톡방에 공유된 가구 배치 아이디어(『환경과조경』 2018 년 6월호 코다 참조)는 모두 반려됐다. 사실 도면부터 다시 그려야 했다. 이놈의 건물 벽이 몰래 줄어들었다 늘어나기라도 하는 건지, 치수를 재러 갈 때마다 조금씩 달라졌다. 몇 번의 수고 끝에 정확한 도면을 만들고, 배치안까지 완성했는데 뜻밖에도 이삿날 문제가 발생했다. 일렬로 책장을 늘어놓으려 했던 자리에 형광등 스위치가 있었다. 가구 배치를 진두지휘하던 나창호 기자는 당황했다. 가구는 계속해서 밀려들어 오고, 인부들은 끊임없이 “이 가구는 어디에 놓냐”며 대답을 재촉했다. “도면은 근삿값 수준의 스케일로 작성하고, 최종 스케일은 현장에서 결정”1한다던 최재혁 작가의 글이 생각났지만, 이 노하우가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미완의 악보를 작성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이를 최종 단계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 완성시키려는 노력”2 은 어느 정도의 감각과 경험을 갖춘 조경 가에게 통용될 말일 테니까.
새로운 사무실은 전과 달리 세 면이 통유리다. 이제 고개를 틀면, 액자처럼 전깃줄과 느티나무 가지를 보여주던 작은 창 대신 대로변의 풍경을 볼 수 있다. 창 때문에 전처럼 책꽂이를 많이 놓을 수는 없지만, 탁 트인 풍경이 야근의 피로를 잊게 해주길 바라본다. 또 하나 큰 변화는 독자와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 점이다. 같은 사옥의 6층은 두 개 층을 합쳐 높은 천장을 확보한 공간으로, 복층을 두어 위층을 사무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아래층과 위층을 연결하는 목재 스탠드는 각종 행사에서 훌륭한 객석이나 연단으로 기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리고 대망의 첫 행사로 『100장면으로 읽는 조경의 역사』 북토크 “여자 둘, 남자 둘의 수다스런 책 읽기”가 열렸다. 처음이기에 서투를 수도 있겠지만, 꽤 많은 독자가 찾아와 저자, 패널 그리고 다른 독자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북토크는 독서 인구 감소에 대항하려는 출판사의 생존 전략 중 하나지만, 독자가 자신과 비슷한 관심사를 지닌 사람과 만날 수 있는 소통의 장이기도 하다. 이 같은 행사가 『환경과조경』의 독자층을 풍부하게 만들 뿐 아니라, 새로운 커뮤니티의 구심점 역할을 할 것이라 믿는다.
마지막으로 걱정거리 하나를 덧붙이자면, 새로운 사무실은 전과 달리 중앙냉난방 시스템으로 사무실 온도를 조절한다. 이번 마감 내내 아홉 시 무렵이면 어김없이 관리인분이 찾아와, 언제 퇴근할 것인지(언제 에어컨을 끌 수 있는지)를 물었다. 어쩌면 앞으로 야근의 고통을 불볕더위와 함께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코다를 쓰느라 야근하며 관리인분을 귀찮게 하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다가, 그래도 마감이 임박했을 때 쓴 코다가 현장을 더 생생하게 전달하지 않나 하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아 본다.
1.이번 호, p. 95.
2.위의 책, p. 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