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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 환경과조경 2011년 10월

Gyeongbokgung palace


造營_경복궁은 태조 2년(1393) 2월 권중화 등이‘신도종묘사직궁전조시형세지도新都宗廟社稷宮殿朝市形勢地
圖’를 왕에게 바치면서 시작되어 이후 새 도읍 한성을 건설하고 궁궐을 짓는 일을 담당하기 위하여 태조 3년 9월 신도궁궐조성도감新都宮闕造成都監을 중심으로 심덕부·김주 등이 여러 산사山寺승려들의 공역 및 경기·충청 지역 백성들의 부역에 힘입어 완성되었다. 그러나 창건 당시의 경복궁은 완성된 궁궐이 아니었으며, 태종 4년(1404) 환도 준비의 일환으로 이궁離宮인 창덕궁이 창건되면서 경복궁을 대체하게 되었다. 그러나 태종 6년 이후 경복궁의 수리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고, 태종 11년에는 명당수를 금천으로 끌어들이고, 12년에는 중국 사신 영접을 위해 경회루를 세웠으며, 누각 둘레에 넓은 못을 파서 아름다운 경관을 조성하였다. 태종이 경복궁으로 거처를 옮기지 않은데 반하여, 세종은 3년이 되던 해부터 자주 경복궁에 이어하고, 기존 전각을 수리하는가 하면, 8년에는 집현전 문신들에게 궁궐 내의 문과 다리 이름을 명명하게 하였다. 이때 정해진 문의 이름은 홍례문弘禮門·광화문光化門· 일화문(日華門: 근정전 東廊夾門)·월화문(月華門: 근정전 西廊夾門)·건춘문(建春文: 궁성 東門)·영추문(迎秋門: 궁성西門)·영제교永濟橋등이 있다. 전각과 행랑으로만 이루어졌던 창건 초기의 경복궁은 이때에 이르러 궁성의 궐문闕門을 갖춘 명실상부한 궁궐宮闕이 되었다. 이렇게 외곽을 마련한 세종 9년(1427) 경복궁은 정전 체재를 완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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