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들을 참여시킨다고 그들에게 연필을 쥐어주자는 것은 아니다. 상호 이해 도달이 목적
이다. 그리고 전문가의 분석과 지식에 대한 사회적이고 윤리적 판단은 일반인과 함께 해야 하며 전문가는 이러한 판단을 촉구하는 역할, 즉 사회적 성찰을 촉진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는 전문가의 권위를 무시하거나 역할을 축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확대시키는 것이다. 저번 호는 소통과 조경이라는 키워드를 연결하는데 있어서 조경가의 역할을 위와 같이 선언적인 주장으로 끝을 맺었다. 이번 호는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자.
촉진자facilitator로서의 전문가
인터넷이 제공하는 많은 정보는 전문가의 위상을 위협한다. 황우석 사태나 쇠고기 파동 때 일반인들은 생물학에 대해 대단한 식견을 보여주었다. 포털 사이트의 줄기세포 배양에 대 한 다이어그램이나 전문 용어에 대한 설명들은 일반인들의 이해를 도왔고 덕분에 그들의 발언은 상당히 전문적이었다. 김연아가 올림픽에 출전할 당시 많은 이들은 또 피겨스케이팅의 전문가였다. 왜 김연아의 점프가 훌륭한지, 점수와는 어떻게 연결되는지 등등 디테일한 부분까지 그들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러한 인터넷상의 논쟁의 과정이나 내용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어떤 사항에 대한 우리의 견해와 의사 결정이 꼭 어떤 정보에 의해 좌우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볼 수 있다. 겉보기에는 객관적인 데이터에 의한 결정으로 보이는 것들이 많은 경우 정치적이다. 우 리들의 김연아에 대한 평가가 일본 선수를 제치고 금메달을 땄으면 하는 바람과 아무런 상 관없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이. 그래서 벡은Ulrichreck(1995)은 오늘날과 같이 사회가 너무 복잡해 위험 예측이 불가능한 위험 사회에서, 정책에 대한 의사 결정은 기술적 지식뿐만 아니라 정치적이고 규범적인 질문도 필요하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정치적인 목적들에 대한 사회적 판단과 관련해서는 전문가들 또한 일반인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즉 전문가의 역할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정보의 양에서나 판단에 있어서나 한계가 있는 오늘날, 전문가의 역할이란? 피스쳐Frankrischer(2000)라는 사회학자에게서 답을 찾아보자. 그는 전문가의 분석과 지식에 대한 사회적 판단은 시민의 역할이며 전문가는 이러한 판단을 촉구하는 역할, 즉 사회적 성찰을 촉진시키는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굳이 우리말로 번역하자면‘촉진자’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로서의 역할에 대해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이 촉진자로서의 전문가의 역할에 대한 개념을 부룩필드Stephen Brookfield(1986)에게서 도움 받고 있는데, 촉진facilitation은“자신들의 경험을 해석하고 대안적 방법을 찾는 도전적인 학습자들”의 과정 그리고 학습자들에게“스스로 비판적으로 자신들의 가치와 행위의 방법, 삶의 법칙들을 검토하도록 하는 생각들과 태도들”을 제시하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촉진자facilitator로서 전문가의 역할은 일반인들에게 질문을 해 스스로 자신들의 이익을 검토하도록 하는 것이며, 주민들이 자신들의 언어로 전문가들이 제시한 질문에 답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고 스스로 학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