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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따라 밟아본 삼국지 유적과 경관(3)
  • 환경과조경 2010년 6월

떠나는 관우와 보내는 조조의 아름다운 이별처 허창 파릉교

원소의 심복 안량, 문추를 베어 공을 세운 관우는 형인 유비가 원소 휘하에 있다는 말을 듣고 떠날 준비를 한다. 조조에게 하직인사를 올리려 했으나 면회를 사절하자 하직의 글을 쓰고 조조에게서 받은 금 은 등은 모조리 곡간에 넣고 문을 봉한 후 한수정후 인후를 단상에 걸어두고, 부하들로 하여금 두 부인을 태운 수레를 호송케 하여 북문을 향해 길을 나선다.  조조는 뒤돌아가서 죽여 후환을 없애자는 말을 듣고, 이미 항복하는 조건에 놓아 보내기로 한 약조를 지켜 신의를 저버리지 않겠다고 한다. 그에게 노자路資와 전포를 주어 후일의 기념을 삼게 배웅하러 가겠다고 한다. 관우가 말을 다리 위에 세운 다음 청룡도를 치켜들고 남쪽을 바라보니 조조가 수십 명의 무리를 이끌고 달려온다. 조조는 작별인사로서 황금을 담은 쟁반을 받쳐 들었으나 받지 않고, 비단전포를 받들어 바치니 청룡도 끝으로 비단전포자락을 걸쳐 올려 몸에 둘렀다. 허저가 저렇듯 무례한 자를 어찌하여 그냥 보내시냐고 하니까“저는 일인일기요 우리는 수십 인인데 어찌 의심이 없겠는가?”하고 못내 탄식하며 말머리를 돌려 성으로 돌아온다. 
-황석영『삼국지』3권에서 요약-



헤어진 장소가‘다리’라고 고유지명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곳은 하남성 허창許昌에서 서쪽으로 8킬로미터 떨어진 파릉교 陵橋이다. 파릉교라는 이름은 본래 당나라 때 장안에서 이별의 장소로 알려진 곳인데 이 이름을 따서 후에 붙인 것이다. 원래의 파릉교는 1967년 홍수에 소실되었고 1993년 지금과 같이 규모가 큰 아치형 다리를 만들고 파릉교공원으로 조성해 놓았다.
깔끔하게 단장한 정문‘파릉교문박원’이 라고 쓴 패방을 지나면(사진 1) 이별 장면을 그린 대형 석판화가 보인다(사진 2). 유비를 찾아 떠나는 관우의 모습이 중앙에 있고 좌우에 두 형수를 모신 관우 일행과 조조와 그냥 놓아 보내는 것이 아쉬운 휘하 장수들의 모습이 보인다. 아래 있는 글을 보면 최근에 만들어서 관우는 이미 황제인 관제關帝의 지위까지 올라 있다.
다리를 향해 가다보면 대문이 나오고 그 위에‘활活’자를 써놓은 것이 보인다(사진 3). 이것은 관우와는 관련이 없고 조조와 양수 사이의 일화를 재현해 놓은 것이다. 양수는 유비와 조조가 한중에서 싸울 때 소위‘계륵’사건으로 참수를 당했는데 그 때 양수가 너무 똑똑한 체해서 조조의 미움을 샀다는 이야기와 관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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