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단지와 헤이리
자유로, 새로운 개념의 자족커뮤니티, 유명한 건축가들이 만든 멋진 건축물이 있는 곳, 이것이 이 두곳을 유사한 곳으로 떠오르게 하는 이미지일 것이다. 필자도 이러한 연상을 하면서도 헤이리마을에는 여러차례 가보았지만 출판단지는 이번이 처음이다. 무엇이 출판단지를 찾지 않게 했을까? 실제로 출판단지는 헤이리를 가기 전에 있으며 자유로에서도 보이는 곳으로 찾고자 한다면 찾기가 쉬운 곳이다. 그러나 출판단지는 헤이리가 지닌 것을 지니지 못한 것이 있다. 헤이리는 마을인데 반해 출판단지는 말 그대로 단지이다. 단지는 마을에 비해 하드웨어에 치중한 느낌이듯이 출판단지 또한 마을로서의 커뮤니티가 부재하거나 부각되지 못하기 때문이며, 그것은 바로 이 곳을 찾는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는 다양한 채널이 열려있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 물론 헤이리도 당초 마을로서의 자족성을 살리려는 의도와는 달리 활성화에 오랜 시일이 걸리고 있지만 출판단지는 활성화의 의미가 필요치 않은 출판만을 위한 자족성으로 만족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버릴수 없다.
4개의 길
원고청탁을 받고 맨처음 한일은 컴퓨터에서 출판단지에 대한 정보를 찾는 일이었다. 비교적 출판단지에 대한 소개가 잘 되어있고 마침 단지에 대한 지도도 찾을 수 있어 이를 바탕으로 답사계획을 세웠다. 답사순서로는 먼저 단지의 중심대로를 따라 출판단지의 첫인상을 살펴보고 두 개의 이면도로를 따라 나타나는 단지의 실질적 모습을 보고자 했으며 이미 서울대 황기원교수께서 기본계획에서 중점을 두었던 갈대수로를 둘러보는 것으로 정한후 가벼운 설레임으로 자유로를 향했다. 출판단지를 들어서면 처음 대하는 곳이 6차선대로이다. 비교적 한산한 교통량과는 대조적으로 유난히 넓어보이는 대로를 따라 갈대수로가 흐르고 있으며 이들을 따라 제각기 다른 멋진 건축물들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건축물의 매스(mass) 또한 대로의 크기만큼이나 커다랗게 되어있어 처음 헤이리마을에서 느꼈던 것처럼 유난히 두드러지는 건축물로 인한 새로움과 이질감을 받게 하고 있다.
이에 비해 실질적으로 많은 활동들이 이루어지는 두 개의 이면도로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대부분의 필지마다 주차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유난히 많은 차량들이 도로를 점유하고 있다. 이는 출판단지의 근무자들이 대부분 차량을 이용해야하며 업무를 위해서도 차량이 필수적인 현실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자유로에 면한 이면도로에는 일정한 보도가 없이 보차혼용의 도로로 되어있으며 각각의 블록에서 만들어진 외부공간들로 변화감있는 가로를 형성하고 있지만 녹시율이 낮아 황량한 경관을 보이는데 반해, 갈대수로변 이면도로에는 분명한 보도가 조성되어 있으며 가로수도 일정하게 자리잡고 있어 건축물의 노출이 비교적 적고 녹색에 의한 안정감이 들지만 획일적인 가로의 모습은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갈대수로
출판단지에서 가장 특별한 것이라면 단지 중심을 가로지르는 갈대수로일 것이다. 차도레벨에서는 그 실체를 알 수 없지만 보도나 교량에서 내려다 본 갈대숲은 생태적으로 안정된 감탄의 완성체이다. 출판단지가 자연과 공생하는 모범적 단지로서의 면모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실체이며, 이것은 헤이리마을이 지니지 못한 결정체이다. 단지 곳곳에서 갈대수로를 사랑하고 아끼려는 모습들이 곳곳에서 볼 수 있듯이 이는 반드시 건강한 녹색길로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조경가로서의 고민도 생긴다. 갈대수로는 사람들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게 단단히 뭉쳐있어 조성당시부터 갈대수로를 지키려는 강한 의지가 생생하게 보이는 것 같다. 일반적으로 생태적으로 안정된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간섭을 최소화하는 것이 상례일 것이다. 우리의 의식속에는 이용하면 훼손되고 가만히 두면 자연으로 회복하는 것이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있듯이, 갈대수로를 가급적 사람에게서 멀리하게끔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갈대수로는 튼실하게 잘 자라고 있다. 다리에서 곰곰이 생각을 해본다. 저 갈대수로를 따라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자리잡고 앙측호안을 따라 거니는 사람들의 모습속에서 건강한 갈대수로의 존재가 실현불가능한 것이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잘 짜여진 단지나 뛰어난 건축물은 어디에서나 조성할 수 있지만 파주 문발에 위치한 출판단지만이 지닌 장소성과 독자성에 부합한 단지와 건축물은 무엇인지, 갈대수로가 공존의 상징인지 아니면 경관적으로만 아름다운 제외지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황용득
기술사사무소 동인조경마당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