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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방, 바인플랜
  • 환경과조경 2009년 6월
Yoon, Mi Bang․VINEPLAN

공간의 ‘멋’을 좌우하는 미묘한 차이, 디테일

윤미방 소장은 인터뷰 내내 “디테일”과 “멋” 그리고 “배우고 있다”는 말을 반복적으로 되뇌었다. “조감의 시선에서 보기 좋은 공간 보다, 실제 이용자의 눈높이에서 좋은 공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디테일”이 살아야 “멋”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가능하다고도 했다. 그런가하면 삼성아파트를 소개하기 위해 찾아갔을 때는 이런 말을 들려주기도 했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 장소에 어울리는 그럴듯한 이름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또한 이제는 희미해져버린 이곳의 장소성을 굳이 캐내고 억지로 만들어내는 작업이 아니라, 오늘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유용한 이용행태를 유발시킬 수 있는 이용자를 위한 공간을 꾸미는 것이 아닌가?”

남기준_누구나 다 디테일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지만, 유난히 디테일에 대한 강조, 뭐랄까 고집스러움이랄까, 애착 같은 것이 느껴진다. 디테일을 그렇게 특별히 강조하는 이유는?

윤미방_사람들은 200:1이나 500:1의 마스터플랜 속을 걷는 것이 아니다. 너무도 당연하게 1:1의 실제 이용 공간이 중요하다. 조감도상에서는 볼게 없더라도 직접 걸으면서 접하게 되는 눈높이에서의 디테일이 결국 공간감을 좌우한다. 마스터플랜에서 예쁘게 보이는 건, 그림으로 남을 뿐이다. 건물을 예로 들면, 사람들이 실제로 이용하는 책상이나 소파도 멋있고 보기에 좋고 이용하기에 편해야 좋은 공간이지, 건물 외면만 보기 좋다고 멋있는 공간이 되는 건 아니다.

핫셀에서 일할 때 놀란 점 중의 하나는 시니어 디자이너들이 기본계획을 발전시켜나가는 단계에서 소소한 펜스 디자인의 디테일까지 직접 챙기고 중요시 여긴다는 점이었다. 디테일의 정말 미묘한 차이가 공간의 질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디테일이 그야말로 디테일하게 설계된 공간은, 그곳이 비록 좁은 곳일지라도 그 공간만의 멋이 살아나게 마련이다. 이용하는 사람들도 그 작은 차이를 분명 느끼고들 있다.

남기준_“공간의 멋”을 이야기했는데, 디자인을 하면서 기본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바로 그것인가? 또 멋이라는 건 사람마다 취향에 따라 꽤 차이가 있을 것 같다. 

윤미방_기본적으로 그 공간이 요구하는 기능도 충족시켜야 하고, 주변과 어울리는 환경도 만들어야 하겠지만, 다들 멋있는 공간을 추구하지 않나 싶다. 표현은 조금씩 다를 수 있겠지만 말이다. 다만 나이가 들면서 ‘멋’의 내용과 뉘앙스가 조금 달라졌다. 전에는 시설물도 기성품을 사용하지 않고 모두 직접 디자인했다. 서초 가든 스위트(이하 가든 스위트)가 대표적인데, 가벽, 수로, 포장 등에 사용된 석재를 투톤 컬러를 기본으로 통일시키고, 벤치도 같은 석재로 직접 디자인해서 수작업으로 시공했다. 또 자연스러운 녹지공간을 만들고자 애초 계획보다 식재지역의 토심을 전체적으로 1m 정도 높여야 하는 상황이 발생해서, 그 레벨차를 이용자들이 지극히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도록 단의 높이가 낮은 계단을 조성하고 챌판에 해당되는 부분을 둥글게 가공한 후 바닥에서 약간 띄워 마치 계단이 아니라 여러 겹의 석재가 겹쳐져있는 것처럼 보이게 디자인하기도 했다. 인공적인 느낌의 수로가 있는 공간과 자연적인 느낌의 느티나무길(산책로)이 만나는 곳에는 일부러 폭이 좁은 수로를 가로질러 놓여있는 석재 브릿지를 몇 미터 정도 느티나무길로 연장시켜서 이질적인 공간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했다. 석재 브릿지는 몇 미터 정도 느티나무길로 연장되다가 끊기도록 하고, 브릿지 바로 옆에 나란히 일직선으로 산책로 동선을 만들었는데, 반대로 산책로는 몇 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시작되도록 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 몇 미터가 바로 공간의 멋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런 식으로 예전에는 시설물의 형태나 어떤 패턴, 그러니까 정형적이고 모던한 멋을 많이 추구했었는데, 요즘에는 자연스러운 멋이 좋아 보인다. 지난 겨울인가 한적한 교외로 여행을 가서 논두렁을 걷게 되었는데, 다른 곳은 전날 내린 눈이 다 녹아버렸는데 논두렁 바로 옆에는 눈이 녹지 않고 논두렁을 따라 길게 남아 있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근사해 보일 수가 없는거다. 자연의 섭리와 질서를 어느 정도 예측하고, 자연의 변화에 따라 새롭게 느낄 수 있는 디테일을 한번 추구해보고 싶다. 보슬비가 내릴 때, 폭우가 쏟아질 때, 함박눈이 내릴 때, 바람이 불 때, 각기 다른 느낌을 공간에서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멋있겠는가.

참, 얼마전에 근사한 디테일을 하나 보았는데, 빗물이 고였다가 떨어져 내리는 곳에 단지 호박돌 몇 개만 놓았을 뿐인데, 비가 내릴 때 그 호박돌 위로 빗물이 튀기면서 흘러내리는 광경이 너무 아름다웠다. 그보다 더 멋있는 수경시설이 어디 있겠나, 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남기준_지금까지 들려준 디테일 혹은 공간의 멋과 관련하여 좋아하는 작품이나 조경가가 있을 것 같다.

윤미방_캐서린 구스타프슨을 좋아한다. 그가 디자인한 공간은 한마디로 멋이 살아있고, 특히 디테일이 충만하다. 형태가 단순해 보이는 작품도 자세히 눈여겨 보면 디테일은 절대 단순하지 않다. 영국의 다이애나 기념 분수 같은 경우, 직접 가서 보기 전에 국제설계공모 당선작을 얼핏 보고는 왜 이렇게 단조로운 작품을 뽑았을까 의아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그곳에 가보니 경외감이 들 정도였다. 타원형 석조수반에는 너무나 다양한 디테일이 담겨 있어서, 어떤 지점에서는 숲 속의 계곡에 와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고, 어떤 곳은 이곳이 연못인가 싶었다. 물 흐르는 속도도 틀리고, 폭도 다르고, 고여 있는 정도도 상이하고, 석조 수반의 무늬도 같지 않다. Arup 엔지니어들과의 성공적인 협력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진흙 모형 제작과 고무 주형, 디지털 스캔, 3D 입체 모형 등 다양한 방식으로 디테일을 치밀하게 설계했기에 그런 공간이 탄생하지 않았나 싶다. 이렇게 단순한 형태에 그렇게 다양한 느낌을 담아낼 수 있는 건, 결국 디테일의 힘이 아닌가 싶다. 하루 종일 거기 머물러도 전혀 지루하지 않은, 보는 공간이 아니라, 이용하는 공간이란 생각이 들었고, 물을 어떻게 이렇게 흘릴 수 있을까 싶어서 존경스러웠다. 그 작품 이외에도 다른 작품들도 좋아하는데, 작품마다 변화가 있으면서도 일관된 조형미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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