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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 르 비꽁트
  • 환경과조경 2005년 5월
 비운의 역사, 보 르 비꽁트 파리 근교 멜룽 지방에 베르사이유 궁전의 모델이 된 보 르 비꽁트 성이 있다. 이 성의 주인은 니콜라 푸케였다. 그는 26세에 참사원 의원이 되었고, 35세의 젊은 나이에 재무장관이 되어 세인들의 부러움을 받은 존재였다. 부친에게 물려받은 재산과 권력을 이용해 축척한 부를 바탕으로 젊은 화가, 시인 등의 예술가들을 그의 주변에 불려 모았다.
 푸케는 1657년부터 최고의 디자이너와 예술가 팀으로 아름다운 정원을 가진 성을 짓는다. 그 때까지는 전혀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던 세 명의 전문가들은 조경사 르 노트르, 건축가 르 보, 화가 르 브룅이었다. 1661년 여름, 보 르 꽁트의 골격 대부분이 완성되었다. 완성될 때 쯤 푸케는 국왕인 루이 14세가 방문하겠다는 전갈을 받는다. 총리 마자랭이 죽기 전에 다녀가고, 영국 왕비, 왕제와 왕제비가 다녀간 후 입이 마르도록 칭찬한 성과 정원에 왕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한 달 남은 기간 동안 푸케는 온갖 정성을 다해 마무리 인테리어 공사와 연회 준비에 힘을 쏟는다. 화려한 가구와 샹들리에, 최고품의 옷감을 파리에서부터 가져왔다. 집사였던 바텔은 전체 연회를 기획하고 준비했고, 최고의 음식 메뉴를 만들었다. 극작가 몰리에르는 ‘불쾌한 사람들’이라는 새로운 작품을 서둘러 썼고, 보샹이 안무를 맡고, 륄리가 음악을 맡아 준비했다. 지아코모 토렐리는 불꽃놀이 이벤트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1661년 8월 17일이 되었다. 루이 14세의 일행은 오후 3시경 퐁텐블로 성을 출발하여 저녁 6시경 보 르 비꽁트에 도착했다. 도착 후 왕의 일행은 정원을 산책하였다. 약 460만평 규모의 정원은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왕은 융단과 같은 잔디, 형형색색 꽃으로 장식된 화단, 조각상 그리고 분수로 가득 찬 정원을 거닐었고, 커다란 수로를 지나 천 개 이상의 분수가 있는 옥외극장에 올라 사람의 몸통만큼 굵은 물줄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보고 감탄했다.
 성으로 되돌아오자 루이 14세는 르 브룅이 그린 왕의 초상화를 선물로 받았다. 성의 내부는 금실로 짠 태피스트리와 촛대들로 가득 차 있었고, 아름다운 벽화가 그려진 홀은 좌중을 압도하였다. 손님들은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금 식기와 은 접시, 베네치아 자수의 식탁보와 냅킨의 장식된 식탁에서 최상의 다섯 가지 요리를 맛보았다. 화려한 공간 속에서 감각적인 미각의 향연이 펼쳐졌다. 연회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식사 후 손님들은 몰리에르의 발레희곡을 보기 위해 정원의 숲으로 향했다.커튼이 젖혀지고 공연이 진행되면서 불꽃놀이가 정원의 동굴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고래모양의 배에서 불꽃이 뿜어져 나왔고 수백발의 불꽃이 성과 정원의 밤하늘을 수놓았다. 이곳에 초대되었던 손님들은 매혹적인 광경에 말을 잃었고, 연회가 끝난 후에도 한참동안 발길을 돌리지 못했다. 시인 라 퐁텐은 그날의밤의 감동을 이렇게 묘사했다. “보의 땅이란 땅은 모두 왕의 기쁨을 얻기 위해 다투었다. 음악, 물, 빛, 별마저도”
 그러나 이날 왕이 기쁨보다 노여움과 분노로 가득 찼다. 푸케의 몰락을 예상한 사람은 왕과 왕의 태후, 그리고 푸케를 질시하던 콜베르이었다. 새벽 두 시경 왕은 임신 중이 왕비를 혼자 두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그가 머물던 퐁텐블로 성으로 돌아간다는 출발신호를 보냈다. 돌아오는 길에서 젊은 왕(당시 23세)은 몹시도 치욕스럽고 불쾌해 했다. 그토록 아름다운 보 르 비꽁트와 비교해 그는 너무 가난했고, 어두침침한 고성에 사는 초라한 왕이라고 생각했다. 이전부터 푸케가 국가의 재정을 낭비한다고 말하던 콜베르의 말을 떠올렸다. 재무장관인 푸케가 공금이 유용했다는 것은 명약관하 하였다. 곧바로 푸케를 감옥에 넣고자 했으나, 태후의 만류가 있었다. 태후는 그래도 자기 집에 초대한 푸케를 바로 감옥에 넣을 수 없다고 왕을 설득했다. 그러나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다. 왕의 애첩이었던 라 발리에르는 자신과 왕의 관계를 모르는 푸케가 늘 추근거린다고 왕에게 일러바쳤다. 왕도 더 이상을 참을 수 없었다.
 1661년 9월 5일 푸케는 달타냥에게 체포되어 피네룔 요새에 수감되었고, 얼마 후 종신형이 선고되었다. 푸케는 세상에서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어놓고 이를 즐기지도 못한 채 어두운 감옥에서 1680년에 생을 마감한다. 그 자신은 보 르 비꽁트 때문에 비운의 주인공이 되었지만, 인류 역사에 남을 기념비적 정원을 선사하였다.


조 경 진 Zoh, Kyung Jin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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