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전사지(令傳寺趾)의 영천사(靈泉寺)
한동안 사지(寺趾)를 찾아다닌 적이 있었다. 사람들이 많지 않아 좋고, 집도 절도 없는 텅 빈 벌판에 서 있는 석탑이나 부도를 만나는 것이 또한 낭만적이지 않는가. 영전사지는 어떨까? 부도는 경복궁에 이미 옮겨와 있으니 그 절터에는 무엇이 남아 있을까? 이런저런 상상을 하면서 오랜만에 절터를 찾아 나서는 길을 떠나 보았다.
영전사지는 원주에 있다. 영전사지에는 영천사란 이름으로 새로 건립된 절이 있다. 영전사는 임진왜란 때 불타고 그 후 몇 백 년 동안 폐사가 되었다가, 1930년대인가 어느 유지가 자그맣게 새로 건립한 것이라 하는데, 지금은 그런대로 아담한 새 절이 들어서 있다. 영천사 대웅전은 바로 앞에 아담하게 솟은 작은 봉우리를 바라보며 서향으로 앉아있다. 약간 북서쪽의 살짝 열린 방향으로 원경이 들어온다.
대웅전 좌우로 요사(寮舍)와 유아원이 있고 마당 앞쪽으로 작은 연못과 잔디밭으로 조성된 녹지가 있다. 경내를 찬찬히 살펴보면 곳곳에 상당히 많은 정성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그렇다고 모두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역사물을 복원하는 경우, 건축은 그럭저럭 어떻게든 해 나가고 있다고 치더라도 그들이 관계하고 있던 경관을 다루는 데는 부족함이 많다. 어쩌면 문화재복원 내지 그 계통의 장인(匠人)들이 경관을 함께 살필 여유가 없었을 터이며, 총감독이나 건축주도 거기까지는 아직 무심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영천사에서도 그 점은 피해갈 수 없었다.
연못은 유아원의 원아들을 비롯하여 이 절의 신도들과 잠시 들렀을 손님들을 위한 휴식공간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애써 마련한 것이었겠지만, 기왕이면 이 사지에 원래 있었다던 영지의 기능을 할 수 있도록 고려하였다면, 옛 절의 명맥을 잇는 전통사찰의 계승으로도 이야기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건 그렇다 치고, 연못과 녹지가 조성된 바로 앞 쪽으로 대규모의 토공이 마무리되어 있는 큰 공간이 펼쳐지고 있다. 어떤 용도로 개발이 되려는 지는 잘 모르겠으나, 이 사찰의 다른 부속건축물의 신축예정지이든, 대규모의 주차장이든, 너무 무심하게 (별 생각 없이) 다루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큰 길에서 완만하게 오르막이 된 길을 따라 300미터 정도 들어온 곳에 사찰이 있다. 따라서 사찰과 큰 도로와의 표고 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새로 토공 해 놓은 대지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표고 차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큰 길에서 바라보이는 토공 법면은 사면녹화처리의 방법으로 어떻게든 해 둘 수 있다고 보더라도, 사찰로 들어오는 경로에서 마주하게 될 이 법면은 가히 어마어마하다 해도 좋을 규모다. 대웅전 뒤 봉우리는 물론이고 좌우로 환포하고 있는 아담한 능선마저 모두 삼켜버린다. 경내의 연못 언저리에서 내다볼 때는 더욱 심각해진다. 최소한 여기에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지는 않고, 그냥 주차장이 들어선다 하더라도 이 새로 조성된 대지로 인하여 이 절이 자리 잡고 있던 입지적 여건에는 대단한 변모를 가져오게 되어있다.
정 기 호 Jung, Ki Ho · 성균관대학교 건축·조경 및 토목공학부 교수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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