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은 그 형상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 기원전 1500〜400년대에 건립되었다고 알려져 있는 영국 스톤헨지나 신라 혜공왕 10년(774년)에 완공된 석굴암은 여전히 우리들에게 그 신비스러운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조금씩 풍화되어 변화하기 때문에, 영원불멸한 것도 아니다. 어쩌면 영원하지 않으나, 영겁의 세월을 느낄 수 있는 데에 돌의 매력이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번에 소개하는 통일신라 삼층석탑, 고려 삼층석탑과 부도를 비롯한 20여점의 석물들은, 지난 30여년 동안 돌의 매력에 푹 빠져 전국을 돌아다니며 석물을 수집한 한 개인 소장가의 콜렉션이다. 석물은 전통적인 조경공간은 물론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정원, 개인 정원 등에 첨경물로 많이 활용되고 있기에, 소장자에게 협조를 구해 대표적인 석물 20여점을 간략한 설명과 함께 지면으로 소개한다. 시대별 석물의 특징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고, 쉽게 지나치기 쉬운 석물의 매력을 새롭게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천년이 넘도록 조형미를 간직하고 있는 석물에서, 그 형태를 만들어내기 위해 고심했을 석공의 숨결을 느낀다는 소장자는, 보관 장소 등의 문제로 일부 석물은 자신보다 더 아껴줄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참고로, 석물에 대한 간략한 소개글은 석물 전문가인 소장자로부터 제공 받았음을 밝혀둔다.
통일신라 삼층석탑
상륜부를 제외한 높이가 약 2m 60cm에서 2m 80cm 정도의 소탑인데, 오래된 탑에 상륜부가 없는 것은 대부분 당연시된다. 이 탑의 하대석은 1m 13cm의 방형으로 정사각형이다. 1석으로 곱게 이루어져 있으며, 받침 부분은 역원호(逆圓弧)로 다듬어져 있다. 갑석(기단부 덮개돌)은 1m 16cm의 정사각형으로 1석으로 되어 있는데, 하대석보다 약간 크고 엷어서 시각적으로 안정감을 준다. 갑석은 제1탑신을 올리기 위한 받침대를 조성하고 있는데, 받침은 2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단은 원호형(圓弧形)이고 제2단은 방형이다. 이 탑신 받침은 당연히 갑석과 1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옥개석(屋蓋石)은 1, 2, 3층 모두 평박(平薄)하여 경쾌한 감을 준다. 낙수면(落水面)의 곡률(曲率)이 아름답고 전각(轉角)의 반전(反轉)이 역시 산뜻한 느낌을 더해준다. 추녀는 모든 신라탑이 그러하듯이 일직선으로 뻗어 의연함을 느끼게 한다. 추녀 밑에는 눈에 잘 뜨이지 않으나, 낙수홈이 마련되어 있다. 옥개 받침은 제1, 제2옥개는 4단으로 이루어져 있고, 제3옥개는 3단으로 되어있다. 통일신라 말기에 접어들면서 옥개 받침은 5단에서 4단으로, 그리고 3단으로 축소되는 경향이었고, 소탑인 경우에 제일 작은 제3옥개는 받침을 줄이는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 탑의 제3옥개에는 상륜부를 지탱했던 철간(鐵竿)이 박혀있던 구멍이 뚜렷하게 남아있다. 이 탑은 안타깝게도 기단부의 면석(面石), 속칭 병풍석 부분이 없어졌다. 이 부분은 후대에 만들어져 보완되었다. 그러나 이 탑의 조형양식이나 규모로 볼 때, 통일신라 말기의 탑이 분명하고 탑 전체의 조형감각이 황금율을 이루고 있어서 참하고 아름다운 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