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가을 학기부터 하버드 디자인대학원 조경학과에는 새로운 학과장이 임명되었다. GSD의 교수진도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저명한 디자이너도 아닌, 더군다나 건축 교육을 받았으며 건축가로서 실무 경험만을 쌓은 찰스 왈드하임의 조경학과 학과장 임명은 누군가는 혹시 기대는 했을 수 있으나 대부분 예상을 하지 못했던 결과였다. AA스쿨에서 모센 모스타파비를 디자인스쿨 전체 학장으로 위촉한데 이어, 조경 실무 경험이 전무한 젊은 이론가인 찰스 왈드하임을 조경학과 학과장으로 모시고 왔다는 사실은 지난 50여년간 전 세계의 건축 관련 학교들 위에 군림해 온 하버드 GSD에 본격적인 세대 교체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시사했다.
찰스 왈드하임은 임명과 함께 대대적인 개편을 단행했다. 기존의 교수진을 배제하고 동시에 아니타 베리즈베이타, 피에르 베랑저, 크리스 리드 세 명의 교수를 뽑았다. 유펜 조경학과의 가장 중요한 교수진 중 한 명이었던 아니타를 데리고 온 것은 큰 파장을 일으켰으며, 제대로 지어진 프로젝트가 몇 개 있지도 않은 크리스 리드, 그리고 역시 아직은 두드러진 학문적 업적이 없는 피에르 베랑저를 데리고 왔다는 것도 일종의 파격이었다. 여전히 어느 정도 제임스 코너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이들 교수진들의 기용은 당연히 무수히 많은 소문을 불러 일으켰다. 혹자는 GSD와 유펜 조경학과의 연대를 점쳤으며, 혹자는 이 개혁을 그동안 최고라고 자부하던 GSD의 오만함에 대한 유펜의 반격이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아직 어떠한 변화가 구체적으로 나타날지는 가시화가 되지는 않았으나 단순한 학교 이상의 학교인 GSD에 근본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GSD의 새로운 변화의 중심에 서있기 때문에 현재 찰스 왈드하임이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개인적으로는 GSD의 방향보다는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 때문에 찰스 왈드하임이라는 인물은 한 번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 대상이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을 지향하는 조경가들의 그룹이 있다기 보다는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은 찰스 왈드하임이라는 인물이 만들어낸 개념이다. 따라서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찰스 왈드하임이라는 인물을 거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 학자로서의 치열함이 엿보이는 그의 건축 관련 연구에 비해 선언문에 불과한 듯한 인상을 주는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 관련 저술들. 그리고 그가 건축에서 조경으로 관심을 바꾸면서 등장하는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의 배경. 미국의 도시를 말하면서 유럽의 사례를 인용하는 다소 모순적인 태도들. 찰스 왈드하임의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은 매혹적이기는 하나 결코 그 전체가 명확히 보이지 않는, 특정한 곳에 닻을 내리지 않고 부유하는 수수께끼였다. 따라서 <환경과조경>과의 논의를 거쳐 찰스 왈드하임과의 인터뷰를 기획했고, 두 달에 걸친 연락 끝에 힘들게 찰스 왈드하임을 인터뷰할 수가 있었다. 이번 인터뷰는 크게 두 가지 의도로 기획되었다. 세계 조경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학교인 하버드 GSD의 새로운 방향을 예상하는 것이 하나이며, 여전히 국내외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직접 이론의 주창자에게서 듣고자 함이 그 둘째였다.
대화는 문자와는 다른 종류의 정보를 선사한다. 예상되는 비판에 대비하고 사고의 허점을 감추기 위해 방어적인 자세로 쓰여지는 논문이나 저술에 비해서 대화는 자유롭다. 문자에 비해 사고의 치열함이나 논리적인 견고성은 부족하나 우리는 대화를 통해서 그 어느 저술에서도 알 수 없었던 생각의 근원을 보기도 한다. 또 대화를 통해서 드러나는 생각의 단편들은 때론 극히 개인적인 사례에서 출발을 할 수도 있으며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전개되기도 한다. 한 시간이 채 못되는 제한된 시간에서 행해진 이 대화는 일부 유학파들의 허세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졌던 하버드 GSD라는 학교의 본질, 그리고 지금까지 저술들이나 작품에서는 보지 못했던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의 이면이나 핵심을 부분적으로나마 파악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GSD 조경학과의 새로운 방향
김영민 _ 우선 인터뷰에 응해주신 것에 감사 드립니다. 그리고 새로운 학과장이 되신 것을 축하 드립니다.
왈드하임 _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김영민 _ 이 인터뷰는 한국의 조경 전문지인 <환경과조경>의 요청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환경과조경>이 GSD의 학과장을 인터뷰하는 것은 처음이 아니지만, 이번 경우는 약간 특별한데요. 많은 사람들이 교수님의 학과장 임명과 함께 GSD 조경학과의 근본적인 변화, 혹은 적어도 상당한 변화가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GSD의 새로운 방향이 이번 인터뷰의 중요한 질문사항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교수님께서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과 관련된 교수님의 명성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이고 계신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에서는 조경뿐 아니라 건축이나 도시 분야에서도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번 인터뷰에서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에 관련된 질문 역시 드리고 싶습니다.
이제 첫 질문은 GSD 조경학과의 새로운 방향으로 시작하고 싶습니다. 다른 학과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적어도 GSD 조경학과에서는 학과장이 과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대 최고의 조경가들이 교수진으로 포진하고 있던 조지 하그리브스 재임 당시 GSD는 참신하면서 동시에 현실적인 디자인에 상당한 초점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지난 학과장인 니얼 커크우드는 기술적인 측면과 생태적인 측면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고요. 이제 사람들은 학과의 새로운 방향이 어떠할지, 혹은 학과가 이전의 방향을 얼마나 유지할지 궁금해 할 것 같습니다. 이 질문에 대답해주실 수 있을까요?
왈드하임 _ 다시 한번 방문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 시점에서 학과장으로서의 책임을 맡게 된 것을 큰 행운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GSD 조경학과는 이 분야에서 가장 유서 깊고 차별화된 프로그램을 갖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저희 학과는 많은 강점을 지녀왔습니다. 학교 시설, 훌륭한 교수진과 학생들, 열성적인 직원들, 그리고 전 세계에 비교할 수 없는 동문들이 그러한 강점들입니다. 따라서 조경 실무에 초점을 맞추어온 역사적 전통과 세계 최고의 조경가들을 교수진으로 모시는 일은 계속해서 우리의 우선 과제가 될 것입니다. 이와 함께 저희 과의 전통적인 전문 분야인 오염지 복원과 경관 생태학, 이 두 분야는 뛰어난 강점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강점들을 유지할 것입니다. 저는 학과장으로서의 임무를 보다 넓게 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프레스톤 스캇(건축과 학과장)과 학장인 모센 모스타파비는 각자의 목표를 대학교 전체와 저희 디자인대학원에 따라 규정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러한 움직임이 우리가 역사적 전통을 반영하는 한편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몇 가지 전략적인 조정이 필요할 때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조정은 무에서 시작되지는 않는 법입니다. 드류 파우스트(하버드대학교 총장)는 하버드 대학이 각 교수진들의 집단이 아니라 대학교처럼 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디자인대학원은 각 학과로서 역할을 하는 것 이상으로 하나의 학교로서 역할을 하도록 그 목표를 규정해왔습니다. 저는 이러한 목표가 고도로 전문화되고, 생태적이며 기술적인 문제들을 다루는 직제와 디자인으로서의 조경 분야의 세계적인 위상을 갖고 있는 GSD와 조경학과에 대한 인식을 더 굳건히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제 학과장 임명은 단지 한 가지 변화일 뿐입니다. 우리는 아니타 베리즈베이타, 피에르 베랑저, 크리스 리드 외 여러 명을 교수진으로 초빙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것은 학과의 전통을 반영하고 숙고할 기회며, 우리는 더 나아갈 것입니다. 저는 비록 학과가 전통적으로 역사와 이론에서 강점을 보여왔으며 현재 세계적으로 저명한 역사가들과 이론가들이 학과 교수진으로 있지만 저희의 조경 이론과 역사와 관련된 전반적인 수업 구성을 본다면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으며, 앞으로 더 많은 것을 이루리라고 기대하셔도 좋을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마찬가지로 조경 표현 방법론에 관련된 수업을 본다면 우리가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어떻게 조경을 그려내며 더 나아가 전반적으로 조경을 어떻게 표현하려 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 분야는 이미 우리가 많은 것을 이루었고 현재 뛰어난 인재들을 갖고 있는 분야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분야가 우리가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고 더 나아가야 하는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저희는 전통적으로 영역적 생태학, 즉 과학의 하부 분야로서의 생태학에 많은 초점을 맞추어왔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리처드 포먼(경관 생태학자)과 다른 세계적으로 저명한 전문가들을 교수진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생태학적 관심을 유지하면서 저는 앞으로 몇 년 안에 특정한 주제나 디자인 스튜디오가 아니라 학과가 제공하는 전반적인 프로그램에서 흥미로운 생태학적 주제를 보게 되리라 기대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이미 일어나고 있기는 합니다만, 저는 생태학이 우리가 생각하고 행하는 모든 것들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범위까지 이 주제를 끌고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앞으로 더욱 많은 수업과 관심 사항을 공유하면서 각 프로그램들과 학과 사이에 더욱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될 것이며, 각 프로그램들을 통틀어 생태학적 관심에 초점을 맞출 것이며, 디지털 미디어에 더 많은 초점을 맞추며, 역사와 이론 분야에도 역시 많은 관심을 기울일 것입니다.
김영민 _ 다른 학과와의 연계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교수님께서는 어바니즘 혹은 도시적 맥락과 관련하여 경관의 개념을 재구축해왔습니다. 조경학과는 앞으로 건축학과, 그리고 도시계획과와 어떠한 관계 를 맺게 될까요?
왈드하임 _ 늘 그래왔듯이 GSD 내에서 우리는 한편으로 하나의 독립된 학교로서 존재해왔고 어떤 때에는 GSD의 한 부분으로 역할도 해왔습니다. 예를 들어 GSD는 최근 여러 학과와 연계된 수업을 개설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지속가능성에 대한 과목이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지속가능성에 대한 주제와 우리가 지금까지 개설한 과목들을 보시면 우리가 경관 생태학, 태양열 건축 환경분야, 그리고 다른 지속가능성과 관련된 전분야의 세계적인 전문가들을 교수진으로 모시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전문가들은 학과라는 틀 안에서 수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우리 학생들이 이러한 지식을 배우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때문에 한편으로 이는 구조적인 질문이 될 것이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학생들이 다양한 범위의 지식을 배울 수 있도록 수업이나 일정을 조정하는 것과 같은 단순한 일이기도 합니다. 학교는 학장의 리더십에 따라 최초로 여러 개의 여러 학과를 넘나드는 수업을 개설하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지속가능성이며, 하나는 디지털 미디어이고, 하나는 도시와 관련된 수업들입니다. 지속가능성에 대한 수업은 이번 학기에 시작되었고 이제 매우 특별한 과목이 되었습니다. 그 수업은 이제 건축학과 1학년과 조경학과 1학년생들의 필수전공 과목입니다. 이는 지금의 학과 구조나 전통, 미래를 바꾸지 않으면서 학교 재원을 기반으로 중요한 이슈들을 제시하는 과목들을 만들어가는 간단한 예가 될 것입니다. 저는 우리가 이 분야에 대한 학생들의 많은 관심에 대해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아마도 이와 비슷하게 하버드 대학교 환경센터가 연구자들을 위한 특별한 자원이며 매년 대학교 전체에 환경 관련 수업을 제공하는 포괄적인 카탈로그를 출판하는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이러한 일들이 우리 조경학과 학생들이 통합 교과목을 들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물론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는 조경학의 전문적인 지식을 탐구하고 유지해야 하는 한편 그 핵심인 지식들을 증진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제가 볼 때 이 두가지 목표는 분리된 것이 아닙니다. 저는 우리가 두 가지 일을 함께 진행해야 할 필요가 있으며, 이는 현재 지도적인 디자인 학교들의 현위치를 말해줍니다. 저희는 조경의 미래를 키워온 학교의 명성을 유지해야하며 유지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