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남한산성이 수도권 제일의 역사문화 관광지로 부각되면서 이곳을 찾는 사람의 수가 늘고 있으며 학술적 관심과 연구 또한 확대되고 있다. 남한산성의 역사는 백제 초기 도읍지와 관련되어 있다는 점으로 미루어 삼국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대
규모 취락이 형성된 것은 조선조 인조 5년에 광주부의 읍치를 산성안으로 옮기고 산성거민을 확보할 목적으로 광주 관내의 백성은 물론 타 읍의 거주민도 모민입거(募民入居)한 데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마을의 규모면에 있어서는 이읍(移邑) 초기에는 대략 300여호 정도였으나 점차 그 수가 늘어나『광주부읍지』(1842~43)에 나타난 산성마을의 호구수를 보면 1,088호에 인구는 4,047명(남:2,100명 여:1,947명)을 보이고 있다. 이는 당시의 우리나라 생활양식을 고려해 볼 때 남한산성이 상당한 도시적 면모를 갖추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마을의 구조나 모습은 조선총독부에서 제작한 유리원판사진이나 일정초기에 제작된 지형도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 그 성세가 20세기초 까지만해도 그대로 유지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남한산성을 찾았던 많은 사람들은 산성이 갖는 고즈넉한 옛 멋과 역사의 현장으로서의 남한산성, 그리고 전통적 산성마을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대형화되고 변형된 건축물에 먹거리 집들로 가득할 뿐만 아니라 역사 유적들과 조화되지 않은 현재의 마을 모습에서 실망을 감추지 못하곤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산성마을을 복원하기 위한 몇가지 논의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 키워드 _ 남한산성, 경관, 공원, 역사문화
※ 페이지 _ 12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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