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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스케이프] 와일드
황야에서 길을 묻다
  • 환경과조경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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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시작되고 5분 만에 나는 후회했다. 그녀가 첫 발을 내디디며 내뱉은 첫 대사처럼. “내가 미쳤지. 내가 미쳤어.” ‘와일드Wild’(2014, 한국에서는 2015년 1월 개봉)는 스물여섯살 먹은 여자 혼자서 자기 몸무게보다 더 무거운 배낭을 메고 지옥의 트래킹 코스라불리는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acific Crest Trail(이하 PCT)을 완주한 실화를 그린 영화다. PCT는 미국 서부 태평양 연안의 긴 등산로로 남쪽의 멕시코와 접한 캘리포니아 주에서 북쪽의 캐나다와 접한 워싱턴 주까지 이어지는 장장 4,285km의 코스다. 사막, 눈덮인 고산 지대, 광활한 평원과 활화산 지대까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자연 환경을 거쳐야 완주할 수 있다. 실재 인물인 셰릴 스트레이드Cheryl Strayed는 평균 150일 정도 걸리는 코스를 94일 만에 완주했다.

해피엔딩을 알고도 영화를 보는 이유는 결과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역경을 딛고 결국 목표를 성취해내는 주인공을 보며 카타르시스를 맛보거나, 인간의 손이 미치지 않은 대자연의 멋진 경관을 관찰자 시점에서 감상하게 될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영화는 이러한 예상을 빗나간다. 개인적으로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후회가 밀려오더니 영화를 보는 내내 답답하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동행이 있었다면 소주라도 한잔하면서 가슴속 돌덩이를 부숴야 할 것 같았다. 응어리를 품은 채 며칠이 지났다.

카타르시스는 대체로 관객이 주인공의 결핍에 동의하거나 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할 때 충족된다. 장 마크 발레Jean Marc Vallee 감독은 주인공이 겪은 과거를 시간 순서로 설명하지 않고 현재의 여정 중간에 행복했던 기억, 지우고 싶은 순간을 파편적으로 교차시킨다. 다 자란 성인 여자가 어린 시절의 기억과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스스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상황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왜 그토록 스스로를 바닥까지 내몰았으며 무엇이 그녀를 지옥의 트래킹 코스로 오게 했을까. 평균 150일 넘게 걸리는 코스를 94일에 완주할 때 겪을 법한 육체적 한계에 대한 묘사는 그리생생하지 않다. 발톱이 빠져 피투성이가 된 발을 샌들에 의지한 채 다시 걸을 뿐이다.

그녀의 어깨와 등에 난 상처만으로는 배낭의 무게감을 느끼기 어렵다. 오히려 온전히 홀로인 그녀의 외로움과 그녀 내면의 상처가 그녀가 짊어진 짐보다 훨씬 무거워 보인다. 물리적인 환경을 어떻게 극복하는지 보여주기보다는 내면의 상처를 끊임없이 노출시킨다. 관객은 그녀의 쉽지 않은 여정에 꼼짝없이 동참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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