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의 지원
김정윤(이하 김): 양화한강공원 프로젝트를 마치고 난후, 오하이오 주립 대학교에서 좋은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글림처 특훈 교수Glimcher Distinguished Professor로 방문해 달라는 내용이었죠?
박윤진(이하 박): 포트폴리오를 제출한 후 파이널 리스트까지 올라갔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초청받고 보니 우리 같이 젊은, 그것도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한국 작가에게 기회를 주었다는 것에 무척 감사했습니다. 그 전 초청자들은 피터 워커Peter Walker, 켄 스미스Ken Smith, 마이클 반 발켄버그Michael Van Valkenburgh 등 미국에 주요한 업적을 남긴 랜드스케이프 아키텍트landscape architect들이었습니다.
김: 심지어 우리 다음해에는 아드리안Adriaan Geuze이 초청되었죠?
박: 그렇습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아드리안의 후학인데, 후학이 선학보다 먼저 초청받은 경우네요.
김: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오하이오 대학교의 결정에는 가능성이 보이는 젊은 작가들을 발굴하고 지원하겠다는 의도가 담겨있었다고 합니다. 스토스Stoss의 크리스 리드Chris Reed도 우리의 경우와 비슷한 의도에서 선정되었다고 했지요. 아무튼, 친환경 재생 에너지에 관한 스튜디오를 진행했고, 우리의 강연에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모였지요. 대강당이 거의 꽉 찼고, 반응도 상당히 좋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특히 양화 프로젝트에 관한 질문이 많았고, 당시 건축학과장도 깊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나무를 뽑는 아주 나쁜 랜드스케이프 아키텍트What a bad landscape architect!라고 말입니다. (하하)
박: 힘든 프로젝트를 마치고, 그것의 과정과 결과를 나누는 자리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격려해 주었고, 이 분야에 기여했다는 자부심이 생기는 순간이었습니다.
김: 또한 어너레리움honorarium(상금)도 그 당시 우리 사무실 수익보다 좋았지요?
박: 그렇습니다. 다음해인 2012년에는 호주 멜버른 대학교의 초청을 받아 전시와 특강, 워크숍을 진행했죠. 우리가 싱가포르에서 윌리엄 림William Lim과 출판한 『강남 대체 자연Gangnam Alternative Nature』이 그 계기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서울의 정체성을 한옥이나 과거의 패브릭이 남아있는 강북에서 찾고자 했던 것이 일반적인 연구 동향이었던 반면, 우리는 그것을 강남에서 찾은 것이죠.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2012~2013년에 유행했으니까, 그 전에 강남을 세계에 알린 셈이네요. 물론, 아주 다른 방식으로 말이죠. 사실 저와 김대표 모두 어린 시절을 강남에서 보냈으니, 매우 자연스러운 결과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아무튼, 멜버른대학교로부터 가족 동반 비즈니스석 티켓, 최고의 숙소와 시급 그리고 귀빈 만찬까지, 싸이 급에는 못 미쳤겠지만, 디자이너로서는 최고의 예우를 받았습니다.
김: 멜버른 대학교의 젊은 교수들이 학장의 요구에 따라 전도유망한 아키텍트를 찾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포착되었다고 했지요? 일면식도 없던 초청 담당 교수와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니, 왕슈王澍(당시에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중국의 건축가)도 몇 년 전에 같은 프로그램으로 초청했다며, “너희들도 프리츠커상을 받을 것”이라고 격려를 해주었지요.
박: 그리고 당시 강연도 매우 성공적이었죠? 청중은 400명 이상 왔었고, 청중과의 호흡도 매우 좋았습니다. 호주의 한 설계사무소 대표가 “우리 사무실은 규모가 작아 양화한강공원같은 대규모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없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그 설계사무소는 우리의 3배 규모였습니다. 무척 놀라더군요. (하하) 그리고 당시 강연에서 만났던 건축과의 한국 학생들도 우리를 매우 자랑스러워했어요.
김; 네. 바쁜 일정으로 인해 밥 한 끼 사주지도 못했네요. 아무튼, 이 시점에 우리가 수행했던 프로젝트가 상암동에 위치한 SBS 프리즘 타워입니다. 미디어를 다루는 방송국의 속성상 브랜드와 아이덴티티가 중요하게 부각되었습니다. 클라이언트는 미디어 아트와 인테리어 그리고 외부 공간을 다루는 협업 팀 세 곳을 초청하여 지명설계공모를 진행했고, 결국 우리가 당선되었지요.
수퍼 클라이언트
박: 클라이언트의 의도가 흥미로웠어요. 상암동 미디어시티에 위치한 주변 다른 방송국 건물과 비교해 볼 때 건물의 형태, 기능 그리고 외장 등은 최대한 단순하게 설계하되, 외부 공간과 인테리어를 통해 방송국의 아이덴티티를 찾고자 했으니까요. 조경 면적이 200평 정도밖에 되지 않는 정말 작은 공간이기 때문에 보통 관행적으로 하자면 설비나 토목에 끼워 넣어서 그저 나무 몇 그루 심고 마무리했을 만한 땅이잖아요. 우리에겐 이런 작은 공간을 기회의 땅으로 만들어 보고자 생각했던 클라이언트―수퍼 클라이언트(Super Client)―를 만난것 자체가 좋은 시작이었습니다.
김: 특히, 우리의 아이디어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공감대가 형성되었습니다.
박:설계공모 때 우리가 만들었던 초기 아이디어는 무엇이었죠?
김: 우리는 디자인 초기에 먼저 SBS의 목동 본사 건물과 그 주변을 리서치했어요. 민간 기업의 소유이지만 공공재라 할 수 있는 방송을 만들어내는 건물의 랜드스케이프는 방문자에게 확실한 아이덴티티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목동 본사는 방송국의 로고만 있었을 뿐 공간적으로는 SBS만의 아이덴티티를 충분히 보여주고 있지 못하다고 느꼈죠. 그래서 프레젠테이션 제목도 ‘조경을 통한 SBS이미지 메이킹’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방송국을 어떻게 하면 공간을 통해 기억하도록 할 수 있을까에 중점을 두어 콘셉트를 잡았습니다. 가장 중심이 되는 공간인 로비 바깥쪽 3m 폭의 길쭉한 땅을 ‘포디엄podium’이라 이름 붙이고 인접한 1층 로비와 연결되어 읽히도록 했죠. 그리고 정문과 후문부에 각각 특징적인 수경과 수직적 조경을 제안하여 미디어 아트와 반응하도록 했고요.
박윤진은 하버드 GSD를 졸업하고 Sasaki Associates, West 8 등에서 실무를 쌓고 치치 지진메모리얼 국제설계공모 당선을 계기로 김정윤과 함께 오피스박김을 설립하였다(2004). 미국 보스턴 건축대학교 등에 출강하였고 타이완 쉬이첸대학교(2007), 미국 하버드대학교(2008, 2010), 오하이오주립대학교(2011), 호주 멜버른대학교(2012) 등에서 교육, 전시, 강연을 위해 초청되었다. 김정윤은 서울대와 하버드 GSD 졸업 후 네덜란드 West 8 등지에서 실무를 쌓았다. 네덜란드 조경건축사이며 바허닝엔대학교에 출강하였다. 차세대디자인리더(산업자원부2007), 광교공원 디자인커미셔너(2008), 서울형공공건축가(2011)로 선정되었고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놀튼건축대학원이 선도적 조경가에게 수여해 온 글림처 특훈 교수(2011)로 임명되어 강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