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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탐닉
당신의 공원은 어디입니까?
  • 환경과조경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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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공원. 내려다보며 조망할 수 있는 곳에 올라 도시를 내려다 본 경험이 있다면, 왜 공원을 ‘녹색 여백’이라고 칭하는지 단박에 느낄 수 있다.

 

언젠가 혼자서 책을 한 권 쓴다면 ‘공원 탐닉’이란 제목으로 쓰리라 마음먹었다. 나름 구성도 짜보았고, 챕터 제목도 끼적여 놓았다. 오래된 폴더를 열어 작성한 날짜를 확인하니 2006년 7월 18일이다. 파일명은 ‘개인 단행본 집필 아이템’. 요즘은 잘 쓰지 않는 신명조 서체만큼이나 생소한 차례 구성안이 모니터에 펼쳐진다. ‘①물: 흐르고 비추는, ②빛: 낯보다 찬란한, ③풀: 흔들리며 유혹하는, ④돌: 단단하거나 무르거나, ⑤흙: 그 자체로 아름다운, ⑥점: 작지만 소중한, ⑦선: 나누고 연결하는, ⑧면: 여백을 넘어, ⑨생: 성장하며 진화하는’ 등 총 9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네이버 아이디로 ‘녹색 여백’을 쓰던 때인데, 그 아이디만큼이나 상당히 작위적이다. 아마 9장으로 구성한 건, 물, 빛, 풀, 돌처럼 한 글자로 된 근사한 단어를 더는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일 게다. 12장으로 구성된 256쪽 안팎의 책이 가장 부담 없고 읽기 편하다는 생각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으니까(이런 구성이면 한 챕터가 20쪽 내외여서 적절히 사진이 가미되면 한 호흡으로 읽기 좋다). 실제로 책을 펴낼 때까지 3개를 더 찾아내야 할 텐데….

‘물’은 일산호수공원을, ‘빛’은 노래하는 분수대를, ‘풀’은 하늘공원을, ‘돌’은 선유도공원을, ‘흙’은 올림픽공원을, ‘점’은 옥상공원을, ‘선’은 양재천을, ‘면’은 공원 전반을, ‘생’은 조경의 이모저모를 소재로 쓰려고 했다.


아마, 지금 쓴다면 경의선숲길과 광교호수공원, 양화한강공원, 서울숲, 서서울호수공원, 여의도한강공원을 어딘가에 포함시킬 테고, ‘흙’은 지형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나무와 풀을 품어내는 기반으로서의 소중함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까 싶다. 키워드 하나당 공원 하나씩을 매치시켰지만, 특정 공원을 중심으로 쓸 생각은 없었다. 몇 곳이 되었든 구체적인 사례를 바탕으로 내가 지극히 주관적으로 느낀 공원의 매력에 집중할 요량이 었다. 그러니까 ‘물’은 우리가 공원에서 만나는 흐르고, 떨어지고, 솟구치고, 반사하는 각양한 물을 주인공으로 쓰고, ‘돌’은 석재를 비롯해서 다양한 재료의 물성과 맛을 탐닉하는 방식이다. ‘풀’은 나무와 꽃도 포함한 공원의 식물을 이야기하는 챕터로 할애할 생각이었다. 잎 넓은 나무 다음으로 풀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라스 류에 대해선 딱히 할 말이 많지 않으니까. 부제는 ‘도시의 녹색 여백, 공원을 만나다’ 정도가 무난해 보였다. 이 ‘공원 탐닉’ 집필 프로젝트는 에피소드 몇 가지만 스케치 해놓고는 더 이상 진전시키지 않았다. 충분히 뜸을 들이면서 진행하려 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더 좋은 (?) 사례를 기다리자는, 좀 대책 없는 설계를 처음부터 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마감 독촉하는 에디터도 없는 책이 아닌가. 이번호 특집 ‘당신의 공원은 어디입니까’란 질문에 충실한 답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의 구상을 얼기설기 풀어 놓는다. ‘나의 공원’ 이야기는 지난 달 코다에서 충분히 했으니까(궁금하신 분은 『환경과조경』 2015년 9월호, p.143 참조).


미리 쓴 ‘책을 펴내며’ 중에서

여백餘白의 여는 남을 ‘여餘’다. 그러니까 쓰고 남은 흰부분이 여백인 셈이다. 뭐, 빈자리라고 할 수도 있다. 상황에 따라 잉여의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핵심은 ‘쓰고 남은’ 면이란 점이다. 그런데, 쓰다가 우연히 남은 것과 쓰면서 일부러 남긴 것과의 차이는 크다. 남은 여백에는 의도 따위가 담겨 있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여백은 더 채우지 못해 아쉬운 빈 곳이거나, 더 이상 쓸 필요가 없어 방기된 공간이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남겨진 여백은 이야기가 다르다. ‘여백의 미를 잘 살린 작품…’ 운운할 때 등장하는 여백은 보는 이에게 진한 여운을 남겨주기도 하고, 그곳이 여백이 아닌 다른 것들로 채워졌을 때보다 더 큰 완성도를 갖게 해준다. 이우환은 『여백의 예술』(이우환 저, 김춘미 역, 현대문학, 2002)에서 “예술 작품에 있어서의 여백이란, 자기와 타자와의 만남에 의해 열리는 앙양된 공간”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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