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작업소
최근 조경작업소 울은 어린이공원이나 근린공원 설계 이외에도 몇 가지 흥미로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그중 하나는 역사적 가치가 큰 공원 입구에 상징성이 강한 공간을 디자인하는 것이다. 몇 년 전 함께 일했던 실무자는 이 프로젝트의 중심을 스토리텔링으로 보았고, 조경작업소 울이 공간에 이야기를 담아내는 데 능하다고 판단해 의뢰했다고 한다. 다양한 주제의 연구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있다. 복잡하고 다양한 현상에 숨겨진 패턴과 원리를 발견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데 장점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주민과의 소통을 통해 상호 이해를 도모하고, 이를 공간 설계에 반영하는 것이 중요한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있다. 야외 공간뿐 아니라 실내 놀이터도 디자인한다.
조경작업소 울이라는 이름, 특히 ‘울’이라는 단어에 관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 ‘울타리’의 ‘울’이라고 보통 대답하지만, 사실 깊이 고민한 단어는 아니다. 오히려 ‘조경작업소’라는 명칭에 더 많은 생각을 기울였었다. 조경작업소라는 단어를 통해 설계사무소를 넘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는 공간임을 나타내고자 했다. 2009년 상상어린이공원 설계공모에 당선되며 회사를 설립했지만, 회사의 정체성은 설계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오랜 시간 동안의 공부와 연구자로서의 훈련, 시민단체 활동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회사를 운영하고자 했다. 다행히 이름에 걸맞게 다양한 형태의 조경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여느 조경설계사무소처럼 도면 작업은 기본이고 어린이 대상 워크숍을 위해 색종이를 자르며 아기자기한 소품을 만들기도 한다. 배워야 할 지식과 습득해야 할 기술의 범위도 넓다. 식물의 특성과 구조물 설계도 탐구해야 하고, 어린이의 성장 발달과 놀이 환경에 대한 이론은 물론 통계도 공부해야 하고, 워크숍을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기술 개발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최근 팝업 놀이터 프로젝트를 해 볼 기회가 늘어나면서, 이와 관련된 전문 지식과 노하우도 축적해 가고 있다.
넓은 스펙트럼의 작업은 장점인 동시에 도전이다. 설계와 연구, 워크숍, 팝업 놀이터 운영은 각기 다른 태도와 능력을 요구한다. 연구자로서 깊이 있는 분석은 흥미로운 과정이지만, ‘왜 그런데?’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하는데?’라는 질문에 답해야 하는 설계자로서 정밀한 데이터는 오히려 거추장스럽기도 하다. 설계는 단순한 분석을 넘어서는 창의력과 통합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또 워크숍이나 팝업 놀이터 운영은 순발력과 대화의 기술을 요구한다. 그래서 조경작업소 울의 정체성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기도 하고, 뭐 하나라도 제대로 하라는 공격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조경이 추구하는 궁극적 목표가 좋은 공간을 만드는 것이라면, 연구, 설계, 워크숍, 현장 활동이라는 여러 경로를 통해 이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 자체가, 각 분야가 만나는 경계에 서 있다는 것 자체가 정체성이지 않을까. 각 영역에서 사용되는 언어를 이해하고, 요구되는 근육을 안다는 것, 다양한 분야가 어떻게 서로 연결될 수 있는지를 직접 경험하고 있다는 점, 그리하여 영역 간의 ‘번역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은 조경작업소 울의 큰 자산일 것이다. 또한 우리가 부족한 부분을 극복하기 위해 다른 분야의 전문가와 소통하고 협력할 줄 아는 자세 역시 우리의 강점이라고 내세워본다.
울
협업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울은 폭넓은 파트너십을 가지고 있다. 프로젝트 관리표의 주 담당자와 부담당자 칸 옆에 ‘협력’이라는 칸이 별도로 있을 정도다. 앞에서 언급한 상징 공간을 조성하는 프로젝트는 건축가와, 주민과의 협력이 중요한 프로젝트는 시민단체와 협업하고 있다. 최근에는 식재 디자인 전문가와 협력하고 있다. 대상지가 산지라 실시설계의 난이도가 높은 프로젝트는 현장에서의 설계 변경 경험이 많은 전문가와 협력한다. 꼭 프로젝트 단위가 아니더라도 그때 그때 자문을 요청할 수 있는 이들과 협력 관계를 형성하고 있어 항상 든든하다. 물론 그 협력이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또 우리는 다양한 형태의 네트워크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10여 년 전부터 통합놀이터만들기네트워크의 일원으로서 통합놀이터를 연구하고 관련된 시민 활동을 하고 있다. 지금은 활동이 잠잠하지만 빅바이스몰의 일원이기도 하다. 빅바이스몰은 노들섬 현상설계를 준비하면서 조직된 이후 토론회나 교육 등의 활동을 함께했다. 최근 도시연대라는 시민단체와 함께 어린이와 도시라는 이름의 기금을 만들어 재미있는 일을 벌이고 있다. 작년에는 어린이들과 그들의 일상에 어떻게 하면 놀이를 끼워 넣을 수 있을지 실험했다.
이러한 외부와의 협업과 협력은 ‘울’이란 이름에 담긴 의미로 살펴보면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처음 시작할 때는 울의 의미를 크게 두지 않았지만, ‘왜 울인가요?’라는 질문에 답하며, 울 자체가 느슨한 울타리, 개방성과 협력을 통해 공동체를 형성해 나가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아직은 이러한 바람을 현실화하기는 어려워 보이기도 한다.
모든 조직은 그 존재 이유에 부합하는 구조를 갖춰야 한다. 이념이나 사회적 가치를 중심으로 모인 곳도 마찬가지이지만, 의뢰받은 일을 수행해야 하는 회사라면 더욱 그렇다. 체계적으로 일할 수 있는 조직 구조와 역할 및 책임에 따른 위계를 갖추어야 한다. 업무 처리 방식, 의사 결정 절차, 직원 행동 규범을 포함하는 규칙과 절차도 필요하다. 연구, 기획, 설계비가 상대적으로 낮은 한국의 상황에서 구성원이 야근의 늪에서 허우적거리지 않으려면 효율성도 중요하다. 또한 공정한 보상을 위해서는 업무 성과 평가 시스템도 있어야 한다. 이러한 조건을 맞추며 느슨한 울타리를 만들기에 운영자로서 나의 역량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조경작업 소울
한계에 대해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매일 매일 한계를 발견한다. 극복 방법은 모두가 아는 그것이다. 열심히 끝까지 해보는 것이다. 우리에게 끝까지 한다는 것은 의구심을 없애는 것과 같다. 2014년부터 2015년까지 세이브더칠드런의 ‘놀이터를 지켜라’ 사업의 일환으로 중랑구 상봉어린이공원의 리노베이션 프로젝트를 맡아 설계부터 설계 감리까지의 전 과정을 진행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어린이 참여 디자인을 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을 찾고 있었고, 당시 조경작업소 울은 놀이터 디자인은 많이 해보지 않았지만 참여 디자인 경험이 많아 함께할 수 있었다.
이때부터 놀이터에 대한 탐구가 시작됐다. 좋은 놀이터란 무엇인가? 놀이터의 역사는? 놀이란? 어린이는 어떻게 노는가? 놀이를 유발하는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공부하고 현장에서 실험하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에 답하다 보니 어느새 놀이터 디자인 전문 회사가 되었다. 놀이터에 대한 질문은 어린이들이 잘 놀 수 있는 도시란 어떤 도시일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2017년도 씨프로그램(C-Program)의 지원으로 놀이 환경 측정 지표 도구를 개발했으며 2019년도에는 LH의 아동 놀이 행태를 고려한 도시 공간 조성 방안 연구를 진행했다. 지금은 서울시 도시공원의 어린이놀이 환경 조성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어린이 참여를 체계적으로 정리할 필요를 느껴 2018년에는 어린이재단과 함께 아동 참여 디자인 놀이터 조성을 위한 가이드라인도 만들었다.
2015년 대웅제약이 지원하고 아름다운재단이 주관한 통합놀이터 조성 사업에 통합놀이터만들기네트워크의 일원으로 참여했다. 통합놀이터는 과연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가? 사회적 확산이 가능한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다 보니 다양한 활동으로 이어졌다. 많은 이의 도움을 받아 여러 주체와 함께 통합놀이터 조성 가이드라인을 만들었고, 사회적 확산과 관련 법 개정을 위해 여러 차례 토론회를 개최했으며, 2018년부터 작년까지 총 네 번의 아이디어 공모전을 진행했다. 최근 통합놀이터라는 단어는 일반명사가 됐고, 조성 사례도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통합놀이기구가 한정되어 있어, 여러 놀이터 시설물 회사와 함께 통합놀이기구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때때로 조경작업소 울을 ‘조경작업 소울(soul)’로 듣는 사람들이 있다. 이전에는, 어떻게 회사 이름에 ‘소울’이라는 단어를 넣겠어? 영혼을 다해 일한다는 생각은 조금 구시대적이지 않아? 그리고 좀 무섭지 않아? 라며 중얼거렸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오해를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 영혼을 좀 갈아 넣지 뭐. 아껴서 뭐 하겠어. 이 일의 끝에 과연 무엇이 있는지 한번 가보자는 생각으로 일상에서의 루틴을 꾸리고 있다.
항상 모래를 잡은 주먹을 꽉 쥐고 있을 수는 없다. 아무리 꽉 쥐더라도 모래는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간다. 열심히 끝까지 해보자는 결심도 마찬가지다. 숨가쁘게 보고서, 도면, 협의 사이를 오가다 보면 작업의 본질적 의미는 사라진다. 어느 초여름 밤, 우리가 설계한 공원 한 편에 중학생 소녀가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이 시간에 왜, 여기에 있느냐고 물었더니, 여기에 와 있으면 기분이 좋다고 한다. 또 한번은 우리가 디자인한 놀이터에서 만난 어린이들에게 이 놀이터를 디자인한 사람이라고 소개했더니, 이런 멋진 놀이터를 만들어줘서 고맙다며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이런 순간 손바닥을 펴 손에 쥐고 있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조경작업소 울은 설계, 연구, 공유의 선순환 관계를 지향한다. 특색 있는 놀이터, 흥미로운 스토리텔링, 주민 참여 디자인, 현장의 이해를 토대로 한 연구가 우리의 강점이며 우리를 찾는 공통적인 이유다. 우리는 하나의 주제에 대한 깊은 탐구와 체계적인 개념화를 통해 소외된 현장의 이면을 들여다보고, 전방위적 접근과 실험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 내고자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