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이력서에 쓰는 세부 전공은 ‘동아시아 조경의 역사와 이론’이다. 짧게는 몇백 년, 길게는 천여 년 전 사람들의 생각을 읽고 공간을 상상하는 일을 십수 년 하다 보면, 동시대 조경의 이야기가 딴 세상의 것처럼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분명 조경을 공부하는데 조경과 한참 멀어졌음을 발견할 때,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켜 준 것이 『환경과조경』이었다. 그렇다고 『환경과조경』의 열렬 독자냐. 그건 또 아닌 것 같다. 일부러 열심히 찾아 읽은 적도 있지만, 원하는 것만 보거나 의무감에 보기도 하고, 그냥 지나친 적도 허다했다. 그런데 이런 ‘변덕스러운’ 독자가 비단 나뿐일까. 부침이 있는 독자들을 두고도 한결같이 제자리에서 조경의 주요 이슈를 제공하는 『환경과조경』이 대견하고 고맙다.
21세기 한국 조경, 세계로, 세계로!
이번 ‘『환경과조경』 400호 돌아보기’에서 다룰 순서는 151~200호, 2000년 11월부터 2004년 12월까지다. 2000년의 밀레니엄 시대를 지나 21세기로 접어드는 시기로, 조경계에서는 확실히 새로운 변화가 감지되었다. 그리고 이 변화는 151~200호의 『환경과조경』에서도 잘 드러난다. 먼저 외형과 구성부터 살펴보자.
지금까지 몇 차례의 리뉴얼이 있었는데, 151~200호 사이에도 변화의 지점들이 있다. 특히 21세기 들어 처음 출간한 153호(2000년 1월호)에서 형식은 물론 내용까지 큰 변화를 꾀했다. ‘편집자에게 & 편집실에서’라는 코너를 빌어 변화의 주요 지점을 안내하고 있는데, 변화의 목적이 “알차고 내실 있는 정보의 적극적 제공, 우리나라 조경 분야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기 위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주된 내용을 몇 가지 꼽아 보면, 첫째, 1985년부터 표지에 사용했던 한글 제호 ‘환경과조경’의 크기를 줄이고 영문 제호 ‘ELA(Environmental & Landscape Architecture of Korea)’를 전면에 내세웠다. 둘째, 표지에 영문 제호를 강조한 것에 이어, 영문 요약 소개 이외에 별도로 한 코너에서 한영문 병기를 시도했다. 셋째, 웹페이지 주소를 변경하면서 업로드 콘텐츠를 확충했다. 21세기를 맞이해 해외 소식을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독자의 요구에 맞는 국내 조경 소식을 촘촘하게 전할 수 있는 창구가 되고자 하는 『환경과조경』의 새로운 방향을 읽을 수 있다.
이후 눈에 띄는 또 하나의 큰 변화는 과감한 광고 배치다. 2002년 8월호(172호)부터는 잡지의 중간에 상당량 배치했던 각종 광고가 앞뒤로 빠지는 변화를 보였다. 맥락 없이 요란한 디자인의 광고 묶음이 잡지 중간중간 많은 부분을 차지했는데 그 이미지가 너무 강력해서 『환경과조경』의 디자인 콘셉트와 어울리기가 쉽지 않았다. 광고를 정리하니 목차부터 마지막까지 기사 내용에 집중할 수 있어 훨씬 간결하고 깔끔한 잡지로 탈바꿈했다.
섹션 구성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사실 『환경과조경』은 태생부터 조경계의 유일무이한 잡지라는 정체성이 분명했는데 그 바람에 다뤄야 할 내용이 너무 많다는 애로사항이 따랐다. 게다가
조경은 범주 자체도 광범위해서 전문지로서 개성을 드러내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Design+Planning’과 ‘Technology & Practice’, ‘Feature’, ‘Reports’, ‘Reader’s Information’의 섹션 구성에서 2003년 3월호(179호)부터 ‘Technology & Practice’를 덜어내고1 『환경과조경』의 색깔을 분명히 하고자 했다.
조경설계의 새로운 지형과 조경이론
형식의 변화는 언제나 내용의 변화를 수반한다. 새롭게 단장한 2001년 1월호(153호)부터 해외 작품과 해외 조경 업체, 해외 대학교, 해외 주요 웹사이트, 해외 잡지의 주요 기사 등에 대한 소개를 보완해 국외 소식과 정보의 비중을 대폭 늘렸다. 물론 이전에도 해외 작품 소개 코너가 없지는 않았다. 당시 3인 체제로 운영되었던 편집부에서 갑자기 늘어난 콘텐츠의 스펙트럼을 어떻게 감당했을까 싶다. 단지 ‘21세기의 출발’이 이 모든 부담스러운 일을 시작하게 하는 명분은 아니었을 것이다. 2000년대 변화의 근원지였던 인터넷 환경이 정보 경쟁력을 부추겼을 것이고, 조경계 ‘핫’한 해외 소식은 『환경과조경』을 통해 속속 우리에게 전달되었다.
그 가운데 인상적인 기사 하나가 153호에서 발견된다. 현재 『환경과조경』 편집주간으로 있는 배정한 교수의 “조경설계의 새로운 지형”으로, 이 글은 향후 같은 필자의 연재 ‘동시대 조경이론과 설계의 지형’과 함께 한국의 조경설계와 학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중략)
* 환경과조경 396호(2021년 4월호) 수록본 일부
박희성은 오랜 시간 동아시아 역사와 이론을 연구하며 한·중·일의 자연미를 꾸준히 탐색했고, 최근에는 근대 동아시아 조경과 역사 도시 경관에 주목하고 있다. 한중 정원과 문인, 자연미의 관계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동아시아 각국 수도 연구’를 수행하고 현재 ‘근대기 서울 주택정원 연구’를 진행중이다. 자연미와 정원에 대한 인문학적 탐구를 넘어 유네스코 세계유산 제도와 운영, 한국 근현대 도시·조경사 등 조경 연구의 지평을 넓히고자 한다. 연구와 더불어 서울대학교와 한국전통문화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