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이 없는 정원
료안지(龍安寺)라는 일본 정원이 세상에 알려졌을 때 다소 논란이 있었다. 만들어진 시기와 정원을 디자인한 사람에 대해서 이견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료안지는 대략 15세기 즈음에 조성된 정원으로, 일본의 선불교 사상.여기에서 비롯한 디자인을 젠 스타일이라고 한다.에 바탕을 두고 만든 돌과 자갈 위주의 이른바 ‘가래 산세이’(마른 정원)의 가장 오래된 형태다. 문제는 이 정원의 담장 안에는 이끼 정도를 제외하고는 아무런 식물이 없다는 점이다. 돌과 자갈로만 구성되어 식물을 키우지 않는 이 공간을 정원의 범주에 넣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 정원 전문가들은 식물이 없다 할지라도 인간의 주거 공간 안에 조성된, 자연의 물성과 인간의 예술 행위가 공존하는 공간을 정원으로 인정하고 있다. 사찰 정원이 그 안에 식물을 담지 않았던 것은 정신 수련이라는 목적 때문이었다. 모든 것을 버리고 버려서 마음속에 그 무엇도 담지 않으려고 한 수행이 결국 화려한 꽃을 피우는 식물을 담장 밖으로 보낸 셈이다.
생존을 담은 정원
역사학자들은 서양 정원의 모태를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파라다이스 정원’으로 본다. 그렇다면 식물이 자라기 힘든 지역인 메소포타미아의 사막에서 정원을 만들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사막의 삶에서는 물을 끌어오는 일이 가장 중요했고, 그 물을 해결하는 데 정원이라는 공간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만들어낸 십자 형태의 물길을 이용한 사분원(Char-bagh)도 결국 이 필연적 생존과 깊은 연관이 있다. 이 형태는 이집트와 고대 로마의 정원을 거쳐 훗날 서유럽 깊숙이 전파되면서 15~16세기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정원과 17세기 프랑스의 바로크 정원으로까지 이어진다. 마치 거대한 카펫을 펼친 듯 패턴을 수놓은 17세기 파르테르(parterre)정원의 등장은 서양 정원의 정형적 형태미의 꽃이다. 왜 이토록 형태와 패턴이 중요했을까. 페르시안 카펫에서 약간의 힌트를 얻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유목 생활을 해야 했던 이들에게는 정착의 삶이 없었다. 계속 이동하는 삶 속에서도 꿈꾼 아름다운 정원은 정착의 상징이다. 그래서 카펫에 화려한 정원을 수놓기 시작했다. 수많은 식물의 꽃을 그려 넣었고, 급기야는 정원의 평면도가 그 안에 자리 잡기도 했다. 정원의 꿈이 타일로 만들어져 벽에 붙고 카펫에 새겨졌으며, 그 안에서 다양한 패턴과 형태가 생겨났다. 그래서 정원은 이루고자 하는 꿈이었고 생존이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7호(2018년 11월호) 수록본 일부
오경아는 방송 작가 출신으로 현재는 가든 디자이너로 활동 중이다. 영국 에식스 대학교 리틀 칼리지에서 조경학 석사를 마쳤고, 박사 과정 중에 있다. 『정원생활자』, 『시골의 발견』, 『가든 디자인의 발견』, 『정원의 발견』, 『낯선 정원에서 엄마를 만나다』 외 다수의 저서가 있고, 현재 신문, 잡지 등의 매체에 정원을 인문학적으로 바라보는 칼럼을 집필 중이다.